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대북제재를 넘어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해 남한, 미국, 일본이 차례로 독자적인 제재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도 북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핵실험을 감행한 것에 대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23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장과 케리(J. Kerry) 미 국무장관의 회담에서도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UN에서 국제사회의 제재 방안도 곧 통과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재만으로 북의 핵능력 강화에 제동을 걸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실현시킬 길을 열 수 있는가에 있다.
남한, 미국, 일본의 제재가 특별한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현실 때문에 결국 중국의 태도가 유일한 변수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중국이 대북제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기 위해 한국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을 카드로 들고 나왔고, 미국은 쎄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북한과 거래를 하는 제3국 기업에 대한 제재) 조항을 새로 통과된 대북제재법안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는 당장 북에 대한 압박을 증가시키기보다는 한-중, 미-중 사이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결과만 낳았다.
제재만능론의 문제점
사드 도입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이것이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방어하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고각도로 발사했다는 이유만으로 40~150km 고도에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사드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으나, 북은 개성 남쪽에 장사정포를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남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반면 중국은 남한에 대한 방어에 효과적이지 않은 사드 배치는 미국의 대중국 군사전략의 일환으로 판단하고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통과시킨 법안은 행정부에 쎄컨더리 보이콧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이란과 달리 자동적으로 조항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이 제재가 발동될 경우 일차적인 타겟은 중국의 기업이나 은행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봉쇄를 위해 이 방안을 동원한다면 중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고 중국과 미국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결론은 사드 논의와 쎄컨더리 보이콧이 지금 북에 대한 제재로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합의가 가능하고 실제로 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제재는 핵 및 미사일 관련 행위에 대한 제재 강도를 높이는 쪽이다. 다만 이러한 제재는 북의 관련 활동을 제약하고 지체시키는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 그뿐 아니라 제재 일변도로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최근 한국 정부와 일부 언론이 대북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면서, 효과적인 대북제재 방안의 사례로 미국이 2005년 9월 BDA(마카오에 소재했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를 돈세탁 우려 기관으로 지정했던 경우를 예로 들고 있다. 당시 마카오 금융당국은 이 은행 내의 북한계좌를 동결시켰고 다른 국가들의 은행도 북한 기업 등과 거래를 꺼리게 되었다. 이것이 북한의 대외경제활동에 큰 타격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정부와 언론이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에 바로 직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이 사문화되고, 1년 뒤인 2006년 10월 북한이 최초의 핵실험을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제재는 효과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북의 핵실험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결국 누구도 아닌 미국 자신이 대북협상에 나서면서 ‘2·13합의’(2007)가 이루어지고 다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가 시작될 수 있었다. 6자회담 무용론도 주장되고 있으나 북의 세차례 핵실험은 6자회담이 중단된 시기에 진행되었다.
힘에 대한 맹신 대신 지향점과 현실성을 고민할 때
햇볕정책과 6자회담이 중단된 지 오래되었다. 지금도 북의 반복된 핵실험의 책임을 햇볕정책과 6자회담을 전가하는 것은 기본적인 인과관계조차 무시하는 주장이다. 지난 8년 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은 ‘저강도 제재’를 유일한 기둥으로 삼았다. 따라서 저강도 제재가 효과가 없으니 고강도 제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최소한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땅한 고강도 제재수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는 북의 핵능력 강화 명분을 세워주고 한반도의 군사적 대립을 고조시킬 것이다.
따라서 UN에서 제재논의가 일단락되면, 그 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동시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실현 가능한 방법을 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대화 재개가 필수적이다. 물론 대화의 방향이 있어야 하는바 그것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병행추진이다. 최근 중국 왕이 외교부 부장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주목받는 방안인데, 이는 이 문제와 관련해 관련국들 간의 유일한 합의인 9·19공동성명의 핵심원칙이기도 하다. 그런데 잃어버린 8년 동안 북한이 핵능력을 강화했고,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했기 때문에 이 원칙을 실현시키는 데 어려움이 커졌다. 북한은 비핵화가 아니라 핵군축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나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 주한미군과 한미군사동맹에 미칠 영향 때문에 미국은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최근 미국이 북에 평화협정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그 전후에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왔다.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두 바퀴가 굴러갈 수 있게 하는가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화, 동북아 차원에서는 ‘신냉전체제’의 도래를 방지하고 평화와 번영을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제재이건 대화이건 그 과정에서 곡절은 많겠지만, 합당하고 명확한 목표를 갖고 추진할 때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제 감성적 반응과 힘으로 어느 일방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분명하게 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과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이다.
이남주 /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2016.2.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