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정치는 정치인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는 녹색당, 지역구는 정의당을 찍었으나 당적은 노동당이다. 나는 아직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당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노동당 비례대표 구교현 후보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을 만들고, 최저임금 1만원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온 것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인 녹색당 비례대표 이계삼 후보가 밀양에서 해온 일들, 교육, 환경에 대한 녹색당의 비전에 희망을 건다. 그렇지만 현재의 노동당, 녹색당으로는 불충분하다고 느낀다. 지역구는 정의당을 찍었으나 야당 단일화 후보였던 그 후보를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가 구청장으로 있는 동안에 서민과 노동자, 도시빈민이 집중되어 있는 인천 동구는 개발바람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삶의 질이 나아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정의당을 찍은 것은 결코 새누리당에 표를 줄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 선거가 끝난 뒤, 내 SNS는 승리를 축하하는 분위기로 들떴다. 외국에 사는 친구들은 새벽에 메시지를 보내 대한민국에 아직까지 희망이 있다며 감격해했다. 언론은 이번 선거를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과 절묘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섣불리 승리를 자축할 수 없고, 언론의 설레발도 못 미덥다. 언론은 이번 선거에서 정책이 실종되었다고 떠들어대면서도 각 정당의 정책공약을 제대로 비교해 보여주지 않았고, 정책토론회도 몇번 열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대중이 만나는 정치는 거대 정당끼리 서로 비난하고 권력다툼을 하는 모습뿐이었다. 선거 뒤 언론의 관심사는 오로지 대선이다. 대선 차기주자들의 신경전과 갈등을 부각시킬 뿐 20대 국회의 과제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는 기사는 드물다. 이번 선거에서도 언론은 정치가 우리의 일이 아니라 그들의 일로 착각하도록 교묘하게 부추겼지만 유권자들은 정치가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는 4.16 세월호참사를 겪은 청소년들과, 불안한 미래와 가혹한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이 선거를 어떻게 보고 평가하는지가 궁금하다.
오랜 시간 무너지고 망가져온 한국사회
우리는 뽑아서는 안될 대통령을 연거푸 두번이나 뽑았다. 그렇다고 이전 대통령들이 훌륭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권력을 주면서 바랐던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이었으나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빚더미와 토목 공사장이 된 국토, ‘헬조선’이 된 현실이다. 지난 8년간 우리는 어이없는 죽음들을 목도해야 했고, 소수에게만 집중돼가는 부와 견고해지는 계층 사다리를 무기력하게 봐야 했으며, 형식적인 민주주의마저 힘없이 무너지는 것에 냉소했다. 민생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도 무지와 독선, 오만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 덕분에 교육과 노동환경은 더 황폐해졌고, 국민의 일상은 더 안전하지 않게 되었다. 밤낮없이 일을 하는데도 노동자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청년들은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쏟을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지금보다 나은 삶은 한낱 꿈이 되어버렸다.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누리과정은 엉망이 되고, 그 누리과정 때문에 줄어든 교육예산 탓에 초·중·고의 사회복지사, 상담교사, 사서교사가 줄어들고, 원어민교사가 사라졌다. 학생들의 급식은 더 형편없어졌고, 학교에는 계약직 직원과 교사가 늘어났다. 누리과정과 함께 대통령 공약이었던 방과 후 돌봄 교실 서비스는 반쪽짜리가 되었다. 대학입시개혁 역시 실패했다. 이번 선거 뒤에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노동개혁은 기업을 위한 개혁일 뿐이고, 쌀시장 개방과 연이은 FTA 체결로 벼랑 끝에 몰린 농민들의 삶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국가는 이런 현실에 대한 국민들의 개혁요구와 저항을 겁박과 억압으로 대처했다. 그동안 정부·여당, 그리고 무능한 야당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유권자의 선택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정부·여당과 대통령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고, 야권 당선자들마저도 세월호 문제를 정치이슈화하지 말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그러나 세월호는 정치이슈가 되어야 한다. 세월호특별법은 민생과 분리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이번 국회의 과제는 세월호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은 단지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책임자만 밝히는 데 있지 않다. 4.16은 대한민국 정부의 무능력과, 대기업과 얽힌 부패와 비리가 만들어낸 사고다. 2014년, 4.16사고를 전후로 일어난 사건사고만 떠올려봐도 4.16은 세월호만의 문제가 아니다. 2월 경주리조트 붕괴사고, 5월의 장성요양병원 화재와 고양터미널 화재, 10월 판교 환풍구 사고, 연말의 원양어선 오룡호 사고, GOP 난사 사건, 의무대 윤일병 사건으로 160여명이 사망했고 수많은 사람이 다쳤다. 거기다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까지, 무능한 국가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정부는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했고 언론은 진실을 묻었다. 그렇게 2015년을 거쳐온 2016년의 현실은 어떨까? 부양의무제와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걸러진 빈민, 장애인 들은 여전히 생계를 위협당하고, 보육시설아동의 간식비와 자립지원금마저 줄어들었다. 정부는 테러를 빙자해 국민의 정보를 언제든지 들춰보고 감시하게 되었고, 의료민영화를 위한 꼼수를 부리고 있다.
국민이 주인 되는 안전한 세상을 위해
올해 사회문제가 된 존속살인, 아동학대도 마찬가지다. 언론과 정부는 이 참담한 사건들의 원인을 일부 폭력적이고 반인권적인 부모들이 저지르는 개인적인 일탈로 돌렸다. 그래서 대책이라고 내놓는 게 고작 부모교육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복지와 공동체가 사라진 사회, ‘수저’ 논쟁을 일게 할 정도로 평등한 기회가 박탈된 피라미드 사회, 일을 해도 가난한 노동빈곤 사회, 양육과 교육의 책임이 오로지 가정에만 맡겨진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정치는 이렇게 엉망이 된 사회를 다시 세우고, 국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2016년 4월 16일 안산 세월호합동분향소에서 제단에 바쳐진 투표확인증을 보았다. 그 투표확인증은 생존학생이 희생된 친구에게 보여주는 다짐이며, 희망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투표확인증을 보며 정치를 바로 세우고, 정치를 움직일 주체가 바로 그들임을 다시 확인했다. 정치는 녹색당, 노동당이 고군분투하며 유권자들에게 알리고 싶어했던 대안을 소수의 대안이 아닌 우리 모두의 대안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국회의원과 대통령에게 허락한 것은 그들만의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일할 자격이다. 그들이 제대로 일을 하도록 감시하는 주체는 국민이고, 미래의 주인이 될 청소년과 청년 들이다.
김중미 / 작가, 기찻길옆작은학교 활동가
2016.4.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