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나는 모르고 있었다: 송경동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를 읽고
며칠 전 출간된 송경동의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를 읽었다. 얼마간 부끄러움을 각오하고 시집을 펼쳤지만, 짐작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나 자신이 바로 그 ‘짐작’으로 현재의 ‘노동현실’이나 생존을 건 투쟁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고통, 분노, 고뇌를 내가 감당할 만한 자리에서 편하게 타자화해왔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사실의 확인이었다.
생각해보면 해고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이나 고공농성의 처절한 상황들을 연신 접하면서도 마음 한편의 무력감은 쉽게 그 사안들로부터 물러설 알리바이로 기능했지 싶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다. 분노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고 매번 멈추었고, 이것은 더이상의 생각과 관심을 주저앉히기에 맞춤한 타성이 되어갔던 것 같다. 내 속에서 어설프게 정형화되고 틀을 입은 채 남아 있던 ‘80년대’, 혹은 80년대 ‘노동문학’의 기억이 또 하나의 회피 수단으로 편리하게 사용(私用)되고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겠다. 가장 큰 문제는 그러는 가운데 몸은 뒤로 물리고 제대로 된 관심은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그이들의 절박한 싸움에 대해 나도 어느만큼은 알고 있다는 착각을 키워왔다는 것일 테다.
비겁한 울타리
송경동의 시는 그렇게 안다고 믿으며 둘러친 게으르고 비겁한 자기방어, 자기기만의 울타리를 쓱 밀고 들어왔다. 울타리는 무너지는 줄도 모르게 허물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생생해서였을 것이다. 노동의 기억이든, 일하고 싸우다 사라진 빈자리에 대한 애끓는 추모든, 노동자를 사지로 내모는 국가권력과 자본에 대한 분노든, 흔들리는 자신에 대한 회의와 성찰이든, 몸과 함께하는 어떤 결의든 송경동의 시에는 그만큼의 땀내, 눈물, 시간이 그렁그렁하다. 그러나 넘치지 않고 발화의 자리를 자신의 안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생생하다. 너른 등판으로 꿋꿋이 잘 버텨왔을 것 같건만, 한날한시 여섯통의 소환장을 받을 정도로 지치지 않고 싸워온 것 같건만, 묵비권이라면 이제 웬만큼 이력이 날 만도 한 것 같건만, 밤바다 파도의 밤샘 취조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진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고
얼굴을 냅다 후려치는 파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자갈처럼 구르며 울고만 싶다
이십여년 노동운동 한다고 쫓아다니다
무슨 꿈도 없이 찾아간 바닷가
파도의 밤샘 취조
―「바다 취조실」 부분
그렇다면 그 파도가 어르고 달래며 따져 물은 취조 내용은 무엇이었나.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 밤에도 도는 라인이 있다고” “이 밤에도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시인은 뭐라고 대답했나.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제 모른다 모른다고 한다” “나는 이제 모두 잊고만 싶다고 한다”.
이 파도의 밤샘 취조는 정말 이상하다. 읽고 또 읽어도 이상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자갈처럼 구르며 울고만 싶다”. 나는 여기서 한참을 멈춘다. 고백해야겠다. 밤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이 밤에도 도는 라인이 있는지, 이 밤에도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정말 몰랐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자갈처럼 구르며” 우는 일은 전혀 내 몫이 아닐 테다.
수없이 많을 연대의 이름들
경찰서 소환이 일상이 된 시인이어서일까. 「교조」라는 시는 흡사 경찰서 조사실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내가 느낀 그 어떤 것도/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시작되는 시는 이렇게 끝난다. “당신은 하나의 틀만 가지고 있는데/내 열망과 상처는 수천만갈래여서/이제 당신에게 다가갈 수 없군요”.
언제부터였을까. 광화문광장이나 청계천광장에서 농성 중인 해고노동자들을 지나치며 그저 그러려니 무감해진 게. 트위터에 연신 올라오는 고공농성자들의 간절한 통신을 이상한 불편함으로 건너뛰기도 한 게. ‘내’ 열망과 상처는 여러 갈래일 테지만, 저 ‘노동과 투쟁’의 이야기는 어쩌면 하나의 틀, ‘교조’일지도 모르겠다고 내 멋대로 단정하기 시작한 게. 이런저런 근사한 말과 글로 울타리를 만들기 시작한 게.
캄보디아 한국공장에서 현지 노동자들의 시위를 유혈로 진압한 충격적인 사태를 접하고 송경동 시인은 묻기 시작한다.
한국의 수출자유무역공단에서
이십여년 노동운동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사양산업이 도산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도산, 폐업, 해외 이전하는 봉제공장 전자공장 노동자들 곁에서
십수년 ‘빠이빠이’ 눈물바람이나 하며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부분
국가 단위를 넘어선 노동현실을 포함해서 당면한 노동운동의 고민들을 여러 갈래로 엮어 넣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심문하고 있는 이 시에서 시인은 ‘-이다’ ‘-아니다’의 긍정과 부정을 반복하며 가능한, 그리고 마땅한 술어를 찾아간다. 그것은 일견 분열처럼 보이지만, 기실 연대의 이름들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오래 잊고 있었던 이 ‘분열’의 용법을 기억하고 싶다.
멈춰서는 안될 발화
시집의 마지막 5부에는 ‘추모시’들이 들어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을 추모하며’라는 부제가 붙은 「너희는 참 좋겠구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너희는 좋겠구나
이젠 5·18 광주에서처럼
총으로 곤봉으로 대검으로
쏘아 죽이고 때려 죽이고 찔러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어가니
2011년 열다섯번째 희생자가 나왔을 때 썼던 시다. 2012년 스물두번째 희생자가 나왔고, 어느새 희생자는 스물여덟으로 늘었다. 시 뒤에 붙은 시작(詩作) 노트는 이렇게 끝난다. “이 시는 몇번이고 죽음의 숫자를 고쳐 읽어야 했다.” 매번 현장에서 터져 나왔을 울음의 봇물이 보인다. 적어도 이 죽음의 숫자가 있는 한 우리는 발화해야 한다. “나는 한국인이다/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6.2.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