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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 연합을 개헌과 선거개혁을 위한 연합으로

이태호
이태호

이태호

새해 들어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 비중 있는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회 개헌특위와 정치개혁특위에서 별다른 진전 없이 교착되어온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논란이 커지게 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개헌을 언급한 이후부터다. 문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국회 개헌 논의 경과를 지켜보되, 6·13지방선거 개헌국민투표 공약을 이행할 수 있도록 정부도 개헌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6·13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은 비단 여당만이 아니라 원내 모든 정당과 후보들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대선에 패배해 인기 없는 야당으로 전락한 자유한국당은 과거의 적극적인 입장에서 크게 후퇴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고, 대통령의 회견 이후에는 더욱 대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당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처지여서 개헌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문재인정부가 국회 대신 개헌안을 마련한다 해도 국회의원 2/3의 찬성을 요하는 국회 표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쳐진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개헌도 선거제 개혁도 물 건너간 거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개헌은 될까? 관찰자에서 행위자로 나서야 한다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중앙집권적 정치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적폐청산도 촛불혁명의 완성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의구조가 민의를 온전히 반영하도록, 승자독식이 아닌 연합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나아가 대의제를 넘어 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주권자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정치구조를 뜯어고치는 일이 시급하다. 지난해 우리가 사상 유례없이 평화롭고 압도적인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시민의 의지에 놀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파면’이라는 일시적인 연합정치가 작동한 결과다. 그러나 이런 연합이 늘 성공적으로 형성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고 압도적 시민행동이 매번 일어난다는 보장도 없다.

 

낡은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이를 주권자와 주민들의 ‘슬기로운’ 투표행위를 통해서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금의 대통령과 여당이 앞으로 계속 압도적인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리라 단정하고서, 다양한 민의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조화롭게 배분된 권력구조를 설계해 적절한 연합을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나중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시민의 힘으로 이룬 촛불연합, 개헌연합도 시민의 힘으로

 

낡은 헌법을 뜯어고쳐 주권과 인권을 강화하고 정치를 개혁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온전히 살리려면 여기에도 연합정치가 작동해야 한다. 지금 자유한국당 등이 단기적인 당리당략 추구에 급급한 나머지 정치개혁이나 개헌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협상과 타협에 대결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국민 다수가 원하고, 합리적인 정치세력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개헌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설사 6월 지방선거 때 헌법 개정이 성사되지 않는다 해도 그 이후를 위해 중요하다.

 

개헌을 위한 연합의 가장 큰 병목지점은 역시 정치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방안이다. 정치권 스스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해왔고 앞으로도 난망하다. 심지어 시민사회 인사들과 헌법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한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 분야는 정치권의 당리당략이 집중된 영역임과 동시에 촛불광장에 나섰던 시민들 모두가 매우 민감하게 느끼고 큰 관심을 보이는 영역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실감한 참정권 실현과 정치개혁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따라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구조·권력구조 개혁 분야에서 시민의 연합을 만들어 이 분야에서의 정치적 연합이 가능하도록 압박하는 정치개혁 시민합의 운동을 시도해볼 만하다. 특히 제도권 개헌 논의의 병목지대인 직접민주주의 확대, 선거제도 개혁, 지방분권과 자치, 국민이 동의하는 민주적 권력구조(정부형태) 등 4가지 상호연관된 분야에 대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국민 다수가 공감하는 실천적 개혁안을 시민사회가 마련할 수 있다면 올 6월의 개헌안 처리 여부를 떠나 이후 정치개혁과 개헌 논의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터이다.

 

정치개혁과 권력구조 개편, 정치권이 못 풀면 시민합의부터

 

아래는 국민참여형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활동해온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와 ‘정치개혁 공동행동’ 두 연대기구가 공동TF를 구성해 준비하고 있는 “참정권 확대와 정치개혁에 관한 시민사회 개헌합의 초안”의 골자다.

 

첫째,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부활과 이를 확대하자는 제안이다. 촛불광장의 교훈은 국회나 정부가 스스로 개혁하거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민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에 국민발안, 국민투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국민소환 제도가 시민의 정치적 기본권으로 명시될 필요가 있다. 특히 헌법개정 국민발안 제도는 구체적인 절차까지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

 

둘째, 민심을 온전히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선거제도를 개혁해 국회를 개혁하지 않고서 국회의 권한 문제를 다투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정당별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이 일치되어 민심이 그대로 국회 의석에 반영되도록 헌법에 ‘비례성의 원칙’을 명시해야 한다. 또한 참정권 보장과 확대를 위한 국가의 책무도 명시되어야 한다.

 

셋째, 자치와 분권을 확대하자는 제안이다. 과도한 중앙집권을 해소하고 주민자치에 입각한 지역의 다양하고도 균형있는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법령에 위배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혹은 국가입법이 필수적인 영역을 제외한 범위 내에서 지방정부의 자치입법권, 자치재정권, 자치조직권을 헌법적으로 보장하고 적절한 재정조정 제도 등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헌법에 대한민국이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함을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넷째, 국민이 동의할 만한 민주적 권력구조(중앙정부 형태)를 마련하자는 제안이다. 대통령중심제니 이원정부제니 하는 알 듯 말 듯한 개념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의 논쟁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막론하고 결론에 이르기 어렵다. 실천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직선제는 확고부동한 국민적 합의인 만큼 이를 변경해서는 안 된다. 다만, 현 헌법에서 대통령에게 부여한 ‘국가원수’ ‘헌법수호자’ 등 과도한 지위 규정을 삭제하고 인사권을 축소하여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으로 기능하게 해야 한다. 더불어 선거제도 개혁 등 정치개혁을 전제로 국회의 입법·예결산 기능과 인사동의권, 기타 행정부 견제 권한을 강화할 수 있다. 국회의 행정부 견제 권한을 좀더 강화하는 방안으로 국무총리를 국회의원 중에서 국회가 단수 혹은 복수로 추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국무총리 임명 방식에 관해서는 ‘공론조사’ 같은 시민합의 방안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쪼록 시민사회의 적극적 노력을 통해 탄핵운동에 동의했던 70~80%의 국민들과 합리적 보수정치세력들이 서로의 이견을 좁혀나갈 수 있는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의 건설적 논의 틀과 연합이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이태호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국민주도 헌법개정 전국네트워크 상임운영위원

2018.1.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