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정권교체를 선택한 대만, 그 미래는?
1월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를 전후해서 대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민진당이 총통과 입법원(국회의원) 동시 선거에서 최초로 모두 승리하면서 단 한번도 집권하지 못했던 의회권력에서까지 압승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대만은 민진당이 원하던 대만 독립을 향해 가는 것일까? 과연 대만의 미래는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국민당의 분열과 실패
민진당의 승리와 관련한 국내의 다양한 보도를 보면 한국이 놓치고 있는 몇가지 근본적 인식에 대해 좀더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첫째로, 이번 선거 투표율은 사상 최저인 66.27%에 불과했다. 만약 국민당이 150여만표를 얻은 친민당의 쑹 추위(宋楚瑜)와 연합하거나 단일화를 했다면 민진당의 차이 잉원(蔡英文)이 689만여표를 득표한 것으로 볼 때 박빙의 승부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2012년 선거에서 국민당이 얻은 표 역시 689만여표다). 즉 범여권인 친민당 에 대한 국민당의 홀대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둘째, 국민당은 외성인(外省人,중국공산당에 패배한 이후 중국국민당과 함께 타이완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본성인(本省人, 외성인 이주 이전부터 거주하던 한족계)의 협력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마 잉지우(馬英九) 총통이 2012년 재선에 성공한 뒤 국민당 본성인 정치세력의 실질적인 지도자이자 국회의장이었던 왕 진핑(王金平)을 사법부에 대한 불공정 간섭을 이유로 하야시키려다가 실패한 사실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외성인인 마잉 지우가 본성인인 국회의장을 정치공작으로 하야시키려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마총통의 지지율은 50%대에서 20%대로 떨어지고 조기 레임덕에 시달리게 된다. 즉 국민당 내부의 다양한 계파에 대한 합당한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정치투쟁을 겪으면서 국민당 내부와 범여권까지 분열을 초래함으로써 결국 선거에서 참패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치 한국의 야당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국민당의 실패는 일종의 반면교사이지 않을까?
민진당과 ‘92컨센서스’
1992년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한 ‘92컨센서스(共識)’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는 구두로 합의한 것으로 정식 문건으로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각자 서술’이라는 형식의 모호성(Ambiguity)을 담보로 한 것이다. 중국은 대외 문건에서는 단 한번도 ‘각자 서술’ ‘각자 이해’ 같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으며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한데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민진당은 92컨센서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대만 민중 대다수가 원하는 현상유지를 지지하며 양안의 기존 협의들을 존중한다고만 정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대만의 민의를 대변하는 민진당과 진검승부를 해보겠다는 것이 중국공산당의 의도가 아닐까? 국제 체육대회에서 자신들의 ‘중화민국 청천백일기’를 들지 못하는 대만은 이제 대만독립을 주장하면서 국민당과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를 부정하던 민진당이 재집권함으로써 양안관계의 모호성을 걷어내고 민낯으로 설 것을 중화인민공화국으로부터 요구받고 있다.
최근 논란이 된 한국 아이돌 그룹 소속 쯔위의 사건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즉 국민당 시절의 모호성을 중국이 이제는 더이상 용납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은 아닐까? 만약 차이 잉원이 국제 정치·경제적 충격 속에서 중국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면 대만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2012년 총통 선거에서 중요 대만 기업가들에게 국민당 지지선언을 은연중에 유도했던 중국공산당의 선거 개입 노력은 왜 이번에는 없었던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우리는 차이 잉원이 언론을 통해 이번 선거에 특별히 개입하지 않은 중국공산당에 감사를 전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중국은 대만 민의에 기초한 민진당의 집권을 받아들이고 민진당과의 협상을 통해서만 대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만과 동아시아의 미래
마 잉지우 총통은 한국 같은 경쟁국가들이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세계적 경제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해외 FTA 협상에 임했다. 가장 가시적인 성과는 중국과의 ECFA(경제협력기본협정) 협정 체결이었는데 이는 결국 기업체들의 중국 투자를 촉발하면서 기업가들에게는 이익을 주었으나 일반 민중들에게는 심각한 취업난과 소득양극화라는 문제를 남겼다. ECFA 서비스 협정으로 인한 미래 취업시장과 임금격차 문제에 대한 불만이 ‘태양화’라는 학생운동의 시발점이었음을 기억해보면, 차이 잉원이 선거 전 미국을 방문하여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과연 대만 민중의 취업문제와 빈부격차 증대와 같은 불공평·불공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미국은 최근 새로운 대중국 봉쇄 환경을 완성해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문제 졸속 타결 역시 이러한 일련의 국제환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만의 민진당은 친미·반중 구도를 통해 기존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대만이 중국과 대결구도로 전환한다면 대만의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 총통과 의회권력 획득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이룩한 민진당은 과연 천 슈이벤(陳水扁, 2000~2008 집권) 시절의 친미·반중 정책을 되풀이하면서 대만독립이라는 위험한 이상을 실현하려 할까? ‘절대반지’와도 같은 절대권력을 소유한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진당도 자제력을 잃을까? 아니면 대만과 동아시아 평화를 구현해내는 새로운 정치노선을 찾아낼까?
또 하나의 시사점
한편 한국과 대만 모두 이른바 88만원세대, 22000위안세대(한화 약 79만원)라는 청년취업난, 빈부격차 확대 등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대만에도 좌익이 필요하다는, 국민당과 민진당 같은 보수정당들에 대한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대만 언론 『두리핑룬(獨立評論)』의 우 웬웬은 “2005년 종합토지소득세를 절반으로 줄여준 것은 민진당이며, 심지어 국민당은 2008년 상속세를 50%에서 10%로 내려주기까지 했다”고 비판한다. 또한 “왜 민주주의는 발전하는데, 왜 국민소득은 꾸준히 증가하는데, 기업들은 우리에게 힘든 시기를 함께 견뎌가자고만 하는가? 왜 대만의 부유층은 더욱 많은 부를 소유하고 우리는 점점 가난해지는가?”(2016.1.19)라고 절규한다.
우리와는 달리 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군사적 대치도 크게 완화된 상황에서 통일이냐 독립이냐와 같은 거대담론은 어쩌면 대다수 대만인들에게는 지금 당장 시급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취업은 가능할까? 더 나은 미래는 가능할까? 민진당의 가장 커다란 당면과제는 이 문제들이 아닐까. 대만 내부에서 건전한 좌익이 필요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양태근 / 한림대 중국학과 교수
2016.1.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