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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에 대한 또다른 접근: 연호, 국경일, 건국훈장

강성현

강성현

한쪽에서는 ‘헬조선’에 이어 구한말 ‘망국’ 상황 같다는 말들이 터져 나오는데, 다른 쪽에서는 ‘건국’과 ‘다시 한번 대한민국 성공신화’를 말하고 있다. 정말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지나보다. 대다수가 마주한 처참한 현실을 일부가 전면 부정하고 있는 모양새다. 대통령의 ‘광복절 71주년·건국 68주년’ 경축사는 유난스럽게 ‘정신승리’ 계열의 단어들을 늘어놓으면서 ‘함께 가자’고 일방적으로 주문했다.

 

10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2008년 8월 15일 이명박정부의 ‘건국 60주년’ 명명 시도는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철회되긴 했지만, 그후로도 뉴라이트들이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다. 광복 70주년이었던 지난해 ‘대한민국 국회의원’ 65명이 다시 건국절을 제정하겠다고 발의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왜 이렇게 광복절을 건국절로 덮지 못해 안달하는 것일까?

 

무지의 소치인가

 

2006년 7월 이를 최초로 주장한 이영훈 교수는 1945년 광복과 1948년의 제헌, 둘 중에 단연코 후자가 중요하다고 자문자답한 바 있다. 우리의 힘으로 이루지 않은, 어떤 근대국가를 세울지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광복절 대신 ‘미래지향적인 건국절’과 ‘자랑스러운 건국사’로 기억, 기념하게 하자는 주장이었다. 미국의 ‘건국기념일’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왜 이렇게 광복절을 폄하하는 것일까? 그의 글을 보니 뉴라이트들이 줄기차게 얘기해온 대목과 일치하는 게 있다. ‘대한민국 건국’이라 하지 않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라고 쓰면서 ‘해방’과 ‘광복’만을 강조하는 역사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다. 뉴라이트들이 진저리나게 싫어하는 이 역사관은 때론 ‘수정주의 좌파’로, 때론 고루한 ‘민족주의 우파’로 그때그때 달리 낙인된다. 고무줄 같은 그 기준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왜 이렇게 무지한 것일까? 한국사를 잘 모르더라도, 서양사는 잘 알고 있을 줄 알았다.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이 건국일인가? 제헌일인가? ‘유감스럽게도’ 그날은 아메리카 식민지 13개 지역 대표들이 영국을 향해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1948년 9월 8일 조국현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바로 그 사례를 들면서 연호를 ‘민국 30년’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우리로 치면 바로 삼일절이며, 조의원은 이를 대한민국 원년으로 삼자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1948년 8월 15일은 어떤 날인가? 아직 ‘국경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았지만, 1945년 8월 15일 이후 한국인이라면 관공서뿐 아니라 일반 민중도 기념했던 ‘해방기념일’ 3주년이었다. 그리고 “일제침략의 아성이었던 이 건물 이 마당에서 비록 국토는 양단되어 남과 북이 서로 외국인양 갈리어 있으되 이보다 먼저 당당한 국호 아래 전세계를 향하여 주권을 찾고 군정이 물러가고 완전 독립을 선포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국민축하식”(국사편찬위원회 『자료 대한민국사』 제7권, 2008)이 개최되었던 날이다.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 선포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이루어져 3년 전 해방과 독립의 의미가 완성된 날이다. 1년 후 이 해방과 독립 기념일은 법률을 통해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다.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독립이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다시 한번 ‘빛을 되찾은 것이다.’ 다시 말해 광복절은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동시에 경사스러운 날로 기념하는 날이다.

 

건국 ‘연호’가 말해주는 것

 

이왕 말이 나왔으니 현재 논란이 되는 ‘건국’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건국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헌법에서 건국은 근대국가의 수립과 그 선포를 의미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건국일은 언제인가?

 

제헌헌법과 개정된 모든 헌법 전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과 ‘삼일운동’이다. 제헌헌법에 한정하면, 더 분명해진다.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이제’(1948년)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는 선언 앞에 어김없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들어가 있다. 이는 그냥 수식어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를 단군 이래 민족사 차원에서 유구하게 계속되는 역사로 파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즘말로 ‘국뽕’기가 진하다. 내 해석과 주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의 역사관이 그렇다는 거다.

 

며칠 전 읽은 역사학자 전우용의 경향신문 칼럼을 보고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전우용은 1949년 10월 1일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의 제정 과정으로 접근해 그런 결론을 얻은 듯했지만, 나는 1948년 9월 25일 제정된 단 한줄짜리 법률, ‘연호에 관한 법률’로 접근해 같은 결론을 얻었다는 차이가 있다. 군주제 국가도 아니건만, 제헌헌법 제정과 대통령 취임이 이루어진 직후부터 이 연호 문제를 둘러싸고 국회 내에서, 국회와 국무원 간에 제법 심각한 논쟁이 진행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선서에 ‘대한민국 30년’과 ‘하나님’을 넣은 것이 논쟁의 발단이었다. 바로 국회 내에서 문제제기가 있었다. 국회는 개회 때부터 ‘단군기원(단기) 연호’ 4281년을 썼는데, 갑자기 이승만과 국무원이 ‘민국 연호’를 쓴 것이다.

 

당시 민국 30년 연호가 유별나기는 했다. 일제 연호인 ‘쇼와(昭和)’에서 해방되어 미군정 시기에는 ‘서기’를 사용했다가 제헌국회가 구성되고 헌법을 제정하면서 의식적으로 단기 연호를 썼는데, 갑자기 이대통령이 취임식 때 민국 연호를 사용했다. 단기 연호는 제헌헌법 전문에도 나오며, 부칙에 이승만이 국회의장으로 서명할 때도 사용되었다. 민국 연호 주장이 큰 공감대를 만들기는 했지만, 단기 연호 주장이 우세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공용연호는 단군기원으로 한다”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1961년 12월 폐지 때까지 사용되었다.

 

제헌헌법 전문과 연호에 관한 법, 국경일에 관한 법에 내포된 역사관을 종합하면, 개천절을 건국으로 보고, 이후 유구한 역사가 계속되었다가 삼일운동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민국을 건립, 1945년 8월 15일에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첫번째 광복을 이루었고,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공포한 데 이어 8월 15일 반쪽짜리 정부이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의 근대국가를 선포해 두번째 광복을 이룬 것이다.

 

두고볼 수 없는 정치적 분탕질

 

물론 이러한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나부터 그렇다. 이건 헌법의 역사관이다. 다만 이 ‘국뽕’기 진한 역사관을 정면으로 성찰해보면, 대한민국 건국 시기가 1919년이냐, 1948년이냐 하는 프레임에서는 벗어날 수는 있지 않을까? 건국 시점으로 집중되는 프레임에서는 대한민국이 일제의 한일 병합을 국제법적으로 무효라고 선언하는 것이 궁색해진다. 왜냐하면 일제는 대한민국이 아닌 대한제국을 병합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국가성’이라는 점에서 볼 때, 1919년 민국 선언 이전의 실체로 존재한 대한제국과 단절되지만 연속되고 있음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 건국 시점으로 환원되어버린 논쟁을 넘어서는 다양하고 생산적인 논쟁이 절실해지는 이유다.

 

문제는 뉴라이트들의 건국절 주장은 이처럼 학문적이고 생산적이라기보다 의도가 시꺼먼 정치적 주장이라는 데 있다. 부정하고 기회주의적인 방법으로 힘과 돈을 갖게 된 자들이 명예까지 챙기려는 대한민국 일부의 이해를 대변하는 주장이다. 더 신랄하게 말하자면, 건국훈장 한번 받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최근 <뉴스타파> 보도를 보니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한 자”만이 받을 수 있는 건국훈장도 더이상 친일로부터 청정한 것이 아니었다. 건국훈장 서훈자 중 친일행적 의심자가 167명이나 되었다. 건국훈장에서도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 정도가 그나마 나은 사정이랄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10년 동안 진행된 ‘과거청산’ 작업(일제시기 친일반민족 행위와 대한민국의 불법적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은 아이러니하게 뉴라이트를 탄생시켰다. 이후 뉴라이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건국절 논란에 앞장서면서 지지세력을 진영화하고 있다. 이런 자들과 어떻게 학문적으로 생산적으로 논쟁한단 말인가? 아무리 자료를 갖고 논리적으로 반박해도 지난 10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 정치적 분탕질만 반복될 것이다.

 

그럼에도 손 놓고 외면할 수는 없다. 특정 시간과 장소의 기억과 기념은 언제나 역사전쟁을 동반했다. 삼일절 백주년이 되는 2019년을 목전에 두고 역사사회학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해본다. 

 

강성현 /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2016.8.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