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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 삼풍』

삼풍, 그리고 세월호까지: 한국사회 망각의 기록
--『1995년 서울, 삼풍』

 

1995년 6월 29일 목요일 오후 5시 55분 서초구 서초동 1675-3번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 (…) 많은 것이 변했고 또 변하지 않았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자리는 한동안 공동(空洞)으로 남아 있었으나, 2004년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정이현 「삼풍백화점」(2006)

trjjrt삼풍백화점 붕괴. 한국전쟁 이후 단일사고 최대의 인명피해(사망 502명, 실종 6명)를 초래한 참사였음에도 남아 있는 기록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공식 백서 외에 삼풍백화점 참사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모인 것은 이 책 『1995년 서울, 삼풍: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메모리[人] 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동아시아 2016)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놀랍다가도 금세 ‘그럴 만하지’ 하고 수긍하게 되는 스스로의 반응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서늘해진다. 2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한국사회가 도달한 지점은 겨우 여기에 불과하다. 서울문화재단이 진행한 ‘서울 기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억수집가’ 5명이 2014년 10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전국을 돌며 총 108명을 인터뷰했고 그중 59명의 기억이 이 책에 담겼다. 당사자들이 어렵게 재현한 ‘개인의 이야기’가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역사’로 기록된 셈이다.

 

20년 만에야 제대로 기록된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는 멀쩡하던 대교가 부러지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고였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고 보고하는 후배 기자의 말에 “야 인마, 그게 왜 주저앉냐?”라고 반복해 묻던 선배 기자의 질문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을 터. ‘설마 저 고급 백화점이 무너지랴’라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신뢰가 함께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재난을 겪었을 언론사 사회부 데스크조차 믿을 수 없던 이 초유의 재난 앞에 한국사회는 우왕좌왕했고, 구조현장 주변의 교통통제 같은 기본적인 절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을 시스템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절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2014년 세월호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어떻게든 시신을 수습한 가족에게 “축하한다”는 인사가 건네졌다는 증언도 판박이인 듯 똑같다.

 

서해훼리호 침몰(1993),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 화재(1999), 대구지하철 화재(2003) 등 대형 참사 5건의 백서가 짚은 사고 원인을 살펴보자. 안전진단 미비, 무리한 허가, 엉성한 준공검사, 부실 관리, 위기대처능력 부족, 안전시설 미비 등 원인이 판박이다. 과거 재난 중 단 한가지 교훈만 얻었더라도 참사를 막았거나 희생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백서에 적힌 사고 원인조차 제대로 해결책을 만들지 않아 1회용이 되어버리는 나라에서 언제 또 아무도 읽지 않을 백서를 ‘만들어야’ 하는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삼풍백화점 부지에 들어선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만큼 한국이 재난을 기억하는 방식을 잘 드러내는 풍경이 또 있을까. 그곳에서 삼풍백화점의 흔적은 ‘완전삭제’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깨끗하게 지워진 상태다. 그 부지가 만약 삼풍백화점이라는 거대한 재난을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끊임없이 환기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한번의 재난이라도 덜 일어나지 않았을까, 부질없는 희망을 품어본다. 사고현장에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한 위령탑은 사고 발생 3년이 지나고 나서야 지루한 ‘핑퐁게임’ 끝에 사고와는 전혀 상관 없는 양재동 시민의숲에 세워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가는 중이다. ‘하루 종일 거절만 당하는 날의 연속’을 겪으며 결과물을 만들어낸 모든 사람들의 노고는 놀랍고 감사할 만한 일이지만, 이 정도 규모의 대형참사 기록조차 개별 기관과 개인의 선의 없이는 존재하지 않게 하는 국가의 무능과 한심함에 다시 한번 한숨이 나온다.

 

되풀이되는 재난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실제 구술채록을 하는 현장에 동행한 적이 있다.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잊고 싶은 기억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아무리 씩씩해 보이던 분이라도, 다수의 구술채록 경험이 있는 분도 “할 때마다 새롭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현장을 찾아갔다가 대척점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도 있었다. 역사적 사건을 함께 겪었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한 후 만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이 마주한 그 순간의 미묘한 공기란! 관찰자이자 기록자로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내게, 그 순간은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이 책은 나처럼 우연히 역사의 현장에 함께 있지 못했던 대다수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잊혀졌던 생존자와 유가족의 육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을 그날의 현장으로 데려가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정이현의 단편소설 「삼풍백화점」, 웹툰 「삼풍」(글 손영수, 그림 한상훈)을 함께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조합이다. 읽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된다. ‘유족은, 희생자는, 생존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식의 프레임과 ‘저 사람들 ○○○ 유가족이야’라는 사회적 시선에 이들을 가두는 대신, “고인들 저마다의 삶의 기억들이 개별적 존재로서 다시 기억”(정윤수 「망각의 골짜기에서 기억을 말하라!」, 이 책 4장)될 수 있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할 일이다. 이 책이 그 기억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 있어야 할 테다.

 

“제 시간은 95년 6월에 멈춰 있습니다.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멈췄어요. 삼풍 참사 이후로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변한 겁니까?”(웹툰 「삼풍」속 김지운의 대사)라는 이 질문에 우리는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내일은 우리가 어제로부터 무엇인가 배웠기를 바란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재난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노력은 지금부터라도 시작돼야 한다. ‘기록하지 않고’ ‘배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참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2016.6.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