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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홍석률

홍석률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다시 국정화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2013년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 파동’ 때부터 있었다. 이때만 해도 ‘설마 거기까지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부가 마침내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2017년부터 사용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올바른 교과서”란다. 박근혜정부 들어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탄식을 자주 듣는다. 민주적인 사회에는 암묵적으로 형성되는 어떤 합리적인, 예측 가능한 범위와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제 이러한 믿음은 사라졌다.

 

역사의 퇴행을 부를 단일 국정 역사교과서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나라는 아니었다. 애초에는 검인정제에 기초해 복수의 한국사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활용되었다. 그러다가 유신체제기인 1974년 한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었다. 국정 교과서 제도는 기본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암흑기였던 유신체제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면서 국정제는 점진적으로 폐지되고 검인정제가 실시되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국정 역사교과서가 사라진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1년이다. 그런데 6년 만에 국정화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역사의 퇴행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현재 세계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쓰고 있는 나라는 북한, 베트남, 몽골, 태국 정도라 한다. OECD 회원국 중 그리스, 터키, 아이슬란드에는 국정교과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리스와 터키의 경우 검인정 교과서를 혼합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단일한 국정 교과서는 아니다. 아이슬란드는 작은 나라이기에 교과서 시장 자체가 너무 협소해 국가가 교과서를 공급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이같은 제도는 북한,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 시행하는 국정제와는 맥락이 다르다. 국정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국가가 시민들에게 일방적이고 단일한 역사의식을 주입하는 일당독재 국가이거나 비민주적인 권위주의 통치국가가 대부분이다.

 

다양성을 담보한 역사교육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

 

국가마다 여건과 조건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국정제에서 검인정제로, 나아가 자유발행제로 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 할 수 있다. 한국 같은 수준의 나라가 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로 회귀한다면, 정말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일이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유엔총회에 제출한 ‘문화적 권리에 관한 특별보고관의 역사교육에 관한 보고서’는 “국가가 장려하는 단일한 역사교과서가 문화권, 교육권, 의사 표현의 자유 및 알 권리와 상충하며, 학문의 자유에 대한 부당한 규제를 동반한다”고 우려했다. 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 이것이 정말 한국의 보수 주류집단이 그토록 강조해온 ‘선진화’인지 묻고 싶다.

 

어느 나라에나 역사를 둘러싼 논쟁은 존재한다. 한 국가 안에는 다양한 정치·사회 집단이 존재하며, 계급, 계층, 남성과 여성, 인종, 종교 등에 따라 그 안에 조건과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 때문에 역사는 결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 될 수 없고, 다양한 역사의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거나 훼손하는 것이다.

 

정부는 균형있는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국정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균형은 다양한 역사인식이 서로 소통하고 경합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지, 단일화된 특정 역사인식을 통치권력의 힘으로 주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 구성원 사이의 차이와 다양성 때문에 불가피한 역사인식의 다양성을 감당하지 못하고 단일한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은 전체주의, 파시즘, 군국주의, 권위주의 등 비민주적 행태와 사고의 영역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정말 어떤 나라로 가고 있는가

 

유신체제 수립 직후 한국의 한 보수적 언론인은 미국 대사관 직원을 만나 우리나라가 점점 소련 같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정말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역사를 둘러싼 여러 논쟁이 있어왔지만, 이번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단지 역사논쟁에 한정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는 어떤 국가를 지향하느냐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거 여러 역사논쟁, 교학사 교과서 파동 등에서는 대부분 역사학자들이 관여하고 발언해왔다. 그러나 최근 국정화를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면 역사학자가 아닌 다른 분야의 학자들까지도 다수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역사교과서 문제가 단지 역사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여 질적 비약을 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묻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21세기에 단일한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어떤 성격의 국가를 지향하는지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홍석률 /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

2015.10.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