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미국 아이오와 경선, 진짜 아웃사이더의 도전
미국 대선의 막이 올랐다. 6월 중순까지 이어질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경선이 2월 1일(미국시간) 아이오와에서 시작되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뽑히는 대의원 수는 적지만, 첫 경선으로서 대선판도를 짚어볼 수 있는 풍향계로 불리면서 주목을 받는다. 이런 전국적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주보다 먼저 실시할 것을 아예 법으로 규정해둘 정도다.
경선결과는 ‘예상대로’라는 평가와 ‘예상외’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민주당은 불과 0.3퍼센트 차이로 힐러리 클린턴이 신승했지만, 버니 쌘더스의 말처럼 사실상의 무승부라고 할 정도로 초접전이었다. 공화당은 파죽지세의 전국적 지지율을 달리던 도널드 트럼프가 테드 크루즈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했다. 아이오와 풍향계는, 민주당 쪽은 맞바람에 멈춘 듯 방향이 불분명해졌고, 공화당 쪽은 바람의 방향이 일순간 바뀌었다. 클린턴이나 트럼프가 확실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풍향계 역할을 제대로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풍향계의 의미가 반감되었다면, 아이오와 경선의 함의는 무엇일까?
절망과 분노가 판을 키우다
선거는 늘 기성정치에 대한 새로운 정치의 도전이라는 양상을 띤다. 8년 전 오바마 역시 정체성과 성공전략이 ‘변화’에 모아졌었다. 묘한 것은 미국사회가 점점 양극화로 치닫는 극단적 이념분열 양상에도 불구하고 양당 후보자들이나 지지자들 모두 현 시스템이 작동불가라는 일치된 평가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분노한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이번 선거는 단지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넘어서 그야말로 아웃사이더의 반란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민주당에서는 미국에서 무신론자보다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가 더 불가능하다는 사회주의자 쌘더스가, 공화당에서는 정치 문외한에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돌풍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사회가 가진 기성정치에 대한 절망과 분노가 이들 아웃사이더들을 안으로 불러들이고, 점점 두려운 도전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다른 성격의 아웃사이더다. 트럼프는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사람들의 좌절감과 증오심을 이용하고 있다. 그에게서 바이마르 민주주의에 절망하고, 전후 극도의 경제난에 지친 사람들을 부추겨 정치혐오와 인종주의를 선동했던 히틀러의 그림자가 비친다. 백인 중산층과 노동자들의 삶을 힘들게 만든 진범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도리어 약자에게 분풀이하고, 돌팔매질할 희생양을 찾는 야수로 사람들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트럼프를 2위로 밀어낸 것은 반문명적 인물에 대한 미국인의 양식이 일단은 살아 있음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쌘더스는 기성체제에 대한 분노와 절망을 정치 불신이 아니라 정치의 회복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1972년 첫 공식 선거에 출마한 후 34년 만에 대선후보에 도전한 그의 인생역정은 그가 단순한 선거승리가 아니라 정치혁명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치란 수많은 사람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해결하는 일이며, 모든 사람이 희망을 가지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는 선거를 통해 얻는 권력으로, 우군이 변변치 못한 사람들을 대변해 그들의 삶을 향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쌘더스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듣는 풀뿌리민주주의를 고집한다.
아이오와의 결과가 보여주는 또다른 함의는 바로 전선의 부각이다. 트럼프식 극우에게 일격을 가했지만 크루즈 역시 기독교우파와 티파티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으며, 1980년 레이건 이후 지속적으로 우경화해온 미국사회를 대변한다. 작동불능의 기성체제를 만든 것은 비대해진 정부라 공격한다.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경제동력을 무력화했기 때문이며, 이민자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민주당은 월가를 위시한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극단적 빈부격차에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전선이 선명해지는 것이 국론분열의 상흔만 남길지 미국의 미래를 위한 냉철한 선택의 계기가 될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약자를 위한 정치는 가능할 것인가
아이오와의 결과는 물론이고, 이번 대선 전체가 제기하는 또다른 문제가 있다. 기성정치에 대한 혐오는 공통적이겠지만, 약자를 위한 변화에 대한 진정성은 매우 달라 보인다는 것인데 이는 양당에 모두 적용된다. 부동산으로 수십억 달러를 모은 억만장자 트럼프는 말할 것도 없고, 월가의 재정적 도움에 의존해 현대판 왕조를 꿈꾸는 클린턴, 그리고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월가의 상징인 골드만삭스의 고위직 아내를 둔 크루즈는 무너진 기성질서의 공모자가 아닌 약자를 위한 진짜 변혁자임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정치의 목적과 당위성은 약자를 향함에 있다. 제한된 자원과 인간의 무한한 욕심의 조합은 강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기에, 약자들에게는 정치의 공공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정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쌘더스의 노력은 의미를 지닌다.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 그의 말처럼 작년 초 40퍼센트가 넘었던 지지율 차이를 극복하고 사실상의 무승부까지 왔다. 물론 이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정치혁명을 넘어 더 큰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이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한세기 이상 공화당의 아성이었던 버몬트에서 이른바 ‘좌빨’이 시장 4선, 하원 8선, 상원 2선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올바른 정치란 이념투쟁이 아니라 시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길임을 그가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 국제정치
2016.2.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