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남북관계,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나
이산가족 상봉이 20일 금강산에서 시작됐다. 고작 2박3일간 10시간을 조금 넘는 짧은 만남.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가족들의 만남은 울음바다를 이뤘다.
이번 상봉은 유단히 무더웠던 지난 8월 일촉즉발의 남북 간 군사적 대결 속에서 피어난 꽃이다. 위기의 순간 남측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마주 앉았고 8·25합의를 이뤄냈다. 이 합의 이후 적십자 실무접촉이 열렸고 상봉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상봉 이후 남북 당국 간에 합의된 일정은 없다. 남북관계를 밀고 갈 추동력이 없는 셈이다. 당국회담에 합의했지만 언제 열릴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하기로 했지만 감감무소식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20일 민화협 해외협의회 특강에서 “8·25 합의 중 이산가족과 민간교류는 이행이 잘 되고 있다. 다만, 한가지 남은 것이 당국회담인데 아직 큰 진전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열린 한반도 안정화 국면
당국 간 대화 스케쥴은 없지만 당장 남북관계가 악화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려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실행하지 않았다. 중국의 만류 때문이었는지 기술적 미비 때문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로켓 발사가 가져왔을 한반도의 냉기류를 감안하면 일단 한 고비는 넘은 셈이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자동개입을 명시해놓은 제재결의안의 ‘트리거 조항’에 따라 추가 제재에 나서게 된다. 그러면 북한은 제4차 핵실험으로 맞불을 놓았을 가능성이 있고 남북관계의 악화는 불 보듯 뻔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다 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최룡해 당비서는 류 윈산(劉雲山)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와의 회담에서 “북한의 발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나갈 것”이라며 “한반도 상황은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안정과 관련돼 있”고 “남북이 서로 진정성을 갖고 대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적 발전을 위해 평화적 환경 조성을 위한 정세관리가 필요하고 이러한 기조 위에서 남북관계를 풀어갈 것임을 밝힌 것이다.
특히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에 즈음해 평화협정 체결 공세에 나서고 있다. 지난 17일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지 20시간 만에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미국에 한반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것을 재차 촉구했다. 앞서 지난 9월 리수용 외무상이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 체제로 바꾸자고 제안한 바 있기도 하다.
북한이 중국의 6자회담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핵화에 맞설 카드로 평화협정을 꺼내들고 의제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북한이 본격적인 외교행보에 나선 셈이다. 외무성 성명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먼저 용단을 내려야 할 문제이며, 조미 사이에 우선 원칙적 합의를 보아야 할 문제”라며 미국과 양자대화에 대한 속내도 숨기지 않았다. 대화를 위한 외교적 행보가 있는 국면에서는 대결의 발톱이 감춰진다는 점에서 당분간 한반도의 안정적 국면을 예상케 한다.
다각도의 화해 노력을 이어가야
당국 간 관계의 공백을 민간 교류가 메우고 있는 것도 일단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는 신호다. 남북 역사학자들은 15일 개성에서 지금까지의 성과를 되짚고 향후 과제를 논의하는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또 남측 양대 노총과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은 오는 28∼31일 평양에서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를 열기로 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간의 협력사업과 다양한 대북 인도적 지원, 사회문화교류가 회담의 환경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생각하면 그나마 민간교류가 남북관계를 지탱하고 있는 국면이다.
그러나 이런 국면이 마냥 지속되지는 않는다. 대화의 동력이 떨어지면 대결이 뒤따르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에 공존의 신호를 보내야 한다. 당국회담에 적극적이지 않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협력을 통해 공존하겠다는 메시지를 북쪽으로 발신해야 한다. 북한이 현 한국 정부의 통일담론을 ‘흡수’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잠시 통일은 접어둔 채 적극적으로 화해하고 공존하겠다는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보다 적극적으로 민간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 민간의 교류는 남북관계의 모세혈관이다. 관계 자체를 보전케 하는 교두보인 셈이다. 21세기 ‘스마트 외교’는 정부가 앞장서지 않는다. 민간단체들이 북한을 지원하고 협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북외교의 선봉에 서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자체가 북한에 보내는 신호의 역할도 할 것이다.
장용훈 /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차장
2015.10.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