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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7차 대회 이후의 북한

서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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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 열렸던 북 노동당 제7차 당대회를 두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북은 당대회를 계기로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경제와 핵을 동시에 개발하겠다는 ‘병진노선’에 가려져 주목받고 있지 못하나 북은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를 강조하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북이 이번에 채택한 새로운 핵전략과 남북대화 ‘방도’는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를 요동시킬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핵 선제 불사용 전략을 천명한 북

 

북은 이번 당대회에서 핵전략을 전환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사업총화보고에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핵으로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이미 천명한 대로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무기 선제 불사용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김위원장은 불분명하던 ‘핵보유국 지위법’의 내용을 명확히 했을 뿐 아니라, 북이 당대회 직전까지 공언하던 핵선제타격전략을 전격적으로 뒤집었다.

 

2013년 4월 1일 제정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은 “적대적인 다른 핵보유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거나 공격하는 경우 그를 격퇴하고 보복타격을 가하기 위하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최종명령에 의하여서만 사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정욱식 등이 해석한 바(프레시안 2013.5.27)와 같이 이 조항은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은 침략 및 공격에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김위원장은 적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며 ‘소극적 안전보장’을 핵전략으로 공언했다.

 

이는 최소한 2013년부터 북이 견지해오던 핵선제타격전략을 뒤집은 것이다. 2013년 3월 외무성 대변인은 “침략자들의 본거지들에 대한 핵선제타격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최초로 핵선제타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2년 후 리수용 당시 외무상은 유엔 군축회의 기조연설에서 “이제는 우리도 미국을 억제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선제타격도 가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며 핵선제타격 능력을 말했다. 이어 올 3월에는 러시아 따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선제 핵공격을 가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4월에는 리명수 총참모장이 “정밀화‧소형화된 각종 핵무기들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수중탄도탄”을 언급하며, “그 어디에도 구속됨이 없이 그 무슨 경고나 사전통고도 없이 하늘과 땅, 해상과 수중에서 가장 처절한 징벌의 선제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준비상황을 설명했다. 즉 북은 2013년부터 핵선제타격 가능성→능력→준비의 단계로 꾸준히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그 정점이라고 할 이번 7차 당대회에서 이를 전략으로 공식화하는 대신, 반대로 핵 선제 불사용 전략을 천명했다.

 

북의 이러한 선택은 미국이 여전히 북에 대한 선제 핵타격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한미연합사가 작전계획 5029 등 선제공격적인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볼 때 더욱 뜻밖이다.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이라며 북이 오랫동안 견지해온 상호주의에서도 많이 벗어난다. 물론 이 반전이 선언적 정책에 불과한 것이라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으나, 핵전략에 있어서 선언적 정책은 핵능력에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다. 북이 선언적 정책에서 선제타격을 선제 불사용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대화의 입구를 만들고 문턱을 낮췄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당대회에서 나타난 다른 변화들과 일관성있게 맞물려 있다.

 

남북관계 변화의 실마리

 

또 하나의 반전은 남북관계에서 나타났다. 주지하다시피 그간 남북관계는 최악이라고 할 만한 지경에 빠져 있었다. 모든 교류가 단절됐을 뿐 아니라 대화의 통로도 차단됐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발언도 험악해져, 지난 3월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박근혜정부를 “역적패당”이라고 부르며 “단호히 제거해버리”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군사적 충돌도 불사할 것 같던 북이 이번 당대회에서 방향을 180도 수정했다. “대화와 협상은 북남관계에서 (…) 기본방도”라고 천명한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일시적인 정책이나 수단으로 제시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방법과 도리’라고 규정했다는 것은 심상치 않다. 이번 회담을 제안하면서 전제조건을 붙이지 않고 상호관심사를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열린 자세를 보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처럼 인사이동도 경제‧외교 관료의 약진과 야전군 장성의 퇴각으로 특징지어진다. 7차 당대회가 ‘북한 김정은의 국방개혁’이라는 김동엽의 지적(오마이뉴스 2016.5.27)은 북의 이러한 변화의 일면을 정확하게 포착했지만 북의 변화의 전체상을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 ‘국방개혁’은 위에서 지적한 ‘반전’들과 연동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김정은정권의 병진노선은 군사력에 방점을 찍었던 김정일의 선군정책에서 경제로 선회하겠다는 정책의 천명이라는 동아시아연구원의 평가(자유아시아방송 2013.10.21)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대에 충성을 바쳐야 하는 후계자로서 선대의 정책을 부인하지 않은 채 경제의 비중을 높이는 반전을 추진할 수 있는 방식이 ‘병진’이기 때문이다. 7차 당대회는 이 기본적 방향의 선회를 제도화했고, 이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반전들이 이루어졌다.

 

당대회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일련의 민생경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중국을 방문, 시 진핑 주석과 면담했고, 최태복 부위원장은 베트남과 라오스를 방문했다. 미국과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비공식적 대화를 가졌다. 당대회에서 보여준 변화들을 실행하는 단계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병진노선은 한반도비핵화라는 컵을 채우기에 한참 모자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선제 불사용과 남북대화 제안은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던 물의 방향을 반대로 바꾼 것이다. 더구나 당대회가 보여준 일련의 변화는 앞으로 물을 더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컵에 물이 차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라며 컵을 차버릴 것인가, 물이 다시 차기 시작했다는 변화를 살려서 한반도비핵화의 컵을 더 채워갈 것인가. 이제 선택은 한국과 미국의 몫이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

2016.6.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