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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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페미니즘은 더 위험해져야 한다

 

 

백영경

백영경

인도에서 경험한 여성의 날

 

몇년 전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기간에 마침 3·8 세계여성의 날이 겹쳤다. 세계여성의 날은 1857년 미국 뉴욕에서 저임금과 비인간적인 처우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섰던 여성노동자들, 1917년 1차대전의 참화 속에서 빵과 평화를 외치며 행진한 러시아 여성들을 포함하여 역사적으로 생존권과 존엄성을 위해 투쟁해온 많은 여성을 기리는 날로서 UN에 의해 제정되었다.

 

그런 세계여성의 날 행사라고 하면 여성단체들과 함께 집회나 행진을 하는 광경에 익숙해 있던 필자에게 도시 중산층 가정 또는 사무실 주변으로 남성들이 자신이 마주치는 여성에게 ‘행복한 여성의 날’이라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낯설었다. 또한 자동차와 옷, 보석과 체취방지제에 이르기까지 독립적인 현대 여성이라면 누려야 할 상품을 선전하며 선물을 강권하는 광고를 보면서 오늘이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인가 싶기도 했다.

 

같은 날 오후 인도 전역에서 모인 여성들은 집회장에서 여성의 기본권 쟁취를 외쳤다. 이들은 여성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화장실과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성폭행 위협에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결국 여성의 공공생활 참가 자체가 어렵다면서 항의했다.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맞닥뜨린, 소비주체로서 떠받들어지는 여성 이미지와 현실 속 여성의 삶의 차이는 크고도 씁쓸했다. 

 

한국의 여성의 날: 페미니즘의 귀환?

 

한국 여성들의 현실 역시 하나의 결로 말하기는 어렵다. 일단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 한국 행사를 통해 직접 드러난 면모는 페미니즘의 귀환이다.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올해는 여성단체들뿐 아니라 출마예정자들, 그리고 관공서에서도 여성의 생존권과 존엄성을 의미하는 빵과 장미를 곳곳에서 나눠주었는가 하면, 여성 관련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콘서트와 이벤트를 기획했다.

 

또한 한동안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구시대의 유물같이 여기던 사회 분위기가 어느새 바뀌어, 인터넷서점의 인문·사회과학 분야 판매순위에 페미니즘 서적들이 줄줄이 올라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인터넷 여성공동체가 페미니즘도 돈이 된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팔 걷고 나섰다더니, 이미 나온 책들에 더해서 읽고 싶은 페미니즘 서적들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등 책 시장에는 성난 여성들의 목소리가 드높다.

 

페미니즘의 약진, 그 이면의 현실

 

이러한 페미니즘의 약진을 반기면서도, 솔직히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우선 페미니즘이 다시 주목받게 된 배경 자체가 근래에 극성을 부리는 여성혐오 탓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한국은 사실 여성으로 살기가 매우 어려운 곳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언어폭력과 성폭행이 흔하게 벌어지고, 방송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예능이란 이름으로 포장된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거나 여성의 사회적 진출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논지로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정치권의 발언은 이제 비판하기에도 지칠 지경이다.

 

그뿐인가. 사이버공간에서 여성을 모욕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로 그저 곤경에 처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생겨나는가 하면, 연인과 헤어진 여성의 가장 큰 바람이 안전하게 이별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여성들의 실제 삶은 위험투성이다. 이미 남녀평등을 당연한 가치로 체화하면서, 동등한 교육기회를 부여받고 개별 가정에서는 상대적으로 차별받지 않고 성장해온 젊은 세대의 기대와 현실의 삶 사이에는 너무 큰 거리가 있는 것이다. 여성을 차별받는 존재라 인정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이며 자존심 상하는 일로 생각했던 많은 이들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전반적으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공론장의 오염은 심해지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기승을 부리게 되자, 이제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새삼스러운 자각을 하는 중이다.

 

남녀 사이의 역차별에 분노하는 목소리도 많지만, 세계여성의 날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게 된 여성 관련 지표들을 보면 한국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격차에서 압도적인 1위이며, 여성의 고용률도 승진율도 바닥이다.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도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성의 책임이며 가정 안팎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인 폭력 문제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헬조선’의 여성혐오, 그리고 페미니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헬조선’이라 불리는, 삶이 나아지리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사회의 다른 불평등은 다 참아도 남녀 사이의 위계가 역전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다는 남성들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보다 낫다는 위안마저 없으면 현실을 견디기 어려운 남성들과 이미 평등한 존재라는 강한 자의식을 가진 여성들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갈등은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양성평등을 갈구하며 페미니즘 서적을 공부하는 남녀의 숫자를 늘리는 요인이 될 터이다. 그러나 현실의 불평등이 깊어지는 한 페미니스트적인 교양의 확산만으로는 여성에 대한 우위에서 자존감을 찾는 남성들을 사라지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단지 중첩된 여러 불평등 요소를 남녀 사이의 갈등으로 단순화해서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기보다는, 그러한 갈등을 부추김으로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동력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현실 속의 정치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가짜 페미니즘을 넘어서 더 위험한 페미니즘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양성평등의 이상을 확인하고 외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세상이다. 우선 양성평등을 명분으로 기계적인 남녀 동수(同數)를 주장하면서 정부부처가 직접 여성들을 억압하거나, 권리를 가진 여성의 범위에 서 성소수자 여성을 배제하는 구실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또한 ‘유리천장’을 깨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달 수는 없겠으나 우리는 이미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들의 존재만으로는 일반 여성의 삶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으며, 여성주의의 진전과도 완전히 무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큰 댓가와 함께 배우기도 했다. 국제적으로 보면 제국주의적인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페미니즘이 활용되어온 역사를 목격하기도 했다. 아차 하면 페미니즘이 다른 어떤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근대는 여성과 남성이 인간으로서 평등을 누려야 한다는 이상이 자리잡아온 시기였으며, 한반도에서도 한 세기 넘는 기간 동안 생존권과 존엄성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투쟁이 이어지면서 여성의 삶이 크게 변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질기게도 이어지는 것은 그것이 다른 많은 차별을 자연화하고 정당화하는 기제로 동원되어왔으며, 역으로 사회의 다른 많은 불평등이 여성에 대한 억압을 지속시키는 조건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사회의 더 근본적인 변화가 함께 일어나야 하겠지만, 그 근본적인 변화 속에 성평등이 담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어느덧 108주년을 맞은 세계여성의 날을 보내면서 양성의 조화로운 관계와 성평등을 지향하되, 사회의 다른 불평등과 억압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더 위험한 페미니즘’을 꿈꾸는 이유이다.

 

 

백영경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문화인류학

2016.3.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