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국회의장의 어깨에 걸린 민주주의
교수신문에 의하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전국 교수 88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24명(59.2%)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 암흑에 덮인 것처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행해지지 않음)를 선택했다고 한다. 비단 올해만이 아니라 지난 3년을 총괄하는 말로 가장 적합해 보인다.
하지만 혼용의 군주로 말미암은 무도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좀더 명료하게 서술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다른 단어로 연결해볼 필요가 있다. 적합한 후보가 될 말은 쿠데타인 듯하다. 대통령이 지난 3년간 해왔고 또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내 보기에 쿠데타이다. 너무 과한 말로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전형적이었고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가 동참했던 제3세계의 군사 쿠데타만이 쿠데타인 것은 아니다. 애초에 쿠데타는 좀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 비춰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해온 일을 쿠데타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어 보인다.
쿠데타의 본질
쿠데타, 그러니까 “국가를 타격함”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려면 국가라는 말의 의미론을 뒤적이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스테이트’(state, 프랑스어로는 에따état)라는 말을 일본 사람들이 ‘국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이런 번역어 선택 때문에 근대로의 이행기에 서구에서 ‘상태’를 뜻하는 스테이트라는 말이 정치체를 지칭하게 된 이유를 알기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다. 사실 정치체는 폴리스, 리퍼블릭, 커먼웰즈, 왕국, 제국 등으로 다양하게 명명되었다. 스테이트도 그중 하나다. 이 말이 정치체를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된 것은 베스트팔리아 조약(1648)에서부터이다. 그 이전 서구에서 정치체는 카이사르의 후계자이자 기독교의 수호자인 황제가 다스리는 영원한 나라, 신성로마제국을 기본 모델로 했다. 하지만 독일지역 인구를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게 한 30년전쟁을 종식시키며 맺어진 베스트팔리아 조약은 존재하는 정치체들 사이에 균등하고 항상적인 관계를 확립했다. 이제 정치체는 현 상태를 유지하고 계속해서 존속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기구가 되었고, 같은 의미로 스테이트로 명명되기 시작했다. 이런 명명의 일반화는 우리가 베스트팔리아 조약이 형성한 국가간체제(inter-state system)와 그것을 떠받치는 지구문화 속에 있음을 뜻한다.
쿠데타는 그런 스테이트를 타격하는 행위인데, 항상 자신의 근거를 스테이트 내부에서 길어올린다. 쿠데타는 스테이트를 위기 또는 비상사태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스테이트의 일상적 작동을 정지시키는 행위가 된다. 여기에는 예외상태 또는 비상사태의 논리가 작동한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정지시키거나 유예하는 것, 또는 비정상을 정상상태로 돌려놓겠다며 비정상적 조치가 시행되고 그것이 정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쿠데타의 의미론에 비춰보면, 분단체제는 세계 최장의 비상사태 또는 예외상태임이 드러난다. 1948년 여순사건을 계기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될 때, 당시 법무부 장관 권승렬은 “이것은 물론 평화시기의 법은 아닙니다. 비상시기의 비상조치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국가보안법은 이면의 헌법으로 자리잡았다. 같은 선상에서 87년체제의 수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조명할 수 있다. 그것은 쿠데타를 종식시키고 스테이트의 일상을 회복하는 것, 선거경쟁을 통한 집권을 제도화함으로써 분단체제를 내파할 수 있는 절차를 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전’ 중인 대통령, 민주주의를 걸머지게 된 국회의장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집권기간 동안 해온 일은 87년 헌법 안에 규정된 절차와 헌법기관들의 권한을 파괴하고 굴복시키는 일이었다. 그 전형적인 예가 검찰총장을 솎아내고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낸 일, 정당 해산과 국회의원 제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것들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쓰인 “심리전”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집회를 “소요”로 인식하는 것이 보여주듯이, 교통방해죄를 저지른 사람을 잡기 위해서 서울 시내에 2500명의 경찰을 배치하는 것이 보여주듯이 대통령은 지금 ‘내전’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전의 심리가 쿠데타의 동기인데, 이제 그 창끝이 국회의장을 향하고 있다. 연서한 직권상정 촉구 결의안을 들고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의 쿠데타에 가담한 셈이다. 몇몇 소신있는 의원들이 상임위 곳곳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내분으로 너덜너덜해진 야당은 스테이트의 헌정을 수호할 힘을 잃었다(바로 이 때문에 그들이 대통령보다 더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런저런 회의를 주재하며 역사의 심판 운운하며 쟁점법안들의 통과를 매일 요구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확성기가 된 공중파와 종편은 그 발언을 하루종일 퍼 나르고 있다. 그럼으로써 대통령의 발언이 국회로 진군하는 쿠데타의 군홧발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2015년 남은 며칠 동안 국회호(號)와 민주주의의 운명은 여당 출신 국회의장의 어깨에 걸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
정의화 국회의장이여, 이 배에서 내리지 마소서!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5.12.2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