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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할매들의 행복

정홍수

 

 
정홍수

정홍수

“추억이지. 기억 나는 게 너무 많지. 쭈욱 우리가 사워온(싸워온) 거, 그거 이리 추억해보믄 아아. 여름에 저 땜(댐) 우에서 하루 저녁 잘 때는 세면 바닥에, 거게(그게) 팔월달 아이가, 세면 바닥에 누워 있으이까 밤중 넘어가이 밑이 뜨뜻하이, 군불 많이 여놓아(넣어놓아) 좋다 카고, 우리가. 그래 웃으민서 군불 많이 여조서(넣어줘서) 좋다 카민서, 그래 누워가지고 있은 기억. 여자 너이가(넷이) 그래 드러누워가지고 그렇게 짜드라 웃고. 아이고 우리가 이 철탑 아니라시몬(아니었으면) 우리 너이가 이래 같이 어깨 맞대가꼬 이래 누워 있겠나 카고.”

 

밀양 송전탑 싸움을 기록한 박배일 감독의 다큐 「밀양전」(2013, Legend of Miryang 1; 5월 16일 세교연구소 주관으로 인문까페 창비에서 상영)에서 정임출 ‘할매’가 행복한 표정으로 웃음을 머금고 들려주는 이야기다. 인분을 생수병에 담아 ‘똥탄’을 만들고, 팬티 바람으로 드러눕고, 헬기가 내려놓은 기름통에 몸을 묶어 버티고, 더러운 세상 싫다며 나무에 목을 매려고까지 했던 그 처절하고 서러운 시간들이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는가. 그런 것 같다. 밀양 할매들의 ‘밀양전(戰)’은 생전 험한 욕 한번 입에 올리지 않고 살아왔던 할매들이 욕쟁이가 되고 투사가 되면서 그네들 스스로도 망각하고 살았던 인간적 자긍과 위엄을 되찾고, 지혜와 정의,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이야기다.

 

“주구가 부끄럽지, 우리가 부끄럽나”

 

한옥순 할매는 말한다. “우리는 3년 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져본 적이 없다. 이게 억수로 중요하다. 우리 지혜가 앞서서 다 막아냈다.” 누가 알려주기 전에 할매들은 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분뇨에 김치국물을 섞어 뿌리고, 옷을 벗고 싸운다.(곽정섭 할매는 칠부 속바지 ‘시치부’를 깜빡하고 안 챙겨 입는 바람에 삼각팬티 차림이 된다. 얼굴은 모자와 마스크로 감싼 채. “가룰(가릴) 거는 안 가루고…… 나중에 그 이야기 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주구가(저들이) 부끄럽지, 우리가 부끄럽나.”

 

행여 어떤 일이 생기면, 당신들의 장례는 대책위의 결정에 맡기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한다. 그래야만 계속 싸울 수 있다고 말할 때는 보고 있기가 괴롭다. 할매들은 이 싸움을 당신들 대에서 끝내야 후손이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송전탑 싸움은 원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탈핵희망버스’를 타고 찾아온 이들을 반기며 할매들은 말한다. “우리 뒤에도 사람들이 있구나, 이기겠다는 마음이 솟았다.”

 

현재 한전은 밀양 송전탑 경과지 30개 마을 중 27개 마을과 공사 합의를 완료했다고 한다(머니투데이 2014.5.25).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 상동면 여수, 고정마을이 남아 있는 3개 마을이다. 밀양을 지나는 69개 송전탑 중 63개가 착공되었으며 이 중 17개 송전탑은 공사가 완료된 상태다. 「밀양전」의 할매들은 부북면 평밭마을에 산다. 상영회를 마치자 박배일 감독은 밤기차를 타고 할매들이 있는 평밭마을으로 내려갔다. 평밭마을을 비롯해 남아 있는 세 마을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 싸움은 이길 수 있을까. 「밀양전」은 이런 질문의 방식에 제동을 건다.

 

할매들이 경험한 진짜 행복

 

밀양의 할매들은 이미 이겼다. 국가와 관이 국민을 버린 자리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구조하며 세상을 얼마간 바꾸고 그들 자신을 바꾸었다. 2000년 11월 27일, 공사장비가 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할매들은 삼거리목 시멘트 바닥에서 나흘 밤을 새우며 버틴다. 경찰이 들어내면 다시 들어가고, 들어내면 다시 들어갔다. 결국 정임출, 곽정섭, 한옥순 세 할매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다. 할매들은 마을 일이 걱정되어 병원에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세 할매가 손수 링거를 뽑고 서로를 부축하며 마을로 들어오던 저녁, 「밀양전」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 저녁의 일을 들려주는 정임출 할매의 목소리는 수줍은 듯 자랑스럽게 떨린다.

 

하긴 그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현실을 기다림의 시간에 묶어두는 숱한 거짓 희망의 구호와 이데올로기야 논외로 하더라도, 진정 더 나은 세상이란 언젠가 도래하고 실현될 미래의 시간 속에만 있는 것일까. 그날 저녁 서로를 부축하고 격려하며 걸어가던 시간 속에서 할매들은 이미 그런 세상의 행복을 얼마간 벅차게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진실과 지혜, 용기, 연대가 함께하는 시간. 고작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게 부끄럽다.

 

할매들의 말은 어눌한 가운데 지혜로 빛나고 군더더기 없이 세상의 진실에 이른다. “벌금 같은 거 안 무섭다. 다 가져가라고 내놨다. 움막에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진실이 뭐꼬. 진실은 소외되고 못사는 사람들을 돌보는 게 진실 아이가.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 그게 진실인 기라.”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그 평화로운 마을 위로 헬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난다. 송전탑 공사를 맡은 한전측 노동자들이 산길 한쪽에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 있다. 인분을 덮어쓰며 할매들과 씨름하는 전경들의 모습은 안쓰럽다. 여기,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밀양전」의 후반부에는 할매들과 주민, 싸움을 함께하는 이들이 큰솥에 벌겋게 고깃국을 끓이고 오이를 무치고 밥을 해서 서로 걸지게 나누어 먹는 장면이 나온다. 정임출 할매는 막걸리 한잔을 마신 뒤 말한다. “아, 맛있다. 쥑인다.” 그 국밥에 막걸리 한잔을 얻어먹고 싶다.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4.5.28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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