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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장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인권위원장의 자격과 인선 절차

명숙

명숙

7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차기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위원장으로 이성호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내정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한 내정 배경은 “약 30년간 판사로 재직하면서 인권을 보장하고 법과 정의, 원칙에 충실한 다수의 판결을 선고했고, 합리적 성품과 업무능력으로 신망이 높다”는 것이었다.

 

국가인권위원장의 자격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제2항에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다음 각 호의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성호 내정자가 30년간 판사로 재직했다는 것 이상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판사로서 훌륭했을지는 모르나 인권위는 사법기구가 아닌 ‘국가인권기구’이므로 그것이 인권위원장으로서의 자격이 되는지에 대한 답은 아니다. 청와대는 그가 어떤 인권 관련 활동이나 연구를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이성호 내정자에게 공개 질의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 더구나 그는 인권위와 유엔 자유권위원회 등에서 폐지를 권고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판결에서 유죄를 선고했고 강호순에게 사형을 선고한 경력이 있다.

 

인권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지난 시간들

 

우리는 여기서 청와대가 ‘법을 알면 인권을 잘 안다’는 공식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법학자 출신의 현병철 현 위원장이 재임기간에 행한 인권위 운영이나 주요 결정을 보면서 우리는 법을 아는 법학자나 법조인이라고 꼭 인권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체감했다. 많은 경우 법과 인권의 거리는 매우 멀다. 그래서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투쟁하고,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의 집회·시위나 표현의 자유에 대해 실정법을 들이대며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현병철 위원장은 정부의 인권침해에 대해 쓴소리를 하려 하지 않았다. 2009년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문제점을 다룬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명예훼손 기소 및 구속에 대해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고, 야간시위 금지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시 헌재 심의에 의견을 제출하는 안건도 부결시켰다. 2009~2010년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국무총리실의 김종익씨 사찰 건도 모두 각하시키거나 기각시켰다. 국무총리실의 사찰이 광범위하게 문제 되자 뒤늦게 조사를 하기는 했으나 그 결과도 미흡했다. 심지어는 2013년 진주의료원의 폐업으로 환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이 위협받아 긴급구제를 신청했으나 이를 기각했다. 그 결과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이가 있는 중증환자들이 병원을 옮기거나 치료가 원활히 되지 않으면서 병이 악화되어 사망한 것이다. 집권여당의 실세인 홍준표 경남지사가 진주의료원 폐업을 주도하고 있기에 눈치를 본 탓이다.

 

반면 반북단체들이 북한에 대북전단을 살포하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존권과 생명을 위협했으나 인권위는 ‘대북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이니 정부가 이를 제재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표현의 자유는 아무 때나 인권의 이름으로 옹호되지 않는다. 국제인권 기준은 전쟁선동이나 폭력, 혐오 조장은 금지하라는 것이다. 인권위가 인권의 이름으로 인권을 왜곡한 셈이다.

 

투명한 논의, 다양한 인선으로 신뢰를 높여야

 

이번 청와대의 인권위원장 내정에 대해 시민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인권위원장 임명과정이 투명하고 참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인권위원장은 한 나라의 인권을 다루는 기구의 장(長)이니만큼 그 임명과정에 시민사회의 공론화와 참여가 있을 때 인권위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진다. 국가인권기구에 관한 국제기준인 파리원칙에서도 국가인권기구를 독립적으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국가인권기구 간 국제조정위원회(ICC)에서도 2008년부터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 인선을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투명한 절차로 하라고 권고했다. 심지어 인권위원 인선절차의 부재를 이유로 ICC는 한국 인권위에 대한 등급심사를 2014년부터 2015년 3월까지 세 번이나 보류했다. ICC는 구체적으로 1)공석을 널리 공개하고, 2)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지원자의 수를 최대화하고, 3)지원, 심사, 선출, 임명 과정에의 광범위한 논의와 참여를 도모하며, 4)선결된 객관적이고 공시된 기준을 바탕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 어떤 것도 지키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년 ICC 등급심사시 A등급에서 강등될 우려가 있으나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실 인선’을 강행했다.

 

이러한 밀실 인선은 해당 인권위원이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에 더 우려스럽다. 실제 인권위에 진정된 건의 상당수는 국정원, 검찰, 경찰, 교도소 등 국가기관이 가해자인 경우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진정이 매년 1만건 이상이다. 인권위원장이 임명권자의 눈치를 본다면 국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감시견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지금 가장 큰 인권침해 현안인 국정원의 스마트폰 해킹, 불법 감청 및 도청 의혹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한마디 의견표명도 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사찰에 대해 인권위가 직권조사를 하는 것이 상식적인데도 말이다. 인권위는 심지어 작년에 304명의 생명권을 앗아간 세월호참사에 대해서도 조사나 의견표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자격 인권위원들이 나서서 올해 유엔 자유권위원회에 제공하는 정보노트의 내용에서 세월호참사, 통합진보당 해산 등 주요 인권현안을 삭제했다.

 

또한 우려스러운 것은 인권위원 구성에서 다원성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인권위원 11명 중 8명, 그리고 상임위원 4명 중 3명이 법조인 또는 법학자다. 법조인 중심의 인적 구성은 인권위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인권기구가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인권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거나 이에 대한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어렵게 한다. 최근 사 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운동이 발호하는 시점에서 다원성은 더욱더 중요하다. 현행법이 보호하지 못하는 인권의 현실을 ‘인간존엄성의 잣대’로 얘기해야 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명숙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 집행위원

2015.7.2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