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북한붕괴론, ‘오보’와 ‘의도’의 합작품
최근 영국에서 망명한 태영호는 빨치산 2세도 아니고, 김정은의 비자금 관리인도 아니며, 최고위급 탈북자도 아니다. 그는 공보를 담당한 외교관으로 근무를 마치고 귀국해야 하는 ‘1등서기관’ 급이었다. 그의 탈북 동기는 아들의 장래라고 한다. 누가 그의 아버지가 빨치산이고, 그를 ‘김정은의 비자금’ 관리인이라고 했을까? 명백한 오보다. 북한대사관의 운영 실태나 인명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도 며칠 동안 소설이 난무했다. ‘아니면 말고’ 식의 북한 보도는 고질병이다. 배후는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을 부각하고자 하는 정부다. ‘오보’와 ‘의도’의 만남이 바로 북한붕괴론이다. ‘북한이 무너지고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 왜 자주 반복될까?
‘만들어진 붕괴론’
김정은체제는 안정적일까? 안정과 불안정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초기에 장성택 숙청과 같은 과격함이 불안을 예고했다. 그러나 36년 만에 7차 당대회를 열어 당의 조직과 인사를 정비했다. 초기의 잦은 엘리트 교체도 점차 안정화되었다. 박봉주 총리 같은 원로세대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외교 분야의 인사도 예측 가능하다.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과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2년 동안 엘리트층의 탈북이 다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외교관도 있고 무역일꾼도 있다. 그러나 과거와 비교해서 고위층의 수준과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상징후’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 2016년 상반기 탈북자 수는 749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614명)에 비해 22% 늘었으나, 2014년(731명)과 2013년(717명)과 비교해보면 비슷한 수준이다.
경제는 어떨까? 정부는 제재 효과를 강조한다. 그러나 역대 최강의 대북제재 결의안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90%가 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제재는 중국에 달려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안이 채택된 이후인 2016년 4월과 5월 북중무역은 다소 감소했으나, 6월부터는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북중무역의 내용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2015년 북한의 수출 상위 품목이 광물 분야였다면 2016년에는 의류·임가공 분야가 대체했다. 자원수출에서 산업협력으로 전환했다. 광물 분야는 국제원자재 가격과 중국 경제성장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비교우위에 입각한 산업협력은 상호이익이고 지속 가능하다. 식량생산은 2015년 기후의 영향으로 다소 감소했다. 그러나 1990년대 식량위기의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다. 북한체제는 1990년대와 비교할 수 없고, 2000년대와 비교해도 나아지면 나아졌지 악화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왜 붕괴론은 반복될까? ‘오보’와 ‘의도’는 동업자다. 태영호 보도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은 대통령의 붕괴론 발언과 통일부의 배경설명이 계기였다. 북한 보도의 국내정치적 활용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일부 종편은 거의 하루 종일 북한을 다룬다. 국내 뉴스를 다루어야 할 시간을 북한 보도로 채운다. ‘관계부처’가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흘리고, 정부가 주문제작한 기사가 양산되고 있다. 정권의 나팔수로 변한 언론과 한자리해보겠다는 관제 먹물들이 덩달아 춤을 춘다.
북한에 대한 정보와 관련해서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왜 ‘오보’와 ‘의도’의 카르텔이 아무런 제어 없이 무한 반복될까? ‘야당의 무능’ 때문이다. 정상적인 야당이라면 국회에서 정보왜곡을 차단할 수 있다. 정보실패의 책임을 져야 할 관계부처가 의도적인 정보왜곡에 앞장서는 것은 ‘국내정치적 개입 행위’에 해당한다. 충분히 실상을 파악해서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야당은 그동안 ‘안보는 보수’라는 이상한 이념에 사로잡혀 ‘북한 보도’에 눈을 감고, 일부는 붕괴론에 동조했다. 동시에 국가예산을 쓰는 언론사의 과도한 정치행위도 얼마든지 야당이 제어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지도부에 바란다. 과도하게 기대하진 않는다. 그냥 최소한의 야당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
붕괴론은 무능을 감추기 위한 가면이다. 남북관계의 악화 책임을 상대에게 덮어씌우기 위한 명분이다. 붕괴론자들은 불안정한 상대 때문에 무엇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알고 보면 무엇을 하려고 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붕괴론은 불안정의 근거를 찾는다. 일부 현상을 과장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근거로 삼는다. 조금만 살펴보면 무리한 주장임을 알 수 있다.
붕괴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기다리는 전략’과 ‘전략적 인내’는 정책이 아니라, 무능 그 자체다. 현재 남북관계의 악화와 북핵 문제의 배후는 붕괴론이다. 붕괴할 것이라는 허망한 기대로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문제해결의 기회를 놓쳤다. 남북관계는 과거 냉전시대로 돌아갔고,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었다. 붕괴론이 남긴 후유증이다.
김정은체제가 풀어야 할 숙제는 적지 않다. 대외적 고립, 경직된 정치문화, 비효율적인 경제체제,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그것은 김정은체제의 몫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따로 있다. 정책은 상대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를 우리 힘으로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물론 ‘북한 문제’나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에 관한 인식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합의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익숙한 진통’을 겪어야 한다.
북한붕괴론자는 곧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것이다. 그러나 붕괴론은 거대한 숙제를 후임 정권에 남겼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붕괴론에서 협상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붕괴론과 같은 ‘희망적 사고’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대면할 필요가 있다. 협상을 하려면 상대를 파악하고 의도를 분석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붕괴론으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2016.8.3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