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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한국경제의 위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②: 대우조선, 낙하산 산업정책의 파탄

 

이일영

이일영

얼마 전 사업현장 일선에서 고투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다. 힘들어 보여서 위로를 겸해 물었다. “요새 조선산업 난리라던데, 어때요?” 그랬더니 질문을 고쳐 대답해주었다. “조선산업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면 안되죠. 대우조선과 현대·삼성 중공업은 처지도 다르고 문제도 달라요.” 핵심을 찌르는 지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국가차원에서 집단범죄 행위가 벌어진 것이고, 현대·삼성 중공업은 호황기에 벌어들인 수십조원을 탕진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조선산업의 위기는 1970년대 형성된 한국형 발전모델이 부닥친 한계를 보여준다. 재벌체제의 무능과 정규직노조 중심 노동체제의 무책임도 함께 드러났지만, 국가의 집권적 산업정책 시스템은 아예 파탄에 이르렀다. 작년말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4조 2천억원을 투입했다. 이제 또 조선·해운 구조조정 자금 명목으로 한국은행과 정부가 12조원을 국책은행에 긴급 수혈하려 한다. 그런데 지금 체제로는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모래사장에 물 스며들듯이 사라질 것이다.

 

‘강한 국가’의 산업정책 붕괴를 드러낸 대우조선 사태

 

대우조선 사태는 ‘강한 국가’가 이끄는 산업정책이 붕괴한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간 한국의 발전모델을 높이 평가한 학자들은 시장과 국가가 비교적 긍정적으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보면 시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권력기관으로부터 독립된 경제 테크노크라트의 존재와 역할도 눈에 띄지 않았다. 권력층의 낙하산들이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침탈하는 ‘낙하산 자본주의’의 일각이 드러났다.

 

조선업 불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선산업은 2007년 최고의 호황을 맞았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불황기에 접어들었다. 2008년 위기는 선박가격지수를 30퍼센트포인트 이상 하락시켰다. 국내 조선사들은 과잉설비와 유휴인력을 계속 가동하기 위해 저가 수주를 감행했고 위험도가 더 높은 해양플랜트 사업에 뛰어들었다. 여기까지는 업체들이 시장활동에서 실패했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 산업정책은 과잉투자를 더 부채질했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해양플랜트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지정하고 5년간 6조원 정도를 지원하겠다고 결정했다. 이후 국책은행들은 정책자금 대출을 늘려나갔다. 이런 자금은 ‘눈먼 돈’으로 여겨졌고 기업들은 지원자금을 좇아 움직이게 됐다. 조선산업의 부실을 만회하기 위해 추진한 해양플랜트 사업에서는 더 많은 손실이 발생했다.

 

그나마 삼성·현대 중공업은 2013년 해양플랜트 부문의 손실분을 공개하고 2014년부터 회계에 반영했다. 그런데 대우조선은 분식회계로 실상을 감추었다. 2013,14년 모두 각각 4천억원이 넘는 흑자로 회계결과를 보고했다. 2015년 6월 새로운 대표이사가 취임했으나, 2016년 3월 말에야 2015년의 영업손실로 발표한 5조 5천억 가운데 1조 8천억 이상이 사실은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발생한 것이었다고 정정 공시했다.

 

낙하산들의 담합과 결탁, 무능과 부패가 큰 문제

 

대우조선은 현단계 한국경제에서 ‘강한 국가’의 작동방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가는 낙하산을 통해 시장경제에 개입했다. 현재 검찰에 구속된 두명의 대우조선 대표이사 임기는 2006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그리고 2012년 3월부터 2015년 5월까지였다. 대우조선의 명목상 오너는 산업은행인데, 산업은행장은 청와대에서 내려보낸 낙하산이다. 스스로 낙하산을 자처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의 말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이사 등 경영진 인사는 세종류의 낙하산부대로 이루어진다. 청와대 몫이 3분의 1, 금융당국 몫이 3분의 1, 그리고 산업은행 몫이 3분의 1이라는 것이다.

 

권력을 등에 업고 내려온 낙하산들은 시장경제와 국가재정·금융에 빨대를 꽂고 사회적 자원을 약탈한다. 2000년 이후 대우조선에 7조원 넘는 국민세금이 투입됐으나, 부채비율은 7300%에 이른다. 분식회계와 직원에 의한 횡령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성과급과 격려금을 나눠가졌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금융위원회는 낙하산을 보내 회사를 망친 주요 책임자다.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의 책임도 막중하다. 산업은행을 매년 감사하는 감사원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장에서 감시 역할을 맡은 신용평가기관과 증권사들도 침묵했다. 검찰 등 사법기관과 언론도 당파싸움의 진영으로 포섭돼버렸다.

 

당초 동아시아 산업정책을 칭송하던 이들은 ‘강한 국가’에 주목했다. 이는 권력으로부터 차단된 유능한 관료조직, 제도적으로 독립된 관민 협의,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선택적 개입 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목격되는 것은 끼리끼리 권력을 나눠 갖는 ‘강한 탐욕’이다. 집권세력, 국가부문, 기득권층, 기성세대가 요소요소에 내려보내는 낙하산들의 결탁과 담합, 무능과 부패가 사회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산업정책 권한을 지역에 대폭 이양해야

 

당장 대우조선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눈앞의 사태에만 급급해서는 안된다. 대우조선 처리 이후의 산업정책을 어떻게 가져갈지도 생각해야 한다. 산업정책은 제도와 조직들 사이에 필요한 조정을 행하는 필수불가결한 기능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을 둘러싸고 벌어진 행태는 ‘강한 국가’가 낙하산 마피아들의 분탕질이었음을 보여준다. 대우조선 관계자들에 대한 철저한 법적 책임 추궁이 필요하지만, 낙하산들의 거대한 뿌리는 나라 전체에 얽혀 있다.

 

낙하산들을 모두 제거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행동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새로운 조정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경제 거버넌스를 형성한 뒤 활용하는 방식을 현실적이라고 판단한다. 기존에 논의됐던 경험을 토대로 한다면, 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추진됐던 ‘5+2 광역경제권’ 발전모델을 활용해볼 만하다. 이를 더 밀고나가서 국가차원의 산업정책 기능을 인구 5백만명 정도의 광역경제권에 이양하자는 것이다.

 

낙하산들을 이대로 두었다간 나라 전체를 들어먹게 생겼다. 그렇다고 국가가 개입하는 산업정책 자체를 아예 없앨 수는 없다. 단기적 시장조정만으로 중장기적 산업문제에 모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강한 국가’가 산업조정을 행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이 너무 커졌다. 지역차원의 과감한 실험과 개혁이 필요한 시기다. 광역지역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조정과 협의 기능을 맡도록 전환해야 한다. 이제 지역이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행사해야 한국경제가 낙하산 자본주의로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2016.7.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