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동아시아, 질문이 시작되는 곳: 2016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 참관기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가 6월 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비판적 잡지 회의는 한국의 『창작과비평』, 대만의 『인터 아시아 문화연구(Inter-Asia Cultural Studies)』, 중국 『러펑쉬에슈(熱風學術)』, 일본 『겐다이시소오(現代思想)』 등 말 그대로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비판적 잡지들이 2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학술대회다.
올해는 『창작과비평』 50주년과 잡지 회의 개최 10주년을 맞이하여 “동아시아에서 ‘대전환’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다. ‘대전환’이란 실로 야심찬 주제지만 ‘묻다’라는 다소 겸허한 술어와 결합시킴으로써 이번 잡지 회의는 정답을 내려는 불가능한 시도 대신 할 수 있는 한 성실히 묻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이 물음은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어떤 성격인지 파악하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동아시아의 ‘현장’을 논하다
한국의 발표자(이남주)는 악화일로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비롯하여 현재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여러 현상이 겉으로는 분단체제가 다시금 공고해진 결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것이 한층 불안정해짐으로써 나타나는 증상이라 분석했다.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운동의 변화에 관한 발표(오시까와 준 押川淳)에서는 보육문제 같은 개별 이슈에서 시작된 분노가 곧장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훼손 혹은 국가 전반의 부패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지는 점에 주목하고 그런 저항이야말로 평화헌법 수호를 떠받치는 힘이라고 전했다.
싱가폴의 발표(커 쓰런 柯思仁)에서는 2015년 독립 50주년을 맞은 이 나라가 우리 대부분이 미처 생각지 못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음을 알렸다. 중국이 급격히 커진 경제적·정치적 파워를 기반으로 공자 아카데미 사업 등 문화적으로도 그 영향력을 강화해감에 따라, 화교 인구가 대부분을 차지하는(전체 인구의 75%이상이 한족) 싱가폴은 문화정체성이라는 면에서 심각한 혼란과 복잡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는 것이다. 식민과 전쟁의 역사, 그리고 군사화 등 여러모로 동아시아의 ‘핵심현장’일 수밖에 없는 오끼나와의 발표자(와까바야시 치요 若林千代)는 오래도록 지속되어온 오끼나와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동아시아를 바꾸고 세계를 바꾸는 평화운동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관한 논쟁
여러 논점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아무래도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었다. 이 엄청난 지정학적 기획을 두고 미국의 패권적 대외정책을 대체할 ‘포용적 지구화’ 패러다임이며 특히 반둥 정신을 잇는 남-남협력의 새로운 모범이라고 주장한 발표(쉬 진위 徐進鈺)는 공감과 비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평가는 내부적인 변화, 가령 또 하나의 발표주제였던 중국 농촌의 자본화가 취하는 방향(옌 하이룽 嚴海蓉) 같은 문제들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일대일로’를 적절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국민국가와는 다른 성격이 중국에 있다는 점을 알아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중국은 하나의 국가이면서 동시에 이를테면 그 자체로 ‘소형의 국제사회’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일대일로가 그저 또 한번의 자본팽창, 혹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지적한 ‘공간적 해결책’(spatial fix)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또한 만만치 않았다(데이비드 하비 역시 『창작과비평』 50주년을 맞아 방한 중이다). 이미 자본축적에 성공한 현재의 중국을 과연 ‘남-북’ 구도에서의 ‘남’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지적이 날카로웠고, 미국의 대외정책이 뚜렷하게 패권적 성격을 띠기 전부터 19세기 미국작가들이 그럴 잠재성을 감지하고 비판해온 사실을 지적한 토론(한기욱)도 흥미로운 참조점을 제공해주었다.
현상유지가 불가능한 시대의 동아시아
‘일대일로’가 ‘대전환’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확정적으로 답하기는 아직 이른 것으로 보였다. 이번 회의에서 무언가 확정적인 결론에 다다른 사안이 있었다면 그것은 현상유지의 불가능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 잡지 회의를 조직한 백영서 『창작과비평』 편집고문은 회의가 출범한 초기에는 각 발표자가 자신이 속한 현장의 사정을 소개하고 보고하는 일에 주안점을 두다가 차츰 ‘동아시아’의 시각으로 각자의 현장 및 그 현장들 사이의 연동성을 살피는 쪽으로 변화해왔다고 회고했다.
이번 회의에서 그런 변화가 뚜렷한 성과로 정착되었는가 하는 데는 다소 의문이 남는다. 이는 ‘대전환’에 관한 물음의 치열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여전히 각자의 현장을 돌아보는 작업에 더 치중한 건 아닐까? 그러나 서로의 현장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직도 너무 많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만으로 자기 자리를 새로이 인식할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현상유지가 불가능한 시대에 동아시아에서 살아간다는 건 무엇보다 물음을 지속시키는 문제다. 이 물음이 궁극적으로 ‘대전환’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동아시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핵심현장일 것이다.
황정아 / 문학평론가,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2016.6.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