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올랜도 총기 테러와 ‘혼란에 빠진 미국’?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이슬람국가(IS)에 동조하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 시민의 총기 난사로 49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을 당한 미국 최악의 개인 총기 테러사건이 발생하자 미국은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다. 첫 문장으로 길고 장황하다. 역사학자로서 객관성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언론마다 이 사건의 제목을 무엇으로 달지, 그리고 기사의 첫 시작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을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지기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범인의 IS와 이슬람 연계에 초점을 맞추면 ‘마녀사냥’ 냄새가 난다. 미국의 복잡한 문제들을 ‘이슬람 급진주의’의 단순한 프레임에 가둬버리는 것이다. 이는 무슬림의 미국 이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에게 유리하다. 반면에 최악의 개인 총기 테러사건에 초점을 맞추면 총기 소지에 대한 법적, 제도적 문제가 부각된다. 이는 강력한 총기 규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울타리 안에 있는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게 유리하다.
테러와 반무슬림 정서
이 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비극이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발생했다는 데 있다. 범인 오마르 마틴의 아버지 증언에 따르면 마틴은 몇 달 전에 남자 동성애자 둘이 공공장소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척 분노했다고 한다. 사건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테러이자 증오 행위”라고 했던 것은 동성애 혐오 정서를 염두에 둔 것이다.
‘테러’와 ‘증오’ 두 단어를 동시에 사용한 오바마의 선택이 대통령으로서 올바른 처사였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마틴의 전 부인이 밝힌 마틴의 정신분열 증상을 염두에 둘 때 그것은 자칫 한 미치광이의 행동, 즉 ‘외로운 늑대’의 소행을 특정한 인종, 종교, 성적 취향에 대한 거대한 문화전쟁으로 증폭시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6월 12일 일요일 아침, 대통령은 충격에 빠진 국민들에게 무슨 말인가는 해야 했고, 당시 정황에서 사건을 “테러이자 증오 행위”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했다. 올랜도 테러가 누가 봐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인데 그 용어를 직접 내뱉지 못한 대통령이 겁쟁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마틴의 부모가 애초에 미국 이민을 올 수 없었더라면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슬림 이민금지 정책의 타당성을 역설했다. 올랜도 총격 사건 직후 모든 정황은 힐러리보다는 트럼프에게 유리한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 지지율은 사건 이전보다 더 낮아지고 있다. 올랜도 사건을 이용해서 노골적으로 반무슬림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미국인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가 뉴욕과 워싱턴DC에서 동시에 발생했다. 하지만 그 충격의 와중에서도 미국 내 무슬림들은 별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9.11 테러로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하늘을 찔렀지만 그것이 반무슬림 정서/행동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견제와 균형’의 시험대에 오른 미국 대선
미국은 기본적으로 다문화국가이다. 오바마 집권 8년 동안 그 다양성의 스펙트럼은 더욱 확대되었고, 그 파장과 진폭이 넓고 커졌다. 동성 연애, 결혼이 합법화되었고, 그동안 공적으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던 트랜스젠더 권리도 이슈화되고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등은 항상 미국사회의 뜨거운 감자이며, 대통령 후보들은 이 이슈들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번 선거가 특이하다면 트럼프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이 민감한 문제들을 거칠고 둔탁하게 두드린다는 데 있다. 그는 이미 미국 다문화주의의 원칙으로 자리잡은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차별과 편견을 부추기고 있다.
처음에는 도저히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될 것 같지 않던 트럼프가 사실상 후보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정치적 공정성’과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미명 아래 WASP(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 중심의 미국정신이 훼손되었다고 분노하는 보수세력들이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당은 한번도 8년 이상을 집권한 적이 없다. 1980년대와 90년대초 레이건-부시로 이어지는 공화당의 12년 집권이 유일한 장기집권이었다.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은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이다. 이것은 원래 삼권분립의 정신에서 유래되었지만, 이제 특정 정당의 장기집권을 저지하는 원칙으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견제와 균형’이 이번 선거에는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 궁금하다. 민주당의 장기집권을 저지하는 것으로 나타날지, 미국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인물, 심지어 위험한 인물을 견제하는 것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우리에게도 미국 대선은 흥미로운 얘깃거리이다. 트럼프 때문에 미국 대선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같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판 히틀러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대선, 어처구니없는 올랜도의 비극, 미국은 확실히 혼란에 빠진 듯하다.
그런데 ‘혼란에 빠진 미국’, 이런 제목의 미국 언론기사를 접할 수 없다. 사건이 터지자 대통령은 즉각적이며 능동적으로 국민들을 추스르는 데 앞장섰다. 대부분의 언론은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며 객관적이다. 올랜도 사건에 대응하는 트럼프를 보면서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클린턴 지지선언을 하는 공화당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는 상원의원도 있다. 연방의원은 국가와 국민을 대표하지 당과 지역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소신이 있기 때문이다. 올랜도 사태와 미국 대선을 보면서 자꾸 미국보다는 우리나라가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왜일까?
김봉중 / 전남대 사학과 교수
2016.6.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