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2008년 미국대선을 읽는 키워드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지난 6월 3일과 5일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후보자 토론회가 연이어 열리고 각 토론회의 긴장감도 뚜렷하게 고조되면서 미국정치가 대선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음이 실감나고 있다.
민주당 토론회에서는 전국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중 3위에 머무르고 있는 에드워즈가 1위 힐러리와 2위 오바마가 최근 부시의 이라크 전비 추가예산안에 대해 소극적 반대로 법안의 통과를 사실상 묵인(표결에서는 반대표를 던졌지만)한 것을 비판하며 차별화에 나서면서 토론회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공화당의 경우도 이민법 문제를 둘러싸고 2, 3위 경쟁을 하는 매케인과 롬니가 이민법과 관련하여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고, 현 공화당 후보들에 대해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보수층 유권자들을 겨냥하여 레이건의 영광을 연상시키는 영화배우 출신 톰슨 전 상원의원이 출마선언을 준비하면서 후보자들 사이에 긴장도를 높이고 있다.
2008 미국대선의 정치적 의미
각 당의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프라이머리(예비선거)가 8개월, 본선이 1년 반 가량 남아 있는 지금 이런 분위기는 조금 때이른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하고 부시행정부에 대해 사실상 불신임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미국인들의 관심이 차기 대통령에 대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한미관계의 특수성과 2008년 전후 북핵문제가 중대한 고비에 이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도 2008년 미국인들의 선택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선거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볼 문제는 소위 공화당 혁명(Republican revolution)이 종결된 이후 미국정치의 향방이 어떻게 결정될 것인가이다. 공화당 혁명은 19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한 것을 가리킨다. 당시 공화당은 하원에서 54석, 상원에서 8석을 늘리면서 1930년대 뉴딜연합이 형성된 이후 지속되던 민주당의 의회 지배를 종식시켰다.
이러한 양적인 변화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 공화당이 중간세력의 지지를 노린 온건주의가 아니라 (많은 공화당 후보들이 서약한 정책강령인) '미국과의 계약'(Contract with America)으로 상징되는 원칙적인 보수주의를 내세워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공화당 혁명은 클린턴행정부와의 힘겨루기로 보수주의적 강령을 관철시키는 데 한계를 보였으나 2001년 부시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절정으로 치달았다.
영구적 공화당 일당우위체제에 대한 논란
부시행정부 하에서 대폭적인 감세와 규제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며 동성애자의 권리 등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사회적 보수주의, 군사력의 우위와 미국적 가치에 기초한 세계지배를 꿈꾸는 네오콘 사이의 연합은 행정부와 의회를 지배하며 보수주의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원칙적 보수주의로 무장한 공화당의 영구적인 '일당우위체제'의 도래를 주장하는 정치평론서들이 연이어 출간되었다. 진보적 성향의 학자이자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의 저자인 조지 레이코프도 경제적 자원을 제공해주는 경제적 자유주의와 신념과 가치를 제공해주는 사회적 보수주의의 결합을 통해 공화당은 민주당이 도전하기 힘든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였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대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조작 논란과 이라크에서 사실상 내전 상황의 출현 등으로 부시행정부의 무능력이 드러나자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고,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의 지배권을 되찾으면서 막 꽃피기 시작한 공화당 혁명은 종지부를 찍었다.
공화당 일당우위체제보다 좀더 현실적인 미국정치에 대한 설명은 얼 블랙과 멀 블랙의 분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2004년까지 40여년간 유권자들의 투표성향을 분석한 책 《분열된 미국》(Divided America)에서 공화당과 보수주의는 남부, 민주당과 자유주의는 서부와 동북부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북쪽으로 오대호 주변지역과 남쪽으로 미주리주에 이르는 미드웨스트(Midwest)에서 누구도 확고한 우세를 차지하지 못하는 몇몇 스윙지역의 투표결과가 전체 판세를 좌우하는 팽팽한 대결구도로 진입했다고 지적한다. 2006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모두에서 승리하면서 의회의 권력구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것은 이러한 정치지형 때문에 가능했다. 즉 공화당 혁명과 공화당 의회지배의 기반은 공화당의 일당우위체제를 예견한 사람들의 생각보다 취약했다고 할 수 있다.
보수진영의 내분과 공화당 혁명의 종결
내용적으로 보면 공화당 혁명의 미래는 더욱 어둡다. 무엇보다 네오콘은 이라크전쟁으로, 경제자유주의는 공화당 실력자들이 관련된 뇌물사건으로, 사회보수주의는 공화당 의원 및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쎅스 스캔들과 연루되면서 공화당 혁명의 주축들이 대중적 신뢰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케이토(CATO) 연구소 소장은 2005년 공화당 혁명 10년을 평가하는 보고서에서 이라크전쟁을 주도하여 작은 정부라는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 네오콘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네오콘들도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진영 내의 균열도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008년 선거를 놓고 최근 10년간 지속된 보수주의 우위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전환점이 되리라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 혁명의 종결이 보수주의 우위의 시대를 종식시키리라는 예측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분열된 미국》의 분석이 타당하다면 2008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더라도 민주당 우위시대가 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적 유권자들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부시의 정책을 지지하는 등 공화당의 기반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 후보들은 부시행정부 보수주의 정책의 핵심의제인 '테러와의 전쟁'과 '감세'와 관련해서는 부시행정부와 거의 차별성이 없는 주장을 하였다. 즉 앞으로도 보수주의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욱이 현재 민주당 후보들은 부시행정부의 노선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아직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두가지 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가 2008년 이후 미국정치의 방향을 읽는 데 주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정치의 향방을 좌우할 키워드
첫째, 이라크 철수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비전은 무엇인가? 이번 토론회에서 민주당 후보들은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입을 모았다. 그리고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를 비판하고 다자주의에 입각한 국제협력을 강조하는 입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국제협력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민주당 후보자들이 다자주의적 국제협력과 미국의 이익 사이의 상충적 관계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둘째, 증세안이 정치인에게 마치 자살행위 같은 의제가 되는 상황에서 빈부격차에 대응할 세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민주당이 최소한 부시행정부 시기 동안 고소득층에 혜택을 주었던 감세정책을 철회시킬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반발은 적지만 효과도 확실하지 않은 비용절감 등의 지출구조 변화에 촛점을 맞출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당장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46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위기에 직면한 의료보험 개혁안이 이 문제와 관련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의무적이고 포괄적 의료보험의 실시를 주장한 반면, 오바마와 힐러리는 의료비용 절감을 통해 의료보험을 확대하는 방안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등 민주당 내에서도 적지 않은 이견이 존재한다.
아마 내년 초 프라이머리를 거치면서 이 문제들에 대해 지금보다는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공약들이 제시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실질적인 내용을 담는 정책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2008년 이후 공화당 혁명이 끝나더라도 보수주의의 유령이 계속 미국정치를 지배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7.6.12 ⓒ 이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