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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돈이 아닌 돌봄의 문제다

황정미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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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정감사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적폐청산도, 실업위기나 부동산 가격 급등도 아닌 사립유치원 회계비리 문제였다. 이렇게 되리라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나라에서 받은 지원금으로 고급 차를 타고 명품 백을 사는 어이없는 행태에 모든 국민이 분노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가 돌봄의 공공성, 아이들은 사회가 함께 돌보며 키워야 한다는(social care) 사회적 합의를 굳건히 하고 더 나아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낳기만 하면 나라가 키워주겠다”는 구호는 이미 귀에 익은 말이다. 모든 영유아에게 혜택을 주는 무상보육은 벌써 실행 중이며 아동수당도 도입하기로 결정됐다. 그런데도 아동 돌봄의 공공성이 아직 부족한가?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수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을 쓴다고 해서 공공성이 절로 보장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이 돌봄은 엄마, 유치원, 어린이집에 맡겨놓으면 끝나는 일이 결코 아니며, 정부와 시설장뿐 아니라 교사, 부모, 그리고 시민과 전문가들이 함께 지켜보며 다듬어나가야 하는 모두의 숙제다. 사립유치원의 비리를 드러내는 데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무척 고무적이다. 더 나아가 돌봄과 양육은 엄마들만의 정치가 아닌 아빠들의 정치, 그리고 정당과 정치인들의 중심 현안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민간에 떠맡겨진 돌봄과 양육의 문제

 

그런데 연일 계속된 국회의 질타, 정부의 대책발표에 대응하는 사립유치원 관계자들의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물론 어려운 여건에서 유아교육에 헌신하는 교육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돈을 주는 정부가 분명 ‘갑’일 터인데, 동네 유치원들이 정부와 국회의 압박에 강하게 맞서는 이 장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선, 압도적인 숫자의 힘이다. 전국 9천여개의 유치원 중 사립유치원이 4,747개를 차지하며, 사립유치원 중 87%는 법인도 아닌 개인유치원이다. 원아 수 기준으로 보면 75.2%(522,110명)가 사립유치원에 다니고 있다(2017 교육통계연보). 어린이집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은 전체의 7.8% 정도에 불과하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중 73.1%(1,060,167명)는 국공립도, 법인 단체도 아닌 민간 어린이집과 소규모 가정 어린이집을 이용한다(2017 보육통계). 그러니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사립유치원, 민간 시설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대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립유치원 쪽에서는 회계 처리의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헌법을 운운하며 사유재산권을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배경에 혹시 어떤 이념적 논란을 점화시켜 사익을 취하려는 의도는 부디 없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보편적 복지 문제가 국민의 삶의 질 확보가 아니라 정치공학적인 좌우 논쟁으로 오용된 적은 여러번 있다. 보수정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무상보육,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정치적 ‘퍼포먼스’를 통해 이른바 보수의 아이콘이 되고자 했던 사례들을 우리는 선명히 기억한다.

 

보편적 복지와 보육 공공성을 둘러싼 논쟁은 때때로 이념 대립 양상으로 번진다. ⓒ좌: 연합뉴스, 우: 오마이뉴스

보편적 복지와 보육 공공성을 둘러싼 논쟁은 때때로 이념 대립으로 번진다. ⓒ좌: 연합뉴스, 우: 오마이뉴스

 

보육 공공성, 양육비용 경감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의 보육정책은 2004년 이후 획기적으로 확대됐다. 부모의 소득기준에 따라 차등 보육료를 지원하는 데서 출발하여 무상보육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재정 확대와 보육 서비스 접근성 지표는 급속히 상승했다. OECD에서 발표하는 영유아 돌봄 및 교육을 위한 재정 지출이나 1인당 지원금 지표에서 한국은 이제 상위권 국가가 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가지 모순이 숨어 있다. 보육료 지원을 시작한 것은 노무현정부였지만 실제 무상보육은 박근혜정부 때 실시됐다. 2012년 대선에서는 보수 진보를 떠나 거의 모든 후보가 보육료 지원 확대와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그런데 이때 무상보육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부모의 양육비용 절감’이었다. 즉 유권자인 부모들의 지갑에서 나가는 양육비용을 줄여주겠다는 직접적 선거 마케팅에서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단기간에 보육 서비스를 확대하다보니 민간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누리과정은 가격 상한 또는 가격인상률 제한이 적용되는 비영리 서비스이지만, 실상 대다수의 서비스 제공자들은 영리추구형 행위자들, 바로 사립유치원과 민간 어린이집이다. 국공립 유치원,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자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예산 부담, 이익집단의 반대를 이유로 늘 지체됐다. 그러니 지표는 개선됐지만 실제 서비스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낮으며, 안전사고와 아동인권 문제 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양육비용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는 보육의 공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우선 국공립 유치원이 지금보다 적어도 두배 이상 확보돼야 한다. 공립과 사립의 장단점, 다양한 서비스와 부모의 선택권은 그 이후에 따져도 늦지 않다. 건물과 시설 이외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 즉 돌봄의 공공성을 논의하고 조정하며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실제 교육을 담당하는 유치원 교사와 보육교사의 목소리, 이들의 노동권과 정당한 대우도 확보돼야 하며, 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는 시설 단위의 운영위원회나 지역사회 논의의 장들이 지금보다 촘촘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놀 권리’가 가져올 미래가치

 

마지막으로, 돌봄의 직접적 수혜자이지만 아직은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영유아의 입장이 적절하게 대표되고 있는지, 미래의 시민들이 행복한 아동기를 보내고 있는지 다시금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교육경쟁 풍토는 영유아기까지 사교육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한 아동기가 되려면 사교육 투자에 앞서 적절한 돌봄을 받으며 안전하게 성장할 권리, 무엇보다 ‘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돌봄의 공공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재원 확보, 유보통합 등 이해관계 조정, 교사 양성과 처우개선, 일하는 부모를 위한 서비스 개선, 아동인구 감소에 대한 대처 등 많은 숙제들이 남아 있지만, 그 미래가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단지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점차 심화되는 사회양극화, 그리고 실업이 고립을, 고립이 혐오를 키우는 악순환을 풀기 위해 돌봄 공공성은 모든 시민에게 ‘희망 찬 출발선’을 보장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복지국가 연구의 거장 에스핑 안데르센이 말했듯이, “모든 훌륭한 개혁은 아이들로부터 시작된다.”

 

황정미 / 서울대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2018.10.3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