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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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조형제 『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

장인적 연구가 맺은 결실
-조형제 『현대자동차의 기민한 생산방식』, 한울아카데미 2016

 

 

jty77조형제 교수의 적시타가 터졌다. 그가 2005년 던졌던 질문, 『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한울아카데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내놓은 것이다. 10년 만이다. 조교수가 이룬 각고의 결실이자 학계, 아니 한국사회의 큰 수확이다. 10년 전 그가 던진 질문은 우리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고, 이제나저제나 그의 대답을 기다려왔다. 이제 그 대답을 듣게 된 것인데, 기대했던 대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적 생산방식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핵심은 ‘기민성’에 있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구체적인 분석대상은 그가 수십년간 지켜봐왔던 현대자동차로, 현대차는 현재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다. 지금까지 별다른 위기를 모른 채 고도성장을 구가해왔고, 짧은 기간 동안 서구의 선진업체를 넘어서는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세계 자동차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해외의 자동차 관련 연구자들은 항상 우리에게 물었다. 현대차의 성장비결은 무엇인가? 아무도 이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그 자괴감과 답답증을 저자가 풀어준다.

 

30년간의 연구, 현대차 생산방식의 비밀

 

저자는 1990년대초 「한국 자동차산업의 생산방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금까지 이를 천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30여년간 한 주제(자동차산업의 생산방식), 한 연구대상(현대차)을 갖고 그야말로 평생 장인정신 속에서 살아온 셈이다. 한 우물을 팜으로써 그의 연구는 갈수록 깊어졌고, 드디어 현대차 생산방식의 비밀을 밝혀낸 것이다.

 

이 책은 ‘기민성’이라는 개념을 갖고 기업의 환경 적응력을 강조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진화론적 관점을 굳이 갖다대지 않더라도, 급격히 변화하는 최근의 경영환경은 기민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그 기민성이 결여된 기업은 결국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리라는 저자의 설명은 별다른 해설 없이도 쏙 들어오는 테제다. 과거 비교적 안정적인 시장에서는 생산성과 비용절감이 경쟁력을 위한 화두였다면,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한 작금의 불확실성 시대에는 기민한 적응력이 최고의 경쟁력을 담보해준다는 얘기다. 이 책은 현대차의 기민성을 제품개발, 유연자동화, 숙련전략, 모듈화, 생산관리 등을 통해 경험적으로 입증한다.

 

현대차의 기민한 생산방식은 일본의 토요타와 독일 폭스바겐과의 비교를 통해 더욱 도드라진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이루어진 해외 벤치마킹은 알게 모르게 선진업체에 대한 모방을 강요해왔다. 그들과의 차이는 곧 문제점으로 등장했고, 그래서 그들의 방식을 좇아 그 차이를 없애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생산방식의 세계적 동질화가 일어날 법한데, 이 책을 읽노라면 이는 가능하지도, 또한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다르다는 건 기존의 방식을 넘어 새로운 방식을 탄생시키는 잠재력을 가지는 것이며, ‘최고’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임을 일깨워준다.

 

경쟁력, 그리고 노동의 인간화 사이에서

 

그런데 이쯤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들릴 수 있다. 무엇보다 현대차의 ‘다름’이 과연 사회적 정당성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과 노동의 인간화의 모순된 관계는 산업사회학이 풀어야 할 오랜 과제였다. 경쟁력을 높이려다보면 노동의 인간화가 소홀해지고, 노동의 인간화에 신경 쓰다보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딜레마에 우리는 수없이 부닥쳐왔다. 현대차는 그동안 불법파견, 권위주의적 경영체제, 단가 후려치기, 노동배제적 노동과정 등 많은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현대차의 ‘다름’이 가진 경쟁력은 혹시나 이러한 비사회적 요소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책은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현대차의 기민한 생산방식이 풀어야 할 문제로 기업 거버넌스의 변화, 하부의 자율적 문제해결, 원·하청 공정거래, 노사관계 개선 및 엔지니어의 업무부담 경감 등을 강조한다. 현대차 생산방식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고언이다. 그러나 의문은 다시 생긴다. 생산방식은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현대차의 생산방식 역시 좋든 싫든 기존의 요소들을 바탕으로 발전된 것일 게다. 이 책이 발견한 흥미로운 역설, 즉 대립적 노사관계가 기민성을 발전시켰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데 기존의 그 ‘토양’이 변화된다면 현대차의 기민성도 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이는 현대차 생산방식의 변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묻는 것이다. 사회적 관점 내지 노동의 인간화 차원에서? 아니면 경쟁력 차원에서? 아니면 둘 다를 위해? 이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현대차의 ‘다름’이 사회적 정당성을 얻으려면 경쟁력과 노동의 인간화를 결합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은 현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변화를 이끌어왔다. 대량생산-대량소비로 표현되는 포디즘의 개념은 포드 공장에서 연유되었고, 이를 넘어서는 탈포디즘의 패러다임인 린(lean)생산방식은 토요타 공장에서 연유되었다. 현대차의 기민한 생산방식은 이러한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 어떠한 단초를 제공해줄까? 지독히 궁금한 사항이다. 다음번에는 저자에게 이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이 책은 현대차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이지만 그 중심테제인 ‘기민성’은 급속히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직면한 우리 산업계 전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학계, 노동계, 경영계 모두에 일독을 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문호 / 워크인연구소 소장

2016.4.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