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66년 만에 만난 양안 정상, 대만의 미래는?
2015년 11월 7일, 중국 국가주석 시 진핑(習近平)과 대만 총통 마 잉지우(馬英九)의 역사적인 싱가폴 회동이 개최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2016년 1월에 진행되는 대만 총통 및 국회 입법원 선거에서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야당인 민진당의 압승이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공산당과 대만 국민당이 연합하여 이를 견제하려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중국이 남중국해 인공섬 등의 문제로 미국과 충돌하자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친중국 노선을 지지하는 국민당에 우호적 제스처를 보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싱가폴 회동에 대해 민진당은 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대만 민주사회의 기본 가치를 망각하고 정당의 이익을 위해 진행한 “대만을 팔아먹는 밀실회동”이라며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과연 중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틈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대만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대만정체성’과 대만총통선거
대만 내 여론조사에서 민진당의 총통 후보인 차이 잉원(蔡英文)은 46%, 국민당 주석 주 리룬(朱立倫)은 29%의 지지를 받고 있다(TVBS 2015.10.19). 심지어 싱가폴에서 개최된 양안정상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차이 잉원 43%, 주 리룬 27%, 쑹 추위(宋楚瑜, 친국민당계열로 분류되는 친민당 후보)는 9%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TVBS 2015.11.8). 물론 주 리룬과 쑹 추위는 결국 단일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민진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배경에는 이미 2014년 11월 29일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 등 9개 기초선거에서의 압도적인 승리 때문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민진당이 46.66%, 국민당은 40.48%의 지지를 얻었다.
이러한 승리는 또한 대만인의 ‘대만정체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대만에서는 자신이 대만인이라고 여기는 비율이 1992년 17.6%에서 현재는 60.6%에 이른다(『政大選研民調』 2015.1.26). 또한 대만독립 찬성은 25.4%, 광의의 현상유지(실질적 독립) 희망은 56.1%인 데 반해 통일을 바라는 의견은 겨우 7.7%에 그치고 있다(『遠見雜誌』 2015.9.30). 즉 대만은 현재 대륙과의 밀접한 경제 협력 및 교류, 중국공산당의 압력 같은 이유로 독립을 과감히 요구하지는 못하지만 대만의 민의는 이미 독립된 실질국가로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마 잉지우 총통은 최근 10~20% 정도의 지지도를 보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총통 재임 후 미국 소고기 수입 결정, 심지어 역사교과서를 중국사 위주로 수정하려는 것 등의 실정 때문이다. 하지만 배후에는 양안관계의 급속한 진전, ECFA(양안경제협력기조협의) 체결과 정치적 통일에 대한 우려가 가장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ECFA 서비스 관련 협정은 대만 학생들이 2014년 3월 18일 입법원을 점령하는 ‘태양화(해바라기)’ 운동 같은 반발을 가져와 대만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현실과 ‘대만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대만사회의 기본적, 정서적 인식과 달리 마 잉지우는 왜 중국대륙과의 관계개선을 향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것일까?
AIIB와 TPP
사실 이번 회동의 시발점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의 신실크로드) 건설과 AIIB(아시아기초건설투자은행) 설립, FTAAP(아태자유무역지대) 같은 중국 중심 경제질서 구축을 위한 노력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올 5월 4일에는 국민당 주석 주 리룬이 시 진핑과 북경에서 회담을 가지기도 했는데, 당시 대만은 AIIB 참여와 경협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전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총통은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핵심 당사국인 미국과 일본의 중국에 대한 견제심리 때문에 가능한 한 중국 주도하의 AIIB와 ECFA, 미·일 주도하의 TPP에 동시 참여해 대만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만정체성을 바탕으로 총통선거에서 승리가 예측되는 민진당이 향후 집권할 경우,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교류가 커다란 장애를 겪을 것을 우려해 더욱더 과감히 친중국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대만의 친중국정책은 결국 대만의 중국화와 정치적 통일이라는 우려를 가지게 한다. 물론 ‘하나의 중국’이라는 역사적 굴레를 대만에 강요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이야말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 이익이며 일대일로 해상통로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이에 비해 민진당 차이 잉원 총통 후보는 2015년 6월 미국 워싱턴 CSIS(국제전략연구소)에서 진행한 강연을 통해 대만과 미국이 경제전략 파트너로 TPP 참여를 비롯해 더욱 진일보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길 희망했다. 요컨대 국민당은 중국대륙과의 경제협력에 우선순위를 둔 채로 TPP에 참여하려 하고, 민진당은 먼저 TPP체제에 편입하는 것이 대만의 현상유지와 체제안전 보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대만의 미래
성공한 총통이라는 평가와는 거리가 멀어진 정치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의미는 역사적 평가일 것이다. 마 잉지우 총통의 급진적 친중노선은 향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통일과 독립 사이에서 그는 양안의 평화와 번영의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와 ‘대만을 중국에 팔아먹었다’는 평가 사이에 서 있다. 이는 결국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정치 지도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마지막 평가인 것이다.
여전히 대만과 중국의 양안관계 최대공약수는 현상유지이다. 대만은 현상유지를 통한 독립을, 중국은 현상유지를 통한 통일을 기대한다. 민진당 후보 또한 현상유지가 대다수 대만인의 공통인식이기에 기존 정부의 성과를 계승하고 대만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수호할 것을 약속했다. 대만은 중국과 미일 간 대결구도 사이에서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통해 대만인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중국과 미일의 새로운 경제체제의 상징으로 보이는 AIIB와 TPP, 대만은 한국처럼 두 세력 간의 틈새에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대만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역사는 새로운 선택들의 기록이며 이에 대한 평가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미일의 대결구도 사이에 서 있는 대만과 한국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새로운 미래를 구상해야 하는 우리가 대만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양태근 / 한림대 중국학과 교수
2015.11.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