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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위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③: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통해 본 한국경제의 문제점

조성재

조성재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국내외의 놀라운 뉴스들 때문에 이전 이슈는 금방 잊혀지기 일쑤인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용어까지 동원되고, 이른바 ‘물량팀’이라는 불안정고용 노동자들의 생계대책에 대한 논의도 대두된 바 있지만, 최근 언론보도에서 이같은 주제는 잘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수면 아래로 잦아든 것으로 보이지만, 구조조정 이슈는 조선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구조조정은 현재 우리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경제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과잉투자의 부작용이 표면화되면서, 또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여러 산업의 구석구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 그 정도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때 주식이나 채권, 화폐는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쉽게 이동해갈 수 있지만, 실물자산과 노동력은 유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전환비용이 적지 않게 발생하게 된다. 특히 노동력은 인간에 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계산업에서 성장산업으로 쉽게 이동해가지 못하고, 한순간도 노동력의 재생산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생활, 때로는 생존을 위한 기본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보장 혹은 사회안전망이 인력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할 것임은 물론이다. 따라서 많은 국가가 고용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재훈련을 통하여 다른 산업과 직무로 옮겨가는 것을 지원하는 정책도 펴고 있다.

 

노동시장 양극화가 제기하는 문제점

 

그렇지만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나라별로 달리 발전해왔으며, 더욱이 유사한 제도라 하더라도 각국의 노동시장 기반과 노사관계 관행에 따라 매우 다른 양상으로 작동한다. 우리나라는 주지하다시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정규직의 감원과 비정규직 확산 등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어온 바 있다. 또한 비정규직 중에서도 계약직, 임시직 등 직접고용 형태보다 파견, 용역, 사내하도급 등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형태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고용형태의 왜곡 문제까지 가중되어왔다. 특히 사내하도급과 용역에서는 사실상의 사용자와 형식적인 사용자가 분리되면서 정상적인 고용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그에 따라 한번 노사갈등이 발생하면 고공농성이나 단식 등을 수반한 장기분규로 치닫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은 사용자와 담합하여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만 연연하였으며, 사용자들은 사내·사외 하도급의 증가 속에서 유연성과 저비용의 이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소수의 정규직은 편한 직무만을 수행하면서도 고임금의 혜택을 누리고, 다수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어려운 일, 때로는 위험한 일을 하면서 고용불안과 상대적 저임금의 고통을 겪어온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보수언론과 일부 학자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이기주의를 질타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그것은 일부 타당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자본이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을 포섭하고 대신 다수의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배제함으로써 본 이득구조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거나, 애써 외면하려 하였다. 바로 그 소수 포섭, 다수 배제의 노동시장 구조가 자본 대 노동 소득 양극화의 원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문제에 주목해야만 한다.

 

이는 결국 분배구조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이중화된 노동시장 문제를 극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시장의 이중화와 소득분배의 양극화 극복이 단지 사회통합성을 회복하기 위한 프로젝트로서의 의미만을 갖는 것은 아니다. 현재 떨어질 대로 떨어진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 회복은 바로 양극화의 극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민간부문뿐 아니라 공공부문을 비롯한 전 사회영역으로 확산된 아웃소싱과 그나마 남은 안정된 소수의 일자리조차 상시 구조조정의 압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청년들은 높은 이상과 꿈을 좇기보다 공무원시험과 대기업·공기업 입사, 의사, 변호사 등의 자격증 획득에만 매달리고 있다. 기성세대가 지대(rent) 추구행위에만 몰두하는 것을 보아온 그들에게 창의성이나 도전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추격이 거센 현재 국면에서 창의성 이외에 한국경제를 구원해줄 투수는 없다. 그러나 도전의 실패가 나락이 되고, 중소기업 취업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 그저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 실업을 전전하는 저소득 함정에 빠지는 길이라면 안정성이 뒷받침되는 창의성은 발아되기 어렵다. 한국경제는 선진국을 따라잡겠다는 모방 위주의 추격(catch-up) 단계를 지나 탈추격(post catch-up) 단계로 접어든 지 오래이다. 그렇지만 진정한 혁신을 전제로 하는 탈추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회제도도 그에 걸맞게 재정렬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부족하다. 또한 혁신이 단지 첨단기술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서의 효율적이고 공정한 인력 운용을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기술혁신과 대등한 일터혁신의 자리매김이 있어야만 경제의 효율과 형평의 조화가 가능하다.

 

성장을 위해 노동과 분배 문제를 해결해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work-sharing)가 아닌 사람 자르기 위주, 그리고 비정규직 등 주변인력이 고통을 전담하게 하는 구조조정 방식은 일터혁신의 가능성을 질식시킨다. 상생의 철학이 사라진 곳에 남는 것은 일자리와 소득을 지키려는 방어적 전투성뿐이다. 1998년 이후 전개된 축소 위주의 구조조정 결과 우리 사회는 아웃소싱 천국이 되어 심지어 자신의 미술품조차 외주를 통해 생산하는 시대를 열었다. 단순에서 고도로 나아가는 숙련 향상의 경로, 그리고 저숙련노동과 고숙련노동의 협력을 통한 조직력의 극대화는 아웃소싱으로 기업 간 경계가 늘어날수록 약화되었다.

 

숙련 향상보다 지대추구행위, 다른 한편으로는 아웃소싱을 통한 비용절감에만 몰두하는 노동문화로는 결코 중국의 추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위기를 맞은 한국경제에서 다시 구조조정 방식은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사회안전망의 제고, 그것은 분배 문제가 아니라 성장잠재력의 확충 문제이다.

 

조성재 /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2016.7.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