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정○용’을 아십니까?: 불행했던 문청들과 국정교과서
나는 공장에 다니다가 문학을 하고 싶어서 또래보다 좀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국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시를 습작하고 문학개론을 배우고 문학비평을 배웠다. 문학사도 배웠다. 시를 써서 선후배와 합평을 하는데, 어떤 선배는 이렇게 쓰라고 하고 어떤 후배는 저렇게 써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도무지 시가 잡히지가 않았다. 지도교수님도 시창작의 해법을 풀어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학교도서관 자료실에서 옛 잡지와 신문의 영인본을 보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연구자나 눈이 밝은 또래들은 영인본을 찾아서 읽었겠지만, 생계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나는 과문한 탓인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 영인본에는 필자들의 이름이 지워져 있거나 아니면 이름 가운데 일부를 ○로 표시해놓고 있었다. 이를테면 ‘김○준’ 이런 식이었다. 심지어 어떤 것은 아예 이름이 ‘○○○’이었다.
이름이 지워진 시인에게 배운 문학
호기심에 사로잡혀 한자투성이의 영인본 잡지와 신문들을 읽어가면서 ‘정○용’의 「유리창」이라는 시를 만났다. 첫줄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의 절제된 슬픔,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는 아름다운 비유,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라는 격한 슬픔으로 가슴이 저려오는 그 시를 읽고서, 나는 ‘아, 시는 이렇게 쓰면 되는 거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정○용’이 궁금하여 문학비평을 가르치는 교수님께 찾아가서 물었더니, 그가 ‘정지용’이라는 시인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월북을 해서 그의 시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더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가 이미 서른이 가까워 복학한 선배를 통해 정지용의 시집과 산문집 영인본을 얻어 보게 되었다. 선배의 부인이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문학연구자여서 빌리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몰래 얻은 영인본은 비매품이었고, 당시에 금서(禁書)였다. 정치적 시위가 잦은 시대였는지라 가지고 다니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리기라도 하면 곤욕을 당할 것이 뻔해서 원고지에 또박또박 필사를 하고 돌려주었다. 금서의 역설이라고나 할까, 단시간에 몰입해 정지용의 시와 산문을 필사하면서 나는 시 창작 방법과 문장을 나름대로 터득했고, 재학 중에 등단을 했다.
등단 2년 후인 1988년 정부는 월북문인들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금서에서 해제하였다. 88올림픽대회를 앞두고 국제여론을 의식한 정치권력의 정치적 결단이었다. 이를 계기로 영인본으로 찔끔찔끔 만났던 임화와 백석과 오장환과 이용악과 박세영의 시를 시집으로 보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배운 현대문학사가 반쪽도 안되었음을 깨달았다. 임화의 시 「우리 오빠와 화로」나 「네거리의 순이」를 읽어가면서 울컥하기도 했다.
나는 과문한 탓으로 이런 선배 시인들을 일찍 만나지 못한 것을 오랫동안 아쉬워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전혀 배워본 적이 없었고 이름도 낯설었다. 교과서에도, 전공인 문학사에도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의 이름이나 시는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에도, 자격시험에도 나오지 않으니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면서도 이 시인들이 문학사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다. 한마디로 ‘가짜 문학사’를 배운 것이다.
정녕 ‘가짜 역사’를 가르치려는가
지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분란을 보면서 나의 문학공부 과정이 오롯이 떠오른다. 동시에 금기시되었던 이런 시인들의 시를 어려서부터 읽으면서 공부했더라면 우리 세대의 문학이 더 풍요로운 쪽으로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학이든 역사든 과거 우리나라 국정교과서에 실린 교육 내용과 범위가 매우 정치적인 기획이고 술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 짧은 개인의 역사를 통해서 경험한 것이다.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정부와 일부 수구세력은 역사학자와 지식인 집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계획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의도는 뻔하다. 실제로는 현재 핵심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을 쥐고 있는 세력의 기원인 친일과 쿠데타를 미화하거나 위장하고, 독재를 은폐하고 광주항쟁을 변명하는 내용으로 ‘가짜 역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 왜곡이나 미화를 한 교과서를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건 반대자들을 반박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고, 실제로 그렇게 나설지 의문이다. 대통령 주변의 핵심인물들이 지금의 역사교과서를 ‘친북 내지 좌편향’ 또는 ‘좌파역사교육’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대통령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바람에 국론분열이 격화되고 있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마라. 역사가 정치적 쟁점이 되는 건 어떤 의미로 당연하지만 치졸한 정쟁으로 나라가 탕진되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국민들의 역사적 상상력과 다양성을 가로막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즉시 중지하라.
공광규 / 시인
2015.10.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