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우 줘류 장편소설 『아시아의 고아』
고아의 실존
- 우 줘류 장편소설 『아시아의 고아』(송승석 옮김, 아시아 2012)
지난 11월 7일, 중국의 국가주석 시 진핑(習近平)과 대만 총통 마 잉주(馬英九)가 싱가포르에서 회동을 가졌다. 양안의 정상이 한 자리에서 만난 것은 내전 종결 후 66년 만의 일이다. 한국의 매체들은 이에 대해 ‘역사적 정상회담’ 운운하며 대서특필했다. 정치보다 경제를 앞세우는 실리노선으로 빠르게 관계를 진전시켜온 양안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논의가 최근 국내 언론에서 심심찮게 나오던 터다. 그러나 양안의 실상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특히 내년 1월 대선을 앞두고 야당인 민진당(민주진보당)의 압도적 승리가 예상되는 시점에서, 대만에서는 이번 회합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속셈이라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중국과 대만 언론이 싱가포르 회동을 ‘시마회(習馬會, 대만에서는 ‘마시회’)’로 부르는 것은 두 정상이 국가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만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중국에 대만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협정 체결도 성명 발표도 없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모호한 ‘92컨센서스’만 반복한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양안의 재결합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임을 보여주겠다는 느긋한 심산으로 보인다. 예견컨대 양안문제는 점점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해바라기 학생운동, 국민당의 총선 참패와 같은 흐름이 내달 대선에서 민진당의 승리로 가시화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동시에, 그런 역류가 대만을 끌어당기는 중국의 가공할 구심력을 밀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과연, 대만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백년 후, 아니 오십년 후 대만이라는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조국이 없는 나라
민족국가를 기반으로 하는 근대체제에서 대만의 불안은 뿌리가 깊다. 대만 근대문학의 아버지 우 줘류(吳濁流: 1900~76)의 장편소설 『아시아의 고아』(亞細亞的孤兒)는 대만의 부유(浮游)하는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 고뇌를 잘 보여준다. 대만의 커자(客家: 중국 한족의 한 분파로서 중국 남부, 대만, 동남아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인으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한학적 소양을 익히며 자란 주인공 후 타이밍(胡太明)이 일본과 중국을 떠돌다 결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광인이 되고 만다는 내용으로, 다소간의 자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 1945년 일본 패망의 기운 속에 집필된 이 소설은 이듬해 『후타이밍』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가 1956년 『아시아의 고아』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우선 그 제목만으로도 ‘조국 없는 나라’ 대만의 복잡한 심경을 대변함으로써 오랫동안 대만인의 마음속 깊이 자리해온 작품이다. 1983년 대만 가수 뤄 다요우(羅大佑)가 만든 동명의 노래 ‘아시아의 고아’는 당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고 국민당의 억압정치로 고통 받던 대만인의 이중적 실의를 다시 한번 애틋하게 표현했다.
식민지 지식인이 식민모국에 대한 동경을 품고 떠나는 여행은 식민지 문학작품에서 흔히 발견되는 패턴이다. 유학(留學)은 식민지 지식인이 고향과 식민모국 간의 격차를 인지하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협상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고아』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의 여행이 식민지 본국인 일본과 문화적 모국인 중국 그리고 고향 대만이라는 삼각구도 안에서 진행된다는 것이다. 식민지 본국과 고향 사이를 오가는 이원구도가 식민지인에게 양자택일을 요구하기 쉽다면, 삼각구도는 정체성 찾기라는 여행의 목적을 종종 미궁에 빠뜨린다. 토오꾜오에서 타이밍은 자신이 나고 자란 대만의 미개한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련된 근대에 눈뜨지만, 그곳에서 배운 지식은 이미 식민화가 깊숙이 진행된 고향에서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식민지인에 대한 차별과 수탈로 고향에서 설 곳이 없게 된 그는 이번에는 조부 때부터 마음에 품어온 ‘당산(唐山: 해외화교들이 중국 대륙을 지칭하는 말)’에 대한 꿈을 안고 대륙으로 향하는 장도를 택한다. 그런데 그가 간 곳은 중일전쟁이라는 거대한 격랑을 목전에 둔 난징이었다. 노동자의 파업, 학생 가두시위, 전쟁불사를 외치는 구국회의 선동이 끊이지 않는 소란한 도심 한가운데 타이밍은 섬처럼 고립된다. 식민지인으로서 좌절당했던 조국 건설의 꿈을 대륙에서 펼쳐보고자 했지만, 전쟁을 선동하는 주전론이나 혁명론에 좀처럼 동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륙에서 타이밍이 깨달은 것은 조국이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이 아닌, 선택이자 결단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릴 적 한학 수업을 통해 마음속에 그려온 모국의 상은 현실 속 살아 있는 중국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상하이와 난징에서 그는 토오꾜오에서와 마찬가지의 ‘근대’를 발견한다. 신생활운동, 남녀평등, 여성해방. 무엇보다 타이밍을 압박했던 근대의 핵심은 배타적 선택을 요구하는 조국이었다. 타이밍 주위엔 두 부류의 대만인이 있었다. 하나는 항일구국의 이념에 동조하여 중국인이 되는 것, 다른 하나는 가망 없는 중국과 대만을 떠나 일본제국의 황민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이 양자택일의 허위성이다. 고조되는 중일 간의 적대적 긴장 속에서 대만인이 진정으로 귀속될 수 있는 곳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민정부(국민당정부) 첩보부의 검거를 피해 조계지에 숨어 있는 타이밍에게 한 때 국민정부의 관원이었던 리(李)는 이렇게 말한다. “군은 역사가 회전하는 어느 쪽 방향으로도 가세할 수 없으니까요. 설령 군이 신념을 가지고 움직인다 해도 남들은 신임하지 않을 것이에요. 기껏해야 간첩 취급이나 하겠죠. 군은 기형아인 셈이지요.”
사라지는 대만인들
소설을 읽으면서, 기존 중일전쟁 서사에 비어 있는 대만의 공백에 아연했다. 지금까지도 중일전쟁은 철저하게 중국과 일본의 문제이다. ‘항일’은 중국현대사를 구성하는 이념적 골간이며, 일본 역시 중국전쟁은 대동아전쟁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축이다. 오늘날 동아시아를 옥죄는 적대감의 기원이 바로 중일전쟁임은 새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시아의 고아』는 기존 중일전쟁 서사에서 안으로 접혀 있던 대만의 존재를 펼쳐낸다. 노동자 스트라 이크와 학생시위가 가두에서 연일 벌어지는, 내셔널리즘의 열기로 뜨거운 난징과 상하이에서는 조선인의 독립운동이 활발하다는 소식과 함께 대만인 행불자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문이 떠돈다. 작가는 여기서 은근히 조선과 대만의 다른 처지를 짚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 타이밍은 난징 국민정부 정보과에 체포되어 지하 취조실에 감금당한다.
타이밍이 스파이 혐의로 국민정부에 체포되는 장면은 가려져 있던 역사의 중요한 맥락을 드러낸다. 바로 중일전쟁과 황민화의 연동성이다. 대만에서 황민화는 중국과의 전면전이 본격화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대만인을 일본제국을 위해 한(漢)족과 싸우는 신민으로 만드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그뿐 아니라 전쟁 발발 초기부터 일본은 중국말이 통하는 대만인을 고용하여 스파이 활동에 종사시켰다. 토오꾜오 유학 시절 친구 란(藍)이 재일중국유학생회에 타이밍을 소개할 때 대만인 신분을 감출 것을 권고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대만인의 일본어 억양이 큐슈 사투리와 비슷하니 큐슈인 행세를 하라고 한 것인데, 그 충고를 무시하고 대만인임을 밝힌 순간 타이밍에게 돌아온 것은 중국인 유학생들의 차가운 경멸이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대만인을 일본의 스파이로 간주하는 분위기를 반영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본질은 식민지 대만인에 대한 반식민지 중국인의 멸시였다.
지하 취조실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타이밍은 청운의 꿈을 안고 찾았던 대륙을 떠나 초라한 행색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륙에서 왔다는 이유로 일본 관헌에게 감시당하는 신세가 된다. 다시 한번, 조국은 타이밍에게 선택을 강요했지만 그 선택은 허상이었음이 드러난다. 중일전쟁의 고조 속에 대륙에서 스파이로 의심받았던 타이밍은 고향을 뒤덮은 황민화의 광기 속에 걸핏하면 달려드는 ‘비국민(非國民)’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출구 없는 여행
제국의 갇힌 공간에서 타이밍의 여행은 방향을 잃는다. 식민지 본국인 일본과 문화적 모국인 중국, 그리고 고향인 대만 어디에도 그가 정박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타이밍의 두번째 대륙행은 황군지원병으로 광둥(廣東)에 차출된 것이었다. 그곳에서 일본군의 잔인한 중국인 학살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조국을 위해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중국 혁명군 앞에서는 정신적 압박을 느낀다. 결국 전선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대만으로 후송된 타이밍은 1942년 12월 8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한번 대륙으로 돌아가 모순 없는 삶을 살아보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그러나 더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다시 대륙으로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황민봉공회의 강제노역에 끌려간 이복동생의 주검 앞에 타이밍은 돌연 정신을 놓고 광인이 되어버린다.
타이밍의 여행은 이렇게 중지된다. 어쩌면 이러한 파열적 중단은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나는 누구이고 세계와 내가 어떤 관계로 맺어져 있는지 그 연계를 찾는 여정이 근대문학의 주제라면, 『아시아의 고아』는 그 여정의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주체성을 찾아 떠나는 타이밍의 여행은 폐쇄된 자기부정의 회로를 반복하여 오갈 뿐이었다. 광인이 되기 직전, 타이밍은 불현듯 번득이는 예지로 그 폐쇄회로의 본질을 깨닫는다. 황군지원병에 자원하려는 조카 타쯔오(達雄)를 불러 앉혀놓고, 그는 근대국가의 타락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세상의 모든 모순이 국가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할 때, 타이밍은 국가 뒤에 있는 식민지-자본주의-제국주의의 거대한 공모체제를 예리하게 꿰뚫고 있었다. 인간을 강제로 정해진 틀에 끼워놓고 맞지 않으면 이단자로 낙인찍는 이 국가라는 괴물 앞에 대만인은 물질적 착취뿐 아니라 정신적 파괴로 신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폐쇄회로의 정체가 눈앞에 현전하는 순간 타이밍이 일생을 쏟아부었던 여행의 무의미함도 함께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는 광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아의식’의 열린 회로
대만연구자 리오 칭(Leo Ching)은 어느 글에서 우 줘류가 말하는 ‘고아의식’을 근대/식민 체제 안에서 구원의 불가능성이라는 트라우마적 깨달음이라 해석했다. 근대/식민체제를 지탱하는 국가의 일원이 되는 것이 대만에 불가능함을 깨닫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자기를 찾으려는 여행의 목적이 끊임없이 좌절되고 배반당하는 것이 바로 고아의식의 본질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해석은 대만의 실존적 지위를 날카롭게 끌어올린다. 어디에도 귀속될 수 없도록 예정된 대만의 운명이 근대/식민체제의 모순의 핵심을 건드린다는 칭의 해석을 따른다면, 우리는 대만의 고아적 실존성으로부터 근대의 모순을 타개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해석을 대만인들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제국의 갇힌 회로에서 정박할 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타이밍의 여행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고 정작 자신은 국가라는 체제 안에 안주하면서 대만에 국가되기의 불가능성이 당신들의 사상적 자산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무책임한 일도 없을 것이다. 고아의 실존을 내 것으로 끌어안을 열린 회로를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백지운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2015.12.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