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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대량학살을 용인하는 사회: 한국전쟁과 이승만에 대한 단상

김태우

김태우

한국전쟁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쟁 ‘정전일(停戰日)’이 아닌 ‘발발일(勃發日)’을 기념하는 비평화적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민감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6.25전쟁기념일’을 맞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는 또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현대 한국사회는 전쟁기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대량학살을 매우 쉽게 묵과하거나 용인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명제가 매우 낯설거나 과장된 표현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보수적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1948~53년 한국에서 발생한 대량학살사건들의 반인륜적 성격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를 지속적으로 묵과해왔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그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봇물 터진 듯 쏟아지는 이승만 관련 서적

 

최근 초대 대통령 이승만 개인에 관한 저서가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단행본에 한정해서 그 수를 헤아려보아도, 2010년 이래 어림잡아 최소 20여종(RISS 검색 결과) 이상의 이승만 관련 서적이 발간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제목부터 민망하기 짝이 없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 젊은 세대를 위한 바른 역사서』(2015),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분노』(2015), 『건국대통령 이승만: 생애·사상·업적의 새로운 조명』(2013), 『이승만 다시보기: 우리가 버린 건국의 아버지』(2011),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2010),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운 독립운동가』(2010) 등등 하나같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을 찬양하는 민망한 제목과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는 ‘한국전쟁과 이승만’에 대한 연구서 2종도 포함되어 있다. 『이승만과 6.25전쟁』(김영호 외, 2012), 『이승만 대통령과 6.25전쟁』(남정옥, 2010)이 그것이다. 저자들은 김영호, 이완범, 홍용표, 남정옥 등 학계의 저명한 연구자다. 이처럼 저명한 연구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기획·토론·집필하여 발간한 연구결과물이 위와 같은 책들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름 아닌 ‘이승만과 민간인 대량학살’에 대한 분석과 평가가 ‘이승만과 한국전쟁’에 대한 종합적 연구에서 완벽히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발생한 제주4·3사건이나 국민보도연맹사건 등의 민간인 대량학살사건들에 대해 당대 대통령 이승만의 책임을 묻는 일은 매우 합당할 것이다. 제주4·3사건의 경우, 대한민국정부 수립(1948.8) 직후인 1948년 11월부터 소위 ‘초토화작전’ 형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민간인희생의 상당수가 이 시기에 집중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한국정부는 5백여명 규모로 추정되는 게릴라 토벌을 위해 제주도 전체 인구의 약 십분의 일에 해당하는 3만여명의 민간인을 희생시킨 광기의 대량학살사건을 벌였다. 이같은 광범한 대량학살사건에 대해 정부와 이승만의 책임을 묻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더불어 전쟁 발발 직후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 1949)이라는 반공관변단체에 소속되어 있던 수만명의 과거 사회주의자들—그러나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었고, 과거의 경력 때문에 더 강렬한 반공국민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이들—을 법적 절차 없이 무차별적으로 대량학살시킨 국민보도연맹사건과 관련해 이승만의 책임을 묻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들 중에는 과거 사회주의 경력과 완벽히 무관한 사람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한 연구서 『가면권력』(한성훈, 2014)은 이같은 보도연맹사건과 관련된 이승만의 책임 소재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다.

 

후대에 조롱당할 이승만 재평가

 

대학은 어느새 종강을 앞두고 있다. 나는 대부분의 학부 강의를 조별 토론식으로 진행한다. 수업 전에 미리 배포된 읽을거리를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하거나, 사전에 제시된 특정 주제에 대해 학생들이 직접 관련 자료를 수집하여 읽고 온 후 활발하게 토론하고, 그 토론의 결과를 간략하게 발표하는 방식이다. 인터넷 시대의 정보 홍수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역사적으로 사고하는 힘을 키워주기 위한 내 나름의 고육지책이다.

 

종강 시점에는 한 학기의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여러 수강생들로부터 한국현대사 관련 독서와 토론의 소감을 공개적으로 듣기도 한다. 나는 한국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 현시점에서 더 중요하게 부각되어야 할 사건과 인물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질문한다. 그런데 거의 매학기 강의마다 수강생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듣게 되는 일관된 견해가 있다. 이는 한국현대사 최악의 인물에 대한 학생들의 대답이다. 다수의 학생이 주저없이 이승만을 최악의 인물로 꼽는 것이다.

 

그런데 그 비판의 근거가 흥미롭다. 기성세대의 상당수가 이승만의 헌법과 국회 유린, 장기집권, 부정선거 등과 같은 ‘민주주의’ 관련 내용을 중심으로 이승만을 비판함에 반해, 이십대 대학생들은 주로 ‘민간인 대량학살’ 문제를 중심으로 이승만을 평가한다. 이들의 시선에서는 수만명의 민간인을 대량으로 학살한 이승만정부의 행위가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로 간주된다. 무차별적인 민간인 대량학살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되는 공소시효 부재의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듯 ‘민주주의’가 아닌 ‘인권과 평화’ 문제를 중심으로 한 이승만 비판이 후대로 갈수록 더욱 더 강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한다.

 

물론 현재 추진 중인 국정 역사교과서의 이승만 평가는 긍정 일색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현 정부의 역사관을 상당정도 대변했던 ‘교학사 교과서’의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국정교과서의 이승만 서술을 대략적으로 추정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분단국가였던 서독이 이미 1970년대부터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양자의 합의에 의해 ‘반공’ 중심의 역사교과서 서술에서 벗어나 ‘평화’ 중심의 역사교육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의 현대사도 일시적인 퇴보 현상이 발생하곤 했지만, 지난하게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해 계속 전진해 나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반도가 ‘냉전의 화석’이라는 오명을 벗고 완연한 평화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날, 냉전적 맹아(盲啞) 현상에 의해 제대로 보고 듣지 못했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더욱더 선명하게 대중 앞에 노출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우리의 후대에 의해 현재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강조될 평화와 인권과 생명의 관점에서 매우 혹독한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를 주장하는 여러 지식인들은 냉전적 사고로부터 해방된 미래의 평화적 한반도의 역사서술에 대해 상상해보며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을 품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태우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인문한국 연구교수

2016.6.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