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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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여섯 빛깔 무지개』 『여섯』

당신의 무지개는 어떤 색깔인가요
-임근준 외 『여섯 빛깔 무지개』· 노휘영 외 『여섯』

 

 

beffrhehe여기, 두권의 책이 있다. 제목부터 비슷하다. 발간시기도, 조용하지만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화제가 되고 있다는 점도 닮았다. ‘한국에서 LGBT(성소수자 공동체를 지칭하는 가치중립적 단어로,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의 약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가 기반인 『여섯 빛깔 무지개』(워크룸프레스 2015), 그리고 게이 여섯명과 그들의 친구 여섯명이 짝꿍이 되어 함께 써내려간 이야기를 담은 『여섯』(6699press 2015)이 그것이다.

 

2014년 20회를 끝으로 종료된 <여섯 빛깔 무지개> 팟캐스트는 녹취와 편집, 화보 촬영 등의 과정을 거쳐 동명의 단행본으로 재탄생했다. 게이 번역가, 인권운동가, 레즈비언 변호사, 트랜스젠더 뮤지컬 배우 등 다채로운 출연자들의 면모를 6개의 장으로 재구성해 팟캐스트를 들을 때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6개 주제 모두가 각기 한권의 책으로 다시 나와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내용적으로도 충실하다. 가장 큰 장점은 친절한 안내서라는 점이다. HIV/AIDS 같은 질병에 대응하는 방법, 동성혼 법제화, 성전환, 하위문화, 인권운동까지…… 가히 LGBT에 대한 종합정보세트라 할 만하다. ‘이성애자’와 ‘여성’의 정체성이 확실한 기획자의 입장에서 LGBT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모르는 초보자를 위한 책이 필요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번번이 팟캐스트 녹음을 중단시키는 민폐를 끼치면서도 당당(?)했던 건, 성소수자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 때문이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존재, 성소수자

 

사실 나 역시 그동안 성소수자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온 한 사람이다. 성소수자 4천명이 참여한 ‘한국 LGBTI(LGBT+Intersex)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2014)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을 다닌 경험이 있는 응답자 2455명 중 57.7%가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직장동료가 아무도 없다고 했고, 23.4%가 ‘거의 모른다’고 답했다. 성소수자의 사회적 존재감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성소수자 차별’이라는 주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게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존재를 인지해야 차별을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기 마련이다. 커밍아웃을 통한 개인의 가시화가 어려운(혹은 성소수자를 비가시적으로 만드는)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당사자들이 '사회적 투명인간'의 길을 선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팟캐스트 출연자 섭외에서도 극명히 드러난 바 있다. 예상은 했지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의 절대 다수가 게이이다보니 성소수자 내에서도 발언권의 차이가 존재했다. 레즈비언과 M2F(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 트랜스젠더는 섭외 포기를 고민했을 정도로 어려웠다. 레즈비언 연예인은 물론, 공개 결혼한 김조광수-김승환 커플과 같은 레즈비언 공개 커플, 예쁘지 않고도 성공하는 트랜스젠더와 같은 사회적 역할 모델이 더 많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팟캐스트가 시작된 2014년부터 책이 나온 2015년, 단 2년 동안 LGBT사회의 지형도는 급변했다. 2015년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고, 한국에서도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그것도 레즈비언)가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LGBT를 위한 서점 ‘햇빛서점’, 성소수자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정리하는 퀴어 아카이브 ‘퀴어락’, LGBT를 다루는 전시공간 ‘청량 엑스포’ 같은 공간도 속속 생겼다. 이 두 책도 공공영역에서 일정 부분 지원을 받아 발행됐다는 사실 역시 고무적이다. 물론 아직 사회의 편견은 공고하다. 친구에게 커밍아웃한 사람은 많아도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가 드문 이유다. 한국사회에서 커밍아웃은 여전히 “가족과 확대가족 공동체에 대한 배신의 성격을 띠는 돌출 행동으로 간주”(『여섯 빛깔 무지개』 7면)되기 때문이다. 『여섯 빛깔 무지개』에는 정신질환으로 오해해 정신과 치료 권유를 권하는 것부터 “네 인생인데 네가 알아서 살아라”는 쿨한 반응까지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여섯』에는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서로에게 전하는 진심어린 편지

 

『여섯 빛깔 무지개』가 한판 수다의 장이라면, 『여섯』은 내밀한 고백과 진심어린 편지에 가깝다. 어느 게이가 “두 개의 삶을 따로 짊어지고 걷는 나는 행복한 것일까. 그녀에게 이야기하고 나면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우리의 존재를 다르지 않은 것으로 공감하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자 여자인 친구는 “다가온 사랑에 진실하게 반응했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거절하기도 하며 정직하게 살아왔을 뿐”(50면)인데 유부남을 만나고 있는 현실을 털어놓는다.

 

성소수자를 다룬 콘텐츠가 거의 없고, 당사자들의 직접 발언은 더욱 희귀한 현실에서 이 두 책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이야기’다. 커밍아웃부터 시작해 한 개인이 ‘남들과 다른’ 성 정체성을 깨닫고, 이를 인정하고, 이후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과정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나 관심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들어보기 힘든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두 책 덕에 더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다”며 “비뚤어진 사람들이 너희를 비뚤어지게 하는 걸 내버려두지 말라”(『여섯 빛깔 무지개』 447면)는 조언은 그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지 않는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세상은 변하는 거’라는데, 이 책들에 나와 있는 한마디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권을 함께 읽는다면, 그리고 <여섯 빛깔 무지개> 팟캐스 트까지 같이 듣는다면, 당신의 세상은 좀더 달라질 것이다.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이고, 느끼지 못하던 것들이 느껴질 테니까. 그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빛깔로 다가올 터. 사회의 시계가 갈수록 계속 가고 있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라도 ‘It gets better, 더 나아질 것’(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 유튜브 동영상을 올리는 캠페인의 이름)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다면! 한 사람의 독자로서 “새로운 세대의 도약을 위한 정신적 구름판”(『여섯 빛깔 무지개』 10면)으로 이 책들이 널리 읽히길 바란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2016.2.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