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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논란 어떻게 볼까

 

김태일

김태일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다툼의 핵심을 파악하려면 우리나라 정당 조직 개혁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2000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 각 정당들은 조직노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제왕적 총재가 지배하는 인물중심 정당을 현대 정당으로  만들자면 조직의 꼴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쟁론이 뜨거웠다.

 

정당조직 개혁의 방향 모색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당원 중심의 대중정당노선이었다. 의무와 권한이 분명하게 정의된 당원들이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정당조직의 일상적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노선을 말한다. 다른 하나는 지지자 중심의 원내정당노선이었다. 권리와 의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지지자들이 당의 공직후보자 추천 같은 당의 의사결정에 간헐적으로 참여하며, 정당활동은 원내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노선을 말한다.

 

각 당이 채택한 대안은 두가지 조직노선을 절충하는 것이었다. 원내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당의 일상적 조직활동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당조직의 현대화를 추진했다. 따라서 각 정당의 공직후보자 추천은 당원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당원은 당비 납부, 교육 및 선거캠페인 참여 같은 의무를 분명히 이행하는 대신 당의 공직후보 추천에 참여하는 권한을 가졌다. 이들을 ‘진성당원’이라고 불렀다. 진보정당들이 더 철저하게 이런 조직운영 방식을 택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당원 중심 공천제도의 한계

 

그런데 이런 조직 운영 방식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당원에 의한 공천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당원제도가 안정되어 있어야 했으나 우리나라의 정당조직은 그렇지 못했다. 당원들의 자발성은 부족했고, 정체성은 분명하지 않았다. 당원들 가운데는 당을 지배하고 있는 과두세력이나 간부에 의해 동원된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당원에 의한 공천 과정에는 항상 잡음이 뒤따랐다. 당비 대납, 종이당원 같은 시비가 그것이다.

 

제왕적 총재가 사라진 후 정당 운영은 민주적 제도의 외양을 취하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파벌화된 과두세력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두세력들이 당 조직을 ‘위에서 아래로’ 동원하고 있었다. 당 조직은 최고 지도부에서 밑바닥까지 ‘계파화’되어 있었다. 이런 현실은 진보정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공천이 국민들의 생각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이 나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 정당들이 모색한 대안은 ‘개방화’였다. 공천 결정 과정을 열어서 국민 참여를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당내 과두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공천과정이 민심에 가깝게 이루어지도록 하려고 했다. 처음에 국민 참여의 비중은 약간이었으나 점차 늘어나 결국 오픈 프라이머리와 같은 지지자 정당 모델에 가까운 제도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게 되면 우리나라 정당의 조직노선이 지지자 정당 모델로 방향 선회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정치세력마다의 복잡한 계산법

 

고민의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렇지 않아도 미숙한 우리나라 정당 조직이 개방화 과정에서 성장이 지체되고 있는데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게 되면 뿌리까지 흔들리게 될 것이 아닌가? 그게 정치발전, 정당발전에 바람직하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정당들이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개방하면서 지지자들의 참여를 확대한 데는, 지지자 접근 통로를 만들어서 그들을 정당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자는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정당 바깥의 힘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 안의 힘이 바깥으로 새나가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지지자들의 힘이 오히려 당 바깥에 고착화하는 것 같았다.

 

더 큰 문제는, 각 정당 내부의 세력경쟁 과정에서 이 제도가 만들어내는 유불리 상황을 둘러싼 갈등이다. 당내 조직 기반이 튼튼한 쪽에서는 공천과정의 국민참여 개방화는 마뜩찮은 제도다. 반면에 당 바깥에서 지지가 높은 쪽에서는 더 적극적인 국민참여 개방화를 선호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정당공천 제도 논란의 핵심은 바로 이 유불리 상황을 어떻게 교통정리할 것인가를 둘러싼 싸움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제가 이런 명분적,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문제를 증폭시키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추석연휴 때 부산에서 조용히 만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하자고 합의한 이후, 정치권이 이 문제로 시끄럽게 들끓고 있다. 여권에서는 청와대까지 나서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고,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조용해지고 있던 주류, 비주류 사이의 갈등이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의당에서는 이 합의를 휴대폰공천제라고 두 당을 싸잡아 비판하는 등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삽시간에 정치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논란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새누리당에서 김무성 대표 측은 이 제도가 당내 기득권을 유지해줄 것이라는 계산 때문에 적극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다. 반면, 청와대와 친박계 측은 이 제도가 현재 불리한 당내 계파 지형을 바꾸는 데 불리하다는 판단에서 극구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당 바깥에서 적극적 지지자를 많이 가지고 있는 계파들이 이 제도를  추진하고 있는 반면, 당내 조직 기반이 튼튼한 계파는 이 제도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정의당측은 이 제도가 자신들의 조직노선과 본질적으로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다.

 

이 문제는 어떻게 결말이 날까? 각 당이 조직 바깥의 지지자들을 공직후보자 추천 과정에 참여시키는 ‘개방성 확대’의 방향을 취하되, 당원과 지지자들의 참여를 적당한 비율로 타협, 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정당 조직 개혁의 바람직한 발전이라는 명분 측면에서도, 당 조직의 통합과 안정이라는 현실적 측면에서도 그렇게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5.10.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