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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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김창남 『나의 문화편력기』

더 많은 문화편력기‘들’을 응원한다

-김창남 『나의 문화편력기』

 

 

erjkyt서울에 사는 큰누나의 집으로 동생들이 유학을 왔다. 18평 크기의 우리 집에 방은 세개였고, 그중 둘은 언제나 동생들, 그러니까 내게는 이모와 외삼촌의 차지였다.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막내외삼촌은 영문학도였고, 음악 마니아였다. 기억은 없지만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릴 테이프가 돌아가고 있는 전축을 붙잡고 엉거주춤 선 사진이 버젓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나는 대중음악을 꽤나 일찍부터 접했음에 틀림없다. 여전히 LP장에는 막내외삼촌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사놓았던 송창식과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이글스(Eagles)의 해적판이 꽂혀 있는데, 나는 그 음반들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자랐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것도 춘천에서 경험한 한국 대중·아동영화, 음악, 문학에 대해 시시콜콜 풀어놓는 이 책 『나의 문화편력기: 기억과 의미의 역사』(정한책방 2015)의 내용이 낯설기는커녕 꽤나 익숙한 듯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의 즐거운 독서가 정말 막내외삼촌과 만들었던 추억과 감수성을 건드렸기 때문인지 자문해보게 되었다. 반갑게 느껴지긴 했지만 책과 공유할 수 있는 내 경험이나 기억은 매우 파편적이고 간접적이라는 게 점차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대중음악과 미디어를 연구한다고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주로 1980년대 이후에 초점이 가 있다. 60~70년대 대중문화가 완전히 낯선 세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억도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찾아낸 공감의 비밀은 저자 김창남(金昌南)이 슬쩍 “그런 의미에 값하는지 모르겠다”(12면)고 겸손을 떨며 지나간 “자기 민속지학”―나는 Auto-ethnography의 번역어로 자전적 문화기술지(文化記述誌)가 더 적합하다고 믿는 입장이다―적인 글쓰기 자체에 있었다. 과거의 자전적 문화기술지는 비근대 사회·원주민이 근대적 교육을 받은 후 자신이 성장했던 사회문화적 환경을 되짚거나, 문화적 격변기(식민지 근대화나 강제적 이주)를 거친 학자가 자신의 생애를 자서전 쓰듯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자에 이 용어는 독특하고 흔치 않은 삶을 살았던 이들만 쓸 수 있는 특별한 글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냈다. 이론적 시각을 견지하는 연구자가 자신의 생애를 낯설게 바라보며 기술하는 “자전적이고 성찰적인 사회적 시학”(social poetics)*에 가까워졌다. 자전적 문화기술지에는 일반인의 자서전에 자주 등장하는 자기자랑 대신 선택의 동기를 구조적으로 따져보는 성찰이 들어 있고, 기억을 따르지만 그에 의존하기보다 거시·미시적 자료와 대조하면서 구성적으로 과거를 인식하려는 노력이 수반되며, 그렇기에 문학적 수사가 자연스레 덧대어져 있다. 이 책은 “문화연구자, 문화비평가 그리고 가끔 문화운동가 소리를 들으며”(309면) 살아온 저자의 사회문화적 자양분(긍정과 부정적 영향을 모두 포함해서)을, 그중에서도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집중하여 담담하고 찬찬하게 살피는 자전적 문화기술지다. 피식 웃게 하는 저자 특유의 위트는 덤이다.

 

저자는 이성적인 판단에 기댄 주체적 선택이 어려운 “어린 시절에 형성된 원형적 감성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27면)으며, 이러한 감성이 형성되던 시기의 “노래를 부를 때면 비로소 나 자신의 어떤 본성을 되찾은 느낌이랄까 고향에 돌아온 느낌 같은 것을”(152면) 갖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는 이 원형적 감성을 신화화하거나 보편적인 무엇으로 뭉뚱그려 넘겨버리는 것을 경계한다. 이러한 감성이야말로 특별한 사회·역사·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특정한 세대가 겪어낸 특수한 경험의 결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지난 몇년 사이 영화와 공연 시장에서 1970년대 젊은이의 보편적인 대중문화였던 양 회고되었던 “통기타 문화”를 위시한 청년문화가 당대 젊은 세대 모두의 문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애써 드러내는 셈이다. 그들 중에서 시대를 휩쓴 슈퍼스타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70년대 청년문화의 상당수는 서울을 중심으로 향유되는 대학-엘리트 문화의 일부였으며, 이는 “한국 대중문화의 헤게모니가 일본적인 것에서 미국적(혹은 서구적)인 것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의 한 양상”(279면)이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역으로 새마을운동을 필두로 군사독재가 만들어낸 대중문화가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헤게모니에 기초한 특정 세대와 계급의 문화였다는 말로 환원해볼 수 있다. 한편으로 저자는 “또래 친구들과 어린 시절의 문화 경험을 얘기하다보면, 비슷한 영화를 보고, 비슷한 노래를 듣고, 비슷한 책을 읽으며 자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에 묘한 신비로움을 느낀다고 토로한다(122면). 이 지점에서 나는 미디어와 채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팔레비 왕조를 이란에서 몰아낸 카세트혁명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소리를 간단하게 녹음하고 쉬이 대량으로 복사할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라는 미디어의 등장은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었다. 「공장의 불빛」(1978)과 ‘메아리’ 1집(1979)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대안적인 노래의 생산과 유통이었다. 미디어와 채널의 확장은 정치·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한 취향에 비빌 언덕이 되어줬다.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난 현재 미디어의 폭은 더욱 넓어졌고, 그 영향력의 규모와 성격도 과거와 또 달라졌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듣고 영화와 드라마를 볼 수 있지만, 음반 판매량은 외려 곤두박질치며 줄어들었고 올해의 드라마로 꼽힐 정도로 인기를 누린다 해도 출연자들이 ‘본방사수’를 부탁할 정도로 실시간 시청률은 하락했다. 대중문화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특정한 작품이나 인물에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현저하게 줄어든 시대와 조우한 것이다. 이제 동시대를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각기 다른 ‘나의 문화편력기’들을 갖는 것이 보편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문화 다원성을 교과서가 아닌 넓어진 대중문화의 폭과 그 선택의 과정 속에서 체득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문화편력기』는 한국에서 미디어와 기술의 변화가 대중문화를 세분화하고, 자기 세대의 문화를 만들고, 소비를 통해 이를 구축하는 역사가 막 태동하던 시기에 대한 진진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자전적 문화기술지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읽힌다.

 

개인적인 얘기로 글을 마칠까 한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나는 도서관에서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고민에 빠졌었다. 대중음악에 관심 많다는 내 얘기에 한 선배가 추천한 『노래』라는 책에서 (내가 그토록 좋아해 마지않던) 밴드 들국화와 시나위는 미제 자본주의에 완전히 함몰된 한국 대중문화의 슬픈 표상일 뿐이었다. 다른 입장을 토로하던 이른바 ‘팝 칼럼니스트’라는 직함을 건 이들의 책은 더욱 실망스러웠다. 음악에 대한 독자적 시각은커녕 장르 관습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정보가 어린 내 눈에도 부지기수였으니 말이다(강헌, 신현준 같은 이들이 등장하기 전이다). 내가 좋아하는 대중음악을 도대체 어떻게 의미화하고 어떤 이론과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 답답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절의 꽁함이 풀리는 기분이다. 이제 메아리 2집(1980)과 윤수일의 「제2의 고향」(1981)을, 같은 시대의 기억과 의미를 각기 다른 차원에서 노래한 우리 대중음악 역사로 함께 놓고 선배들과 흥미진진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할까.

 

*Michael Herzfeld, “The Taming of Revolution: Intense Paradoxes of the Self,” Reed-Danahay, Deborah E (ed.). Auto/Ethnography: Rewriting the Self and the Social, Oxford: Berg, 1997, 192면.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6년 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조일동 / 한양대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대중음악평론가

2016.5.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