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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 노동도 없는 노사정 합의와 남겨진 시민적 과제

조성주

조성주

9월 13일 청년일자리 확대를 명분으로 삼아 진행되었던 노사정 논의에서 합의안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각계에서 역대 최악의 노동개악이라는 박한 평가를 받을뿐더러 노동계와 야당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기도 하다. 사실 이번 노사정 합의는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듯이 실제 청년고용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은 제시되지 못한 채 ‘쉬운 해고’를 비롯해 파견확대 등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합의안 내용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비판에 앞서 청년들의 입장에서 지난 논의과정의 특징과 방향, 그리고 향후의 과제를 짚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는 것을 두고 노사정 모두가 서로 명분을 내세웠지만 정작 청년들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이런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를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청년이 삭제된 노사정 합의

 

이명박정부까지만 하더라도 정부는 청년고용 문제의 원인이 청년들의 높은 눈높이에 있다는 ‘눈높이론’을 주장했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의 상황이 어려워지자 대졸초임부터 삭감하는 등 청년층을 오히려 희생양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와는 다르게 청년들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적극 홍보하면서 도리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여타의 다른 개혁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청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정부는 이미 올해초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위 논의 때부터, 비정규직 청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를 모델로 앞세워 기존의 조직화된 노동조합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노동계는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를 만들어 대응했는데, 양자가 모두 ‘장그래’라는 청년 비정규직의 상징을 앞세워서 서로 다른 주장과 논거를 펼치는 모습은 이상한 광경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정부가 청년층에 대해서 특별한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년이라는 사회적 약자 집단을 이용해서 노동 내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임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갈등유발 전략에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 청년들이 총단결하여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분명한 현실이다. 이는 다수의 청년들이 한국의 조직노동과 진보진영을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박근혜정부 역시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했을 것이다. 결국 진보진영이 내세웠던 청년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인 ‘장그래’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장그래

 

청년들에게 노동계와 진보진영의 주장이 대안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체적인 신뢰와 실천의 증명이 필요하다. 대안은 신뢰를 쌓았을 때 인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뢰는 꾸준한 노력과 구체적인 성과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어떻게 청년들에게 신뢰를 획득할 수 있을까? 필자는 신뢰란 때로 공동의 실천 속에서 쌓이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E. Schattschneider)는 “민주주의의 기능은 대중에게 경제권력에 대항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권력체계, 즉 대안적 권력체계를 제공하는 데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렇게 보면 이번 노동개악은 노동시장에서 경제권력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힘을 무력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약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당들과 기존의 노동조합이 작금의 노동권을 후퇴시키는 각종 법제도 개악을 막아내는 방어전과 함께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청년, 시민 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시민적 대항력을 마련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청년유니온이나 지역 일반노조같이 개인가입이 가능한 노동조합들에 가입하는 것을 정당이나 산별노동조합이 함께 지원해서,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없더라도 노동자 개인이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다수의 비정규직, 청년 들이 일하는 기업에서 당장 노조를 조직하고 조직력에 기반하여 단체협약을 쟁취하기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대신 프랑스처럼 단체협약의 효력을 유사 사업장, 사용자 단위, 그리고 산업별로 확장할 수 있게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아가 실업안전망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일이 절실하다. 자발적 이직자, 청년실업자를 배제하고 있는 현행 고용보험제도를 개선해 이들에게도 실업수당,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이 먼저 고용보험료를 인상하자고 주장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당장 큰 재앙이 닥쳐왔다고 말하며 한방에 무언가를 역전할 생각을 하는 것보다 긴 호흡을 가지고 꾸준한 실천과 대응을 통해 신뢰와 연대성을 확보해나갈 필요가 있다. 비록 이번 경기에서 완봉패 했지만 다음 경기에서는 한 점이라도 내겠다는 자세가 요구된다. 그렇게 실력을 키우면서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싸워나간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경기는 또 열릴 것이기에 우리는 경기장을 뛰쳐나갈 수 없다.

 

 

조성주 /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2015.9.2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