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막다른 길”로 치닫는 부동산정책
2006년 최고조에 달했던 부동산 광풍이 10년 만에 재현되고 있다. 2006년 당시 다양한 수요 억제책과 신규 공급대책을 통해, 특히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통해 가까스로 그 광풍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에 정권이 교체되면서 한국판 부유세라고 할 수 있는 종합부동산세가 유명무실화되고 각종 규제가 완화되었다. 그러다가 2016년 정부는 건설사들의 주택공급을 줄여서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내놓았다.
이름과 달리 이는 ‘부동산 시장관리’ 대책이다. 주택공급을 적정 수준으로 줄여 시장의 단기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가계부채의 총량이 아니라 그것의 급격한 증가속도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것이다. 추가 대출규제, 분양권 전매 제한, 재당첨 금지 등과 같은 강력한 수요억제 규제책을 제외한 것을 보면 이러한 점이 부각된다. 시장에서는 동 대책과 무관한 재개발·재건축뿐 아니라 미분양, 분양권, 재고 아파트에도 순풍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6년 장세를 2006년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초저금리로 유동성은 더 풍부해졌다. 정부는 부동산 광풍을 제압하려는 비장한 소방관이 아니라 저성장 기조로 인해 어떻게든 부동산경기를 유지하려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방관자에 머물러 있다.
요원한 서민주거 안정화
미국이 수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초저금리를 유지하여 ‘이지 머니’(Easy Money)를 양산한 결과 주식시장이 활황을 구가했으나 그 이득의 약 95%를 상위 1%가 가져갔다. 과도한 유동성은 자산과 소득의 불평등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우리나라도 이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주식시장이 아니라 가계자산의 약 3/4을 차지하는 부동산이 그 주요 타깃이다. 저금리는 ‘전국민의 재테크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초저금리로 풀린 이지 머니는 특히 재개발·재건축단지의 분양가 차익을 노리고 몰려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야처럼 폭탄 돌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어느 누가 그렇게 높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 보수언론의 지적처럼,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심지가 순간적으로 맹렬히 타오르듯이, “막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조선일보 「‘막다른 길’이 될 빚으로 지탱하는 성장」, 2016.9.2.)
현 정부는 2013년 출범 이래 이제까지 13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그 결과 주택거래량이 늘고 주택가격이 일정정도 상승했다. 그러나 초저금리와 주택시장에 대한 기대심리 변화로 인해 전세가격이 앙등하고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일반 국민들의 주거비가 급등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택정책의 핵심 목표인 ‘서민주거 안정’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났다. 이러한 주거비 급등과 가계부채의 증가는 민간소비 위축과 금융 불안정성을 심하게 조장하고 있다.
부동산(real estate)은 물리적 대상으로서 토지와 건물(주택)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부동산’(real property)이라고 회자할 때는 여기에다 재산권이 덧붙어져야 한다. 따라서 주택은 거주의 공간이자 동시에 재산이다.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화폐를 “유동성 프리미엄이 언제나 보유비용을 넘어서는 자산”이라고 정의하면서, 이와 유사한 자산으로 ‘토지’를 예로 들었다. 이처럼 부동산은 사용가치와 재산가치라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닌다. 일반적인 상품은 그것의 사용가치가 일정 한도에 다다르면 그 가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부동산은 다른 상품과 달리 그 가치가 상승할 수 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사례는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는 거리조락(距離凋落)이라는, ‘중심’에 가까울수록 높은 가치를 가지는 공간법칙과 ‘기대심리’가 한몫을 한다. 최근 수도권과 지방 간의 부동산가격 양극화는 이런 측면을 반영한다. 일반 사람들이 가지는 부동산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 즉 단란한 보금자리를 꿈꾸지만 그 가치가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이를 편협한 ‘욕망’이라는 ‘도덕적’ 프레임으로 몰아붙이면 생산적인 대화는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다.
생애주기에 따른 소득 기반과 연동해야
부동산은 담보 설정의 지렛대를 통해 더 많은 자산을 축적할 수도 있으며, 이혼, 이사, 결혼, 질병 등 일시적인 쇼크에 대비할 수 있는 완충수단이기도 하다. 임대소득을 통해 일정한 현금흐름을 보장할 수 있는 노후보장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속이나 증여를 통해 세대 간에 경제적 부를 이전할 수 있는 수단이다. 폭넓은 완충장치로서의 부동산 자산에 대한 인식의 내면화는 우리 사회가 생애주기에 따라 현금흐름, 즉 소득이 안정화되어 있지 않음을 함의한다. 덴마크나 네덜란드의 경우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우리보다 더 높지만 이 문제가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잘 구축된 사회보장체제로 인해 가계가 막대한 연금자산, 즉 일정한 미래소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계부채에 대한 상환 능력이 안정적으로 확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기관은 자산 담보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소득에 기반한 상환 능력을 심사하여 대출해야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것이 기본이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생애주기를 통해 소득흐름을 안정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나 복지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자산의 폭넓은 완충효과에 대한 물적·심리적 지지대가 너무 두텁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비대칭적인 부동산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애주기에 따라 현금흐름이 안정화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계약, 즉 복지제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동시에 소유와 이용의 재산권 권리 간의 과도한 비대칭성을 줄이는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즉 이용의 권리(예: 임차)가 소유의 권리(예: 임대)에 대해 숨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개발권에 대한 공적 관리도 여전히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막다른 길”로 치달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이다.
정준호 /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
2016.9.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