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저출산‧고령사회, 정부 대책이 문제를 더 키운다
“아기를 낳고 싶다니, 그 무슨 말이 그러니. 너 요즘 추세 모르니.” 요즘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 청년실업 시대의 고단한 삶을 잘 표현한 것으로 화제가 된 한 인디밴드의 「아기를 낳고 싶다니」라는 곡의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한다. 가사의 내용대로 이미 10년 이상 지속되어온 국가적인 저출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크게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하나의 추세로 자리잡았다. 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정부는 지난 18일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 시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목표는 일단 지난해 기준 1.2명 수준인 합계출산율을 2020년까지 1.5명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1·2차 계획과 달리 ‘선택과 집중’ ‘사회구조적 대응’을 하겠다면서 이번 3차 계획에서는 그동안 낮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온 비혼과 만혼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 언뜻 보면 정부의 이번 시안은, 그간 출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단지 보육이나 신혼부부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며 교육 문제나 청년 고용, 주거 등 구조적인 요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해온 학계와 시민사회의 지적을 수용한 양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번 시안에 대한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며 심지어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의 문제점들
실제로 이번 정부 정책을 들여다보면 논란의 소지가 큰 내용이 많다. 신혼부부 전세자금 지원이나 임대주택 입주 등 주거지원 확대, 보육체계 개편과 육아휴직기간 확대, 임신·출산 관련 의료비 지원 확대, 청년일자리 창출 등등 진부하거나 실효성이 의심되는 내용도 있지만, 그중에서도 결혼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서 단체미팅을 주선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지자체들이 써먹을 만큼 써먹은 것이니 참신하지도 않은데다 정부 정책으로는 충분히 엽기적이다. 특히 청년들의 취직이 점점 늦어지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축소하고, 초등교육 개시 연령을 앞당기겠다는 발표는 청년실업에 대한 정부 인식의 한심함과 동시에 교육에 대한 철학의 빈곤을 드러냈을 뿐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이번 시안은 사회구조적 요인들을 언급하면서 더 포괄적이고 나름 획기적인 정책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이전의 계획안들에 비해서 훨씬 부정적인 반응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계획안이 유독 큰 반발을 사는 것이 어수선한 시국 탓만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안은 출산율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는커녕 우리 사회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추세’에 대비하는 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이유 가운데 몇가지를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계획안은 원인과 결과를 잘못 짚고 있다. 애초에 우리 사회의 저출산 현상은 한국사회가 지금 여러 면에서 살 만하지 않다는 징후이다. 그러므로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은 한국사회 자체가 지금보다 다방면에서 훨씬 살 만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사실 획기적인 것을 넘어서 엽기적인 대책을 가져와도 당장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사회 개혁의 문제를 출산율 제고에 연동하다보면 본말이 전도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살기 어려워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를 낳게만 하면 세상이 살기 좋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니 말이다. 심지어 육아 문제나 산부인과 환경은 그 많은 지원금에도 불구하고 좋아지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지원금 때문에 나빠졌다는 분석도 있다. 국가의 지원금이 시장의 힘을 키우면서 보육의 질이 오히려 악화되고, 산부인과 역시 진료비 부담이 증가했을 뿐 분만이 가능한 산부인과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고용이나 주거복지 역시 중요한 문제이지만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느냐는 고려로 접근하다보면 없던 차별도 생기게 되어 있고, 출산율과 관계없이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옳지 못하다. 학제 개혁 또한 교육대계를 세우는 일이 한 사회의 시민을 어떻게 잘 길러낼 것인가에 대한 고려에서가 아니라 저출산 대책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그저 출산율 숫자에 매달리다보니 판단이 흐려진 처사라고 할 것이다. 무조건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목표에 매달리기 전에 한국사회 개혁을 위해 왜, 어떤 것이 필요한지 먼저 차분히 짚어보는 일이 중요하다.
둘째,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저출산 대책은 ‘생애주기의 국정화 시도’에 가깝다. 저출산 현상을 가져온 여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나 변화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에서 국가가 제시하는 삶은 이러하다. 일찍 학교 들어가서 얼른 졸업해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빨리 취직해라, 그리고 국가가 주선해주는 맞선을 통해 배필을 만나 반드시 결혼하고 가능한 한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아 기르라는 것이다. 그러한 지침에 잘 따르는 국민에 대해서는 고용이나 주거 문제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지원을 검토해보겠지만, 거기서 벗어나는 국민에게는 불이익을 줘서라도 국정화된 생애주기를 따르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간절히 바라면서도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보수적인 가족관에 기초한 출산장려 정책은 국정교과서 시도와 마찬가지로 이미 삶의 다양성이 가치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젊은 층이 한국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저출산 위기 때문이라면서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이나 피임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어오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른바 평범한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이루기 어려운 목표가 되어버린 상황이라 일단 이를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저출산 대책에 혹하는 이들이 계속 나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혼인과 출산 여부를 시민적 권리의 전제로 삼으려는 정책들은 비혼에 대한 차별을 줄이겠다는 정부 입장과 근본적으로 충돌하는 것이며, 결국 한국사회를 살 만하지 않게 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일차적 목표에 매몰되지 말아야
마지막으로, 저출산·고령화의 극복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현실적인 변화에 대처하는 것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흔히 경제에서 고도성장의 시대가 가고 저성장 시대가 되었다고 하는데, 인구에서도 저출산·고령화 시대가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저성장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은 물론 더이상의 고도성장이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 기반을 두고 있기도 하지만, 성장지상주의가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는 성찰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인구 문제 역시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극복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 면이 있다. 그러한 가운데 인간이 지구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 없이 기존의 사고대로 적정인구를 산출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결국 저출산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따라가다보면 한국사회의 큰 개혁과제와 만나게 된다. 고용과 산업의 문제, 돌봄과 복지의 문제, 그리고 의료와 교육 영역에서 어떻게 시장의 힘을 제어하고 공공성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 생태계 문제,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정치공동체를 꿈꿀 것인가의 문제 말이다.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정하는 획일화된 생애주기에 따라서 출산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들을 잘 풀어나간다면 결국 자연스레 출산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아기를 낳고 싶다니」라는 노래 역시 이렇게 끝난다. “나의 삶에 여유가 있을 때, 우리 둘만의 아기를 낳겠지.”
백영경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문화인류학
2015.10.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