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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지금이야말로 반혐오투쟁의 ‘연대’가 필요한 때

 

김도현

김도현

‘곱슬머리를 지닌 사람의 범죄’는 ‘곱슬머리 때문에 발생한 범죄’인가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넘어가고 있다. 그사이 많은 이들은 대한민국의 공권력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하는지를 바라보며 커다란 분노와 허탈감을 느껴야 했다. 여기서 분노는 이번 사건이 가해자의 정신장애 때문에 발생한 소위 묻지 마 범죄일 뿐 여성혐오와는 무관하다고 부정하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허탈감은 그러한 여성혐오의 부정 속에서 경찰과 정부가 △정신장애인의 범죄 위험성을 식별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 제작 및 경찰의 요청에 의한 강제 행정입원 강화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을 통한 남·여 화장실 분리 설치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확대 설치 등 ‘헛발질’에 가까운 대책만을 내놓는 데서 기인했다.

 

특히 정신장애인의 강제 행정입원 강화 조치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서도 일정한 비판이 이루어졌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 보고서에 따르더라도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정신장애인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자가당착적 대책이며, 정신장애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에 불과하다. 요컨대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의 범죄’를 ‘정신장애 때문에 발생한 범죄’로 몰아가는 건, ‘곱슬머리를 지닌 사람의 범죄’를 ‘곱슬머리 때문에 발생한 범죄’라고 우기는 것만큼이나 비합리적인 일인 것이다.

 

정신장애인이 희생양이라는 인식을 넘어

 

하지만 정신장애인은 이번 사건의 여성혐오적 성격을 부정하기 위해 공권력이 찾아낸 단순한 희생양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에게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인식이 필요하다. 즉 그들에 대한 강제 행정입원 강화 조치는 한국사회의 광범위한 정신장애인 혐오를 기반으로 하며, 국가라는 행위자에 의해 저질러진 또다른 명백한 혐오폭력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지만 강남역 살인사건과 관련된 기사에서 너무나 빈번히 달렸던 댓글 중 하나는 ‘제발 미친놈들 길거리 못 돌아다니게 정부가 관리 좀 하라’는 것이었다.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여성혐오 문화라는 맥락 속에서 발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 행정입원 강화 조치는 대중 사이에 비(非)의식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에 뿌리내려 있던 정신장애인 혐오 속에서 쉽사리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떠한 집단을 향한 가장 원초적인 혐오의 정서는 ‘꼴도 보기 싫으니 어디 안 보이는 데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혐오의 대상이 되는 집단은 흔히 격리와 배제, 추방, 비가시화의 대상이 된다. 한국은 이미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율이 67.4%에 이르는 나라다. 이러한 강제입원율은 프랑스의 12.5%, 영국의 13.5%, 독일의 17.7%보다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수많은 여성이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권력의 이번 조치로 인해 50만명에 이르는 조현병 환자와 정신장애인 들은 언제 어떻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신병원으로 끌려갈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밤잠을 못 이루고 일상생활에서도 이전보다 엄청나게 큰 제약을 받고 있다.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규제받아야 할 대상은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국가의 혐오폭력인 것이다.

 

서로 연결된 하나의 싸움

 

정신장애인의 강제 행정입원 강화가 여성혐오를 부정하기 위한 도피책 내지 희생양 만들기라는 차원에서 인식되면서, 이 문제는 여성계를 포함한 시민사회 내에서도 아직까지는 적극적인 투쟁의 과제로 설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5월 27일 장애계가 주최한 경찰청 앞 기자회견에서 장애여성단체의 한 활동가가 말했던 것처럼 “경찰이 내놓은 그런 대책이 바로, 모두가 정당하게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를 혐오할 명분과 자신감을 주는” 것임을 우리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성혐오를 부정하려는 국가의 관점이 명확하게 각인된 이 조치가 그대로 실행되고 점차 하나의 제도화된 물적 토대로 기능한다면, 그리하여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적 감각과 감수성이 이러한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면, 당연히 여성혐오와 정신장애인혐오는 더욱 확산되고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그동안 여성혐오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냈던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의 이용자들은 이 사안이 공권력에 의해 판단이 끝난 문제라며 이미 더욱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주장을 오프라인 공간에서까지 펼치고 있다. 또한 여성 살해사건이 정신장애인 개인에 의한 범죄로 승인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비롯한 이후의 본격적인 반여성혐오투쟁도 여러가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여성차별과 장애인차별은, 그리고 여성혐오와 장애인혐오는 물론 서로 변별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은 연결되어 있다. 여성혐오는 존재하는데 장애인혐오만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있을 수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여성혐오와 장애인혐오는 또한 단지 생물학적인 여성과 장애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혐오사회에서는 여성과 더불어 ‘계집애 같은’ 남성도, 장애인과 더불어 ‘병신같이 구는’ 비장애인도 또래나 동료 집단에서 쉽사리 왕따와 멸시와 폭력의 대상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구호는 그저 하나의 구호에 머무를 수 없으며, 진짜 투쟁이 성립하기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이다. 품앗이 차원에서 도덕적 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연대를 넘어, 여성·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등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반혐오투쟁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싸움임을, 함께 풀어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풀 수 없는 투쟁임을 아는 그런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김도현 / 장애인언론 『비마이너』 발행인

2016.6.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