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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부산국제영화제를 망치려는 자들

조종국

조종국

‘부산국제영화제 사태’의 본질과 핵심은 ‘세월호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정치적인 보복’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고 전제하지 않고는 어떤 논의와 대응도 겉돌 수밖에 없다. 주장과 해명, 말싸움만 되풀이하게 되고, 정작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보복’이라는 초점은 흐려지기 십상이다. 안타깝게도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부산시는 운영태만이 문제라느니, 감사원 감사에서 협찬금 수수료 편법 집행 사실이 드러났다느니 하는 따위의 트집을 잡아 부산국제영화제가 큰 흠이라도 있는 양 호도하고 있다.

 

핵심을 회피한 채 여론을 호도하려는 부산시

 

부산시는 통상 시정요구나 행정조치 처분을 하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이용관 전임 집행위원장과 전현직 사무국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일부 서울 영화인’들이 ‘부산시민의 영화제’를 독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논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노골적인 흑색선전까지 했다. 더욱이 조직위원회라는 이름의 사단법인 총회원 106명이 ‘부산시로부터 독립’하는 내용으로 정관을 개정하기 위한 임시총회 소집을 요구하자, 신규 위촉한 자문위원의 자격과 효력에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가처분신청’까지 냈다.

 

이렇게 살짝 흐름이 바뀌자 ‘「다이빙벨」에 대한 보복’이라는 핵심은 뒷전으로 말리고, 이용관 전임 집행위원장의 재위촉 여부, 검찰 고발, 신규 위촉 자문위원 효력 등 산발적으로 불거지는 사안을 두고 공방을 되풀이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요건인 정관 개정도 말만 무성할 뿐 의미있는 논의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급기야 서병수 부산시장이 당연직인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발표만 해놓고 이에 필요한 정관개정 등 후속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임 조직위원장이 누가 될지에 이목이 확 쏠려버린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부산시는 본질을 호도하는 이런 다각적인 여론전을 펴는 한편, 마치 자신들은 정관 개정을 위해 적극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부산영화제 쪽에서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약자 코스프레’까지 연출하고 있다. 하나같이 ‘개정’하자고 떠들지만 내용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정관 개정 방향의 쟁점을 살펴보면 다수의 부산영화제 총회원과 부산시의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 영화제 측의 개정 방향 요지는 당연직 임원을 없애고 모든 임원은 총회에서 선출하며, 집행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사무총장제를 도입하고 상임집행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 등이다. 반면 부산시가 생각하는 정관 개정의 방향은 영 딴판이다. 부산시가 비공식으로 내놓은 안은, 부산시장이 조직위원장 임명권을 놓을 수 없고, 집행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지금 정관보다도 부산시가 더 많이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개악’하자는 주장이다. 영화계의 요구는 물론 세상의 흐름과도 거꾸로 가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영화 중심’ ‘관객 중심’ 원칙을 지켜야

 

이명박 대통령 초기에 이른바 ‘문화계의 좌파 청산’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는 ‘십수년간 관객의 지지와 성원을 받아온 멀쩡한 영화제를 하루아침에 좌파영화제라고 딱지 붙이지 말라’고 공세적으로 대응했어야 함에도 밖으로는 청와대와 정부, 여당 고위인사에게 줄을 대 ‘좌파 아님’을 역설하고, 안에서는 조직위원회 회원을 교체하는 등 색깔을 빼고 화장을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햇수로 3년에 걸친, 「다이빙벨」 상영에 따른 일련의 보복 상황에 대한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에 계속 끌려다니며 임기응변만 하다가 뒤통수 맞는 일을 되풀이한 셈이다. 지나치게 수세적으로 봉합하는 데 급급해 정작 고수해야 할 명분과 원칙마저 훼손당하고, 상처에 상처를 더하는 꼴이라 내상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열성 관객을 비롯한 영화계, 무한 호의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성원하던 사람들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세 판단’과 ‘대응 전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다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행보에 대해 영화인들은 걱정도 크고 비판도 날카롭다.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참가를 전면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그동안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초창기 남포동 행사 공간에서 벌어졌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시위나 북한영화 상영을 둘러싼 논란 등 정치적으로도 민감한 크고 작은 사건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일이 다 미풍에 그치고 오히려 부산국제영화제의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관객을 믿고 영화제의 본령에 충실할 뿐’이라는 원칙을 고수한 두둑한 배짱과 신념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제 대단히 정치적인 영화제가 되어버렸다. 정치적 맥락의 압력 이외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른 크고 작은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반문화적인 초보 시장의 경솔함 탓에 암묵적인 합의로 존중하던 ‘탈정치’라는 이름의 저지선이 일거에 무너진 뒤탈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처지다. 부산국제영화제의 명성을 복원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일은 요령이나 지름길이 없다. ‘영화 중심’이라는 명분과 ‘관객 중심’의 원칙을 담대하게 고수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이다. 20년 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다. 복원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소한 무너지지는 않게 버틸 수 있는 시간도 이젠 정말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20세기에 기틀을 잡아 부산이 유네스코 영화창의도시로 지정되게 한 한국 최고이자 세계적인 문화자산이다. 이대로 그냥 흘러간다면 서병수 부산시장과 관련 고위 공무원들은 그 부산국제영화제를 망친 21세기 최악의 반문화적인 부산시장과 하수인들로 그 이름이 기록되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국민의 문화자산을 훼손하는 것도 후대엔 매국 못지않은 역사적 범죄다.

 

 

조종국 / 『씨네21』 편집위원

2016.4.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