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직업병 문제의 종결”을 외치는 삼성과 참담한 피해자들
1월 19일, 국내의 한 언론은 「‘백혈병 사태 8년’ 마침표 찍다」라는 기사를 아래와 같이 끝맺었다. “이로써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 반도체공장 여성노동자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한 후 재해예방, 사과, 보상을 쟁점으로 8년 10개월간 끌어온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머니위크) 기사 어디에도 그 황유미 씨의 아버지가 100일 넘게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보다 앞선 1월 14일, 삼성전자 권오현 대표는 여섯명의 직업병 피해자들을 따로 불러 일종의 사과‘식’을 거행했다. “아픔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정도로 별 내용은 없는 사과문을 전달하는 행사였지만, 삼성 스스로는 이를 “백혈병 이슈 9년 만에 해결하는 상징적 순간”이라 평가했다. 현장에서는 “직업병 조정과 관련한 쟁점은 모두 해결됐다”는 일종의 사태 종료 선언도 나왔다. 삼성은 정말 간절하게, 9년째 이어져온 직업병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부터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과의 교섭약속을 파기하고 조정절차마저 거부한 채 자체적인 보상절차를 강행해왔다. 삼성이 원하는 대로 직업병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그 보상절차가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때문에 삼성은 약 한달 간격으로 언론에 “60명”, “90명” 식으로 보상신청자의 수를 알렸고, 최근에는 “보상신청자는 모두 150명이 넘고, 그중 100명 이상이 보상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삼성은 지난해 12월 10일, 언론에 “보상 신청자 중에는 반올림을 통해 보상을 요구한 사람이 20명 가까이 있다”는 점을 알렸고, 삼성의 입을 좇는 수십개의 언론은 일제히 같은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삼성의 노림수야 뻔했다. 삼성의 보상절차에 반대하는 반올림이 한때 함께했던 피해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삼성의 보상절차는 실제 어떠한가
그러나 정말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었는지를 알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삼성의 그 보상절차가 실제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절차가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그 절차 안에서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단 삼성이 중계하듯이 발표하고 있는 그 숫자들을 온전히 믿기 어렵다. 삼성의 보상은 말 그대로 밀실 절차다. 실제 몇명이 보상신청을 하여 어떠한 보상을 받았는지가 삼성의 입을 통해서만 알려지고 있다. 설마 삼성이 이런 거 갖고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우리 모두는 삼성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오랜 시간 예상치를 크게 벗어날 정도로 뻔뻔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하여 삼성은 그동안 너무도 명백한 거짓말들을 많이 해왔다. 이보다 더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었다.
반올림과 관계를 맺어온 피해자들 중 일부가 보상신청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반올림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삼성의 바람과 달리 그들은 여전히 반올림과 소통하고 있고 반올림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도리어 일부 피해자들이 먼저 반올림 측에 보상신청을 하는 게 옳은지를 물어왔다. 하지만 반올림은 그들에게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보상절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삼성이 보상신청 기한까지 정해놓은 마당에, 당장의 치료비와 생계비가 절박한 그들에게 무어라 말하는 게 옳은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삼성의 보상절차를 직접 경험한 후, 그 실태가 어떠한지를 담담하게 전해주었다. 대략적인 절차는 이러했다. 피해자가 보상신청을 하면 삼성 직원이 직접 집으로 찾아와 미리 산정해온 보상금 액수를 제시한다.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구체적인 산정기준을 물으면 “내부기준에 따른 것이다. 이의를 제기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피해자가 그 돈이라도 받으려면 합의서에 싸인을 해야 했는데, 정작 피해자는 그 합의서의 사본을 보관할 수도 그 합의서의 내용을 촬영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은 일방적으로 제시된 그 돈을 받기 위해, 지나고 나서는 내용확인도 어려운 어떤 문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다.
삼성은 별도의 홈페이지를 열어 보상기준을 공표하고 있는데 그 내용 중에도 거짓이 많다. 그곳에는 “조정위원회의 보상기준과 원칙을 수용”한 보상절차라는 점이 수차례 강조되어 있으나 명백한 거짓이다. 보상절차의 성격과 내용, 보상대상의 범위 등에서 삼성의 보상절차는 조정권고안과 판이하게 다르다. 또한 모든 보상대상자들에게 ‘치료비’만큼은 전부 지급할 것처럼 알리고 있지만 그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어느 피해자는 치료비 중 일부만 지급하는 것에 대해 “홈페이지에 적힌 내용과 다르다”는 항의를 해보았지만, “(더 받으려면) 소송을 하라”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심지어 공표된 보상기준에 들지 못하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조건으로 다른 명목의 금전 지급을 제안하는 일도 있었다.
9년 전과 무엇이 다른가
사정을 들어보면 ‘보상’이라기보다는 돈을 앞세운 ‘회유’에 가깝다. 9년 전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황상기 아버님을 대했던 태도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때도 삼성은 피해자들을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아무 잘못도 인정하지 않은 채 위로금 명목의 돈을 제시했고, 당장의 병원비를 대기에도 급급했던 많은 피해자들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못한 채 그 돈을 받아야 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상절차에서 가장 고약하게 생각했던 것은 삼성이 2015년 12월 31일까지 접수한 피해자에 한해 보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못박았었다는 점이다. 보상절차가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피해자들도 큰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삼성은 부당하게 내몰린 보상신청자들의 수를 자랑하듯이 발표해온 것이다.
작년 12월말, 그러니까 삼성의 보상절차가 문을 닫기 직전, 어느 피해자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고생하시는데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구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이 무엇인지... 사람을 참 비참하게 만드네요. 알다시피 아프고 돈이 없어 수급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한테 늘 부족한 엄마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조금 움직일 수 있을 때 아이한테 좀더 잘해주고 싶어서 보상위에 신청했어요. 저만 이렇게 신청해서 죄송해요. 신청했다고 말을 해야할거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반도체 공장 안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꼽히는 ‘포토’ 공정에서 일했던 분이다. 물론 일할 때는 그런 줄도 몰랐다(포토 공정의 위험성은 이분이 퇴사한지 10년 후에야 알려졌다). 완치가 불가능한 희귀질환에 걸려 20년 넘게 투병 중이다. 병세가 악화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몸이 아파 일을 하기도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고 있다. 고심 끝에 보상신청을 하였더니, 삼성은 고통을 위로하고 생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제시하며 합의를 종용했다. 어쩔 수 없이 합의는 했지만 참담한 마음은 여전하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그러한 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오른다. 왜 이들이 참담하고 미안해야 하는가.
임자운 / 변호사, 반올림 상임활동가
2016.1.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