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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구조개혁정책의 새 틀을 짜야 한다: 교육부 대학평가 결과를 보고

윤지관

윤지관

교육부는 지난 8월 31일 전국 대학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대학구조개혁 평가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평가는 작년말 시행방안을 확정한 이후 올 4월부터 5개월간 전국 총 298개 대학을 대상으로 A등급에서 E등급까지 점수에 따라 분류한 결과다. 과거에도 대학평가는 있었지만 이처럼 정원감축과 구조조정을 전제로 전국 대학을 일정한 평가기준으로 등급화한 것은 초유의 일로, 그만큼 대학을 넘어서 사회 전반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평가결과가 대학의 운영뿐 아니라 평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하위등급의 경우 존립여부조차 불투명해지기 때문에 성적표를 받아든 각 대학마다 희비가 엇갈렸다. 벌써부터 상위등급임을 홍보하는 대학부터 강하게 반발하는 대학까지 속출하고 있어 이 결과 발표가 앞으로 어떤 후과를 낳을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국 대학을 거의 일률적 잣대에 따라 기계적으로 분류한 이번 평가는 대학의 특성이나 규모, 설립형태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점에서 근본 문제가 있고, 대학들을 상호간 지표경쟁의 생존게임으로 몰아넣는 악영향을 미쳐왔다.

 

대학, 경쟁을 통해 죽일 것인가 지원하여 살릴 것인가

 

물론 학령인구의 감소가 대학현장에 미칠 충격을 줄이고 대학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취지 자체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의 질은 한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를 그대로 둔 채 대학들을 서로 경쟁시킨다고 높아지지 않는다. 한국은 학생 1인당 공교육비가 OECD 하위권이며 사적 재원이 73퍼센트에 달해 70퍼센트가 공적재원인 OECD 평균과는 정반대다. 사학이 전체 대학의 80퍼센트를 넘고 그 대부분이 족벌경영을 하고 있어, 학생과 학부모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액등록금을 내고도 부실한 교육환경을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수도권 중심의 철저한 서열화로 대학의 특성은 상실되고 이로 인해 심화된 학벌경쟁은 중등교육조차 왜곡시키고 있다. 대학을 개혁하자면 마땅히 이런 구조적 병폐를 해결하는 방향이어야 하나, 현재 정부정책에는 그런 문제의식조차 희박하고 오히려 왜곡된 구조를 고착시키거나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 평가결과 발표는 이처럼 방향 잃은 대학구조개혁을 본격화하겠다는 신호탄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학구조조정은 한두 해가 아니라 10년 혹은 그 이상에 걸쳐서 진행되어야 할 우리 사회의 장기과제 중 하나다. 교육부도 조정기간을 올해부터 2017학년도까지를 1주기, 2018년부터 2020까지를 2주기, 그리고 이후 2023년까지를 3주기로 나누고 주기별로 단계적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즉 대학구조조정은 현 정권만이 아니라 차기 정권의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방향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이 그런 절차 없이 강행되고 있음은 이 평가를 통한 강제 정원감축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대학구조개혁법안 자체가 야당과의 의견충돌로 표류하고 있는 정치현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렇다면 전체 대학의 평가까지 마무리된 현 시점에서 이 헝클어진 국면을 풀어나갈 열쇠는 있는가? 정부의 주장처럼 대학구조조정을 대학의 질을 높이는 계기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부터라도 대학을 ‘경쟁을 통해 죽이는’ 방향이 아니라 ‘지원하여 살리는’ 방향으로 바꾸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교육부도 현 구조조정정책은 1주기 시행결과를 평가한 후 재론하겠다고 한 바 있고, 사실 4만명을 목표로 한 1주기 정원감축은 작년 특성화사업을 통한 감축예정 규모를 감안하면 7000명 초과달성이 예상된다. 따라서 정권교체기인 2기부터 시행할 장기적인 개혁정책을 새로 수립하려면 대안적인 정책방향까지 포함한 논의가 정부 및 정치권과 학계에서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해야

 

현행 교육부의 정책에는 조정과정에서 대다수 대학이 겪게 될 교육현장의 혼란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지방대를 살리겠다는 정부정책의 기본목적과도 상반되는 결과를 빚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왔다. 실제로 특성화사업을 통한 정원감축의 77.4퍼센트(일반대 경우)가 지방대에 치중되어 기존의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이번 평가결과 발표에서 수도권이 51.4퍼센트를 차지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이 결과에 따른 추가 감축인원 규모 자체가 5천여명에 불과해 비율상으로 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지방대의 일방적인 붕괴를 막고 지역별 균형발전을 유도하려면 좀더 근본적인 차원의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현 정책이 지속되는 경우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자율적 조정이 가능한 A등급 일부 대학을 제외한 전국 대다수 대학의 교육환경이 급격하게 악화됨으로써 학생들의 교육상 피해가 명약관화하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 소재 중소규모 대학의 경우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아울러 향후 10년간 교수를 포함한 연구자 약 2만명의 대량해고가 예상되고 학문 후속세대의 연구기반이 와해되는 등 학문적 토대 자체가 붕괴될 위험마저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대학구조개혁법안에는 이 심각한 교육현장의 위기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시피하다. 대학구조조정정책의 새 틀이 짜져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학계의 정책대안 논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대학학회는 지난 5월 국회에서 학계의 연구결과를 종합한 대학구조개혁 대안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대안정책은 (1)대학 서열화 완화 (2)사립대 중심을 공공대학 중심으로 개편 (3)대학 교육현장의 안정적 운영 (4)대학의 성격에 따른 정원조정 및 특성화 (5)계속교육 성격 강화라는 5대 원칙 아래, 대학의 특성, 지역, 설립형태, 규모에 따른 정원조정방안을 제시하고, 아울러 퇴출 대상 대학 가운데 살릴 수 있는 대학들을 공영화하여 지방대의 붕괴를 막고 향후 10년간 공공대학과 사립대학의 비율을 지금의 20대 80에서 50대 50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앞으로 이 대안정책을 포함한 논의가 활성화되어 이 구조조정의 위기가 한국 대학의 병폐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기회로 전환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2015.9.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