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쑨 거 『중국의 체온』
‘민중의 중국’은 당신에게 몇도인가?
--쑨 거 『중국의 체온』
어릴 적만 해도 일본을 따라다녔던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가 이제 중국에 접속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만큼 중국이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방증일 터이지만, 중국에 대한 인식과 실제 현실 간의 간극은 어쩐지 좁혀질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중국은 여전히 ‘먼 나라’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현대 중국의 모습이란 결국에는 일당독재, 민주주의·인권의 결핍, 중화주의적 패권주의 등으로 귀결되고야 마는 단순화되고 정형화된 부정적 이미지들의 나열과 반복에 다름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선별적 이미지의 재생산구조는 여전히 작동 중인 냉전이데올로기나 내셔널리즘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굳건하게 지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을 경유하여 ‘그렇다면 중국을 어떻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에 답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란 실로 여의치가 않다. 중국을 둘러싼 편향된 인식의 장막을 국가나 민족 혹은 정치, 경제, 사상 등의 범주에 입각하여 걷어내는 작업은, 한국으로 밀려들어오는 유커(遊客)의 행렬 속에서, 그리고 인터넷에 범람하는 ‘대륙시리즈’를 통해, 혹은 소위 ‘대륙의 실수’로 회자되는 샤오미(小米) 제품을 사용하면서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중국에 대한 인식적 계기와 그 구체적 실태를 적절히 설명하지 못할 수 있다. 도리어 일상의 감각과 괴리된 채 추상적인 논의로만 소비되어버릴 가능성도 농후하다. 바로 이러한 대목에서 『중국의 체온: 중국 민중은 어떻게 살아가는가』(김항 옮김, 창비 2016)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책의 저자인 쑨 거(孫歌)는 중국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손꼽힌다. 특히 ‘동아시아’를 지적 화두로 삼고 있는 몇 안되는 중국 학자라는 점에서 더욱 귀하다. 『아시아라는 사유공간』(창비 2003) 이래로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는 몇권의 저서와 다양한 학술적 연대활동을 통해 우리는 동아시아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분투해온 그의 사상역정을 오래도록 지켜봐왔다. 그런데 『중국의 체온』은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면서도 사뭇 새로운 시도로 읽힌다. 에세이라는 ‘경쾌한’ 형식을 취한 것도 그러하거니와, 무엇보다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세계의 사상 결핍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 그리고 중국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단초로서 ‘민중’이라는 시좌를 힘주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민중의 생활감각 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역사의 흔적
이 책은 모두 스물다섯 꼭지의 산문으로 이뤄져 있다. 각각의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쑨 거는 중국 대륙과 대만, 홍콩 등지를 체류하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소회와 고민의 자락들을 담담한 어조로 써내려간다. 본디 해외독자를 대상으로 중국을 제대로 설명하고자 기획된 글이니만큼 각 절에서 다루는 소재나 제재는 대개가 중국과 관련된 그 무엇이다. 그렇게 우리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중국의 모습과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방식―예컨대 자본시장의 상식을 넘어 서민적 생활습관을 보강하는 문화로서 정착한 ‘산자이(山寨)’(2장), 민중의 민주적 실천으로서의 ‘산보(散步)’ 시위(9장), 전통적 생산양식을 지키는 실천적 시도였던 ‘작은 당나귀 시민농원’(7장), 대만의 ‘권촌(眷村)문화’에 농축된 굴절된 현대사의 자취(11장) 등―을 흥미롭게 접하며 중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 결과 중국의 민주주의, 인권, 언론자유의 부재 상태에만 집착해온 기존의 질문에 균열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러한 질문방식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서구적 관점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의식하게도 된다.
그런데 마음을 더욱 묵직하게 움직이는 것은 ‘민중의 중국’으로부터 감각하는 뜨거운 체온 그 자체이다. 저자가 동아시아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중국을 인식하는 사유의 단초로 삼은 것이 민중의 생활감각과 “일상생활의 주름에 침투한 여러 힘들”(9면)인 까닭에, 우리는 그간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지금 중국을 살고 있는 민중의 펄떡이는 생명력을 다시금 시야에 담게 된다. 국가와 민족, 제도와 정치를 넘어 인민의 생활양식 속에 녹아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재발견하는 가운데 사유공간으로서 중국의 가능성은 더 확장되고,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의 빈곤 역시 많은 부분 성찰의 기회를 맞이한다.
중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평자의 편견을 털어놓는 것은 이 책의 미덕을 드러내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홍콩의 이미지가 그 한 예이다. 평자에게 홍콩의 화려한 고층빌딩과 번잡한 재래시장의 두 이질적 세계는 대개 자본에 의한 사회계층의 위계화라는 측면에서 고정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쑨 거는 광둥(廣東)사회를 빼닮은 홍콩인의 생활현장을 세밀히 관찰하면서 “위로부터의 식민지화가 사회의 기초까지 바꾸지는 못”(205면)한 증거라는 새로운 마디를 읽어낸다. 마찬가지로 평자에게 개혁개방 이후 중국 민중의 역할 내지 위치는 마치 사회주의 시기와의 단절을 상징하는 척도쯤으로 무심하게 치부되기 일쑤였을 뿐, 중국사회의 능동적 행위자로서 민중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쑨 거는 ‘습관을 바꾸며’ 중국혁명의 원리를 실천하는 농민의 삶에서(46~47면), 값싼 노동력인 중국 노동자가 파업을 통해 내뱉기 시작한 “어눌한 함성”(93면)에서 민중의 주체성을 발견한다. 아니, 언론 자유에는 큰 관심이 없을지언정 자신의 생존조건 속에서 삶을 개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민중이 중국을 유지시켜왔으며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민중임을 역설한다.
이렇듯 오늘날 중국 민중의 생활감각을 제대로 포착하거나 체감하지 못할 경우 ‘민중의 존엄’으로 말미암은 다양한 아래로부터의 목소리와 미래를 열 가능성의 요건들을 자칫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민중의 관점에서 중국의 체온을 전하려던 쑨 거의 진중한 노력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수 있겠다.
다시 묻는 중국의 현재
아쉬운 대목으로 언급해두고 싶은 지점도 있다. 이 책은 대개 “뒤틀리면서 움직이는 역사”(22면) 속에서 단련된 중국 민중의 완강하고 도도한 생명력을 묵직하게 관조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새롭게 맞닥트린 난제들이 국가와 제도 차원의 어떠한 변화 양태로부터 연유한 것인지에 관한 비판적 진단은 비켜가는 듯하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들지 않은 채 ‘혁명의 시대는 지났을지 모르지만 그 정신(만)은 살아 있다’는 식으로 민중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은 어쩐지 맥이 풀리게 만든다. 요컨대 민중의 생활감각으로 중국의 현재가 갖는 역사성을 치열하게 되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것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하는 일 또한 상투적 선언으로서가 아닌 현재적 가능태로 구체화될 수 있지 않을까.
쑨 거가 간곡히 요청하는 대로 “‘날것의 감각’을 매개로 새로운 중국을 발견”(10면)해가는 여정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사상형성의 계기로 작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중국을 다시 묻는 작업이 왜 우리에게도 긴요한지를 새삼스레 궁구할 때이다. 중국을 둘러싸고 난무하는 갖가지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는 일은 그 질문을 해명하기 위해 내딛는 첫번째 걸음이다. 쑨 거가 그려낸 ‘민중의 중국’은 당신에게 몇도인가.
김하림 / 세교연구소 연구원
2016.7.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