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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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김중미 『꽃은 많을수록 좋다』

어린이를 반기는 이는 많을수록 좋다
--김중미 『꽃은 많을수록 좋다』, 창비 2016

 

 

jnmll이곳에서는 어린이를 반기지 않는다. 어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과 어린이를 반기는 태도는 다른 문제다. ‘어린이는 나라의 일꾼’ 같은 낡은 슬로건에서 어린이를 미래의 가처분인력으로만 보는 세계의 속셈이 드러난다. 문제상황을 발생시킨 어린이에게 자주 던졌던 “네 부모가 누구냐?” “얼른 집에 들어가라”라는 말은 한 아이의 성장에 대한 책임을 그의 혈연부모에게 귀속시키고 그 집 울타리에서 알아서 해결하라는 사회적 방치의 의미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정폭력에 희생된 어린이를 학대했던 부모에게 돌려보내기 위해서 그 부모의 형량을 감경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은 산간벽지 어린이를 청와대에 초청하는 어린이날 연례행사에서 발명가가 되고 싶은데 당장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는 섬마을 어린이에게 17개 시도에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가보라고 조언한다. 

 

오늘 그 어린이가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으며 그들을 향한 환대의 시선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누가 공부를 잘할 것인지, 돈을 잘 벌어올 것인지, 향후 생겨날 유용성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러나 미야자끼 하야오(宮崎駿)는 어린이의 미래가 유감스럽게도 시시한 어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라는 일은 하루하루 시시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근사한 미래에 아이들의 삶을 저당잡아두기보다는 오늘을 지켜주고 돌보는 일이 소중하다.

 

김중미(金重美)의 산문집 『꽃은 많을수록 좋다』를 읽으면 어린이를 반기는 일, 한 존재를 환대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은 『괭이부리말 아이들』(창작과비평사 2000)로 이미 온 국민의 가슴에 만석동 사람들을 성큼 들여놓았던 김중미 작가가 그동안 아이들과 꾸준히 나누었던 심리적·육체적 포옹의 기록이다. 아이들 한사람 한사람의 몸은 작고 가볍지만 그 포옹의 무게는 환산 불가능하다. 김중미 작가는 지금으로부터 약 삼십년 전 인천 만석동에 ‘기찻길옆공부방’을 열고 지금까지 강화와 만석동 두군데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그동안 함께했던 수많은 꽃들, 어렵게 맺혔거나 꺾였거나 피었거나 시들고 말라야 했던 꽃송이 같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생생히 담겨 있다. 공부방 식구들은 한사람이라도 충분하다는 마음으로 가지가 밟히든 샘이 마르든 꽃 한송이도 포기하지 않았다. 더 가까이 부둥켜안고 함께 축구를 하고 인형을 만들면서 “외줄 타기 같은 학교생활” 속에서 “줄광대처럼”(48면) 하루를 버티는 외로운 아이들의 편이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어린이의 편이 되어주었나. 이런 일은 성자의 소명을 가진 사람이나 하는 일 같아서, 편한 자리에 앉아 글이나 읽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표지를 들추다가 내려놓았다는 사람에게는 달려가서 붙잡고라도 가방에 다시 이 책을 넣어주고 싶다. 우리는 더욱 가차없는 도시의 주민들이었기에 지난 삼십년 동안의 만석동으로부터 배우고 도움받아야 한다. 만석동은 “집들이 다 붙어 있어서 불이 나면 적어도 다섯 집은 타고 소방차도 못 들어와서 위험”한 동네였다.(66면) 오늘날의 한국은 갓난아이를 잘 키워보려고 마련한 가습기의 수증기가 목숨을 앗아가고 수학여행을 간 딸이 기약없이 돌아오지 않는 곳이다. 어디가 더 위험한가. 책 속 어린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만석동은 가뿐히 1승을 거둔다. 만석동은 “위험하지만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모두 힘을 모아서 (불을) 끄고 담장 너머 공장 아저씨들도 도움을 주는” 곳이라서 자랑스럽다는 것이다.(66면) 

 

“밥을 공기에 덜어 먹는 법도 모르고, 속옷을 입는 법은커녕 신발은 짝을 맞춰 신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78면) 삼남매는 ‘기찻길옆공부방’을 만나면서 비로소 사람을 믿고 밥을 먹는다. 김중미 작가의 동화와 소설에는 유난히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잘 먹는 것, 너도 나도 다 골고루 배부르게 먹는 것은 이 작가의 삶의 목적이자 글의 목적이다. “그냥 편안해지고, 막 놀고 싶고, 잠도 잘 오고, 밥도 많이 먹게 되고, 그리고 이상하게 오빠들도 착해”지는 것이 바로 아이들이 바라는 평화라고 말한다.(287면)

 

이 책 속 일화 가운데 첫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던 김중미 작가가 냉장고 옆 탁자 아래서 분홍빛 생쥐에게 젖을 먹이던 어미쥐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어떤 생명도 돌봄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한명의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려면 궂은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은 사랑받고 보호받았다는 기억을 가슴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부모로부터 아픈 상처를 입은 아이에게 너희 부모에게 가라는 말은 답이 될 수 없을뿐더러 그 아이가 자라나 아이를 존중하는 부모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공부방의 아이들은 사회의 매몰찬 박대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기다렸던 어른들의 눈빛을 품고 있기 때문에 커서 멋진 부모가 되었다. 작가는 우리에게 돌봄이 필요한 생쥐의 사정을 호소하지도 않고 어딘가에 가서 어미쥐가 되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린이는 반겨야 한다는 것, 반기는 사람은 꼭 부모일 필요가 없다는 것, 아이들의 마음에 버팀목을 세워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그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조목조목 설득한다.

 

김중미 작가의 소설 『모두 깜언』(창비 2015)에는 강화의 세 청소년이 나온다. 베트남에서 온 작은엄마를 둔 유정이는 여의치 않은 형편임에도 더없이 씩씩하고, 농사꾼이 되겠다는 광수는 유정이를 외바라기처럼 사랑한다. 서울에서 전학 온 유정이의 첫사랑 우주는 다시 큰 기숙학교로 떠나지만 강화에서 친구들이 보여준 따뜻한 환대를 부적처럼 간직한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만석동의 13년이었다면 이 작품에는 강화의 13년이 담겨 있다. 실향 이주민들의 가난은 소농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작품 속 아이들은 여전히 아찔한 두려움을 안고 자란다. 『꽃은 많을수록 좋다』는 감명 깊은 두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을 이해하게 하는 외전(外傳)이면서, 픽션 뒤편의 진짜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빛나는 기록물이다.

 

김중미 작가는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어느 인형극 워크숍을 마치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아이들을 초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이들 곁으로 초대되었다는 것을 알았다.”(253~54면) 우리가 어린이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우리를 초대해준 고마운 존재임을 아는 것, 여기에서부터 어린이라는 꽃을 반갑게 돌보는 일은 시작된다. 물론 당연하게도, 꽃은 많을수록 좋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6년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김지은 / 아동문학평론가 

2016.7.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