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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암중모색: 6‧15공동선언 16주년에 부쳐

김창수

김창수

지난 100년 사이에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 북한, 중국, 베트남 등 4개 나라와 전쟁을 하였다. 그런 미국정부가 지난 한달 동안 일본, 중국, 베트남과 다양한 대화를 가졌다. 5월말에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과 일본을 방문했다. 6월초에 미국과 중국은 전략경제대화를 통해서 두 나라 사이의 각종 현안에 대해 조율했다.

 

미국의 대화상대에서 북한은 빠져 있다. 대화는커녕 미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하는 중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 7차 당대회를 통해서 북한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북한의 병진노선과 미국의 대북제재가 맞서는 상황이라 미국과 북한의 대화는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615선언 발표 16주년에도 이렇게 한반도의 냉각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미중갈등, 그리고 북한

 

최근의 동아시아 상황을 관찰해보자.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는데 미국의 동아시아정책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쉽지 않은 이유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베트남과 일본 방문은 중국을 향한 포위전선 강화이다. 이후 미국정부는 6월에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가’로 지정했다. 중국의 통신업체인 화웨이에 대해 북한과의 거래내역을 제출할 것도 요구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정부의 제재조치 연장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북한에 대한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가 지정은 이미 금융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보다는 아직까지 북한과 금융거래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의 지방 소형은행에 타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화웨이에 대한 자료 요구는 북한과의 거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란, 시리아, 수단, 꾸바와의 거래내역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13년부터 싸이버테러 방지 차원에서 화웨이를 견제해왔다.

 

오바마 정부가 대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임기 마지막해임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견고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다. 성장하는 중국이 미국이 만들고 유지해온 규칙을 지키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냉전시대의 대소련 봉쇄정책과 같은 대중국 봉쇄정책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고위급인사들을 총동원해서 전략경제대화를 개최하는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미국의 강경책, 남북의 엇박자

 

6월초에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한 것도 이런 맥락에 따른 것이다. 중국측 참가자들은 미국이 ‘중대한 전략적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미국을 비판했다. “중국을 적으로 간주하면 중국은 틀림없이 미국의 적이 될 것”이라는 위협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에 남중국해 개입 중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중단, 한반도 군사훈련 자제, 사드의 한반도 배치 반대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은 중국의 반발을 불러와서 잠자던 북한과 중국의 동맹을 깨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일동맹과 북중동맹의 대립구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베트남과 중국을 방문한 후에 북한 이수용 일행이 중국을 방문해서 시 진핑 주석을 만났다. 이후 미국은 화웨이에 대해 거래내역 제출을 요구하는 수순을 밟았다.

 

또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은 흔들리던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다시금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미국이 대중국 견제정책을 펼치는 충분조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거기에 한미동맹을 결합시키는 한미일 삼각군사협력체를 만들어서 중국을 견제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미일동맹과 북중동맹의 대립구도는 냉전시대에 미소의 대결구도 아래서 분단체제가 강화되었던 것을 연상하게 만든다. 핵개발을 강화하는 북한이 남북대화를 제기하고, ‘통일대박’을 주장하던 박근혜정부가 남북대화를 거부하는 남북의 엇박자가 이런 연상작용을 부추기고 있다.

 

그뿐 아니다. 미중관계가 대립하고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상황은 동아시아의 4개 해역에서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남중국해에 있는 난샤 군도(南沙群島, 스프래틀리 군도)는 미중이 서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충돌하는 섬이다. 동중국해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센까꾸(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충돌하고 있다. 서해에서는 NLL(북방한계선)을 둘러싸고 남북이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2010년 북한의 연평도포격은 미국의 항공모함이 서해에 진입하는 길을 트기도 했다. 한일 외무장관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 및 불가역적 타결’을 합의한 이후 일본 외무장관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을 “확실하게 전하고, 끈질기게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016.1.22.)

 

동아시아 구도의 새로운 출구를 찾아야

 

한국은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분쟁이 격화될 경우 어느 편에 서야 할 것인지에 대한 외압을 받고 있다. 서해에서 남북충돌이 발생하면 서해는 미중의 각축장이 되고, 사드 배치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것이다. 마치 ‘종군위안부 이후는 독도’라는 순서를 정했다는 듯이 독도 쟁점화를 시도하는 일본에 대해서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의 주변동맹이고, 한일 간의 불협화음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북한은 ‘책임 있는 핵보유국가 지위’를 자임하면서 핵 선제 불사용을 약속했다. 핵보유국가로서 비핵국가에 대해 핵을 선제 사용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SA)이다. 이는 핵보유국가로서 의무를 다하겠다는 선언이지만 사실상 핵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위협이다. 협상의 미끼를 던지는 것이 기도 하다. 또 북한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를 언급하면서 경제건설을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생산현장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인센티브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서 시장의 확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의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정책과 이에 따른 동아시아 구도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능력 강화가 계속된다면,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선거 이후에 동아시아에서 ‘크게 흔들고 크게 다스린다’는 대란대치(大亂大治)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서재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몫”을 주문했지만(창비주간논평 2016.6.8), 과연 크게 흔드는 것은 누구의 몫이 될 것인가?

 

 

김창수 / 코리아연구원 원장

2016.6.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