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 『전복과 반전의 순간』

성기완

강헌, 담(談)-설(說)-론(論)
-강헌 『전복과 반전의 순간』

 

 

jeonbok한국의 비평사는 1990년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90년대 이전을 구비평의 시대, 그 이후를 신비평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무슨 차이가 있느냐. 간단하다. 대중문화 장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큰 구분점이다. 구비평은 전통적으로 제도화된 예술장르만을 글쓰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완전히 그 안에서만 놀았다. 반면 신비평은 그 틀을 부수었다. 대중의 영역으로 나왔고, 일상의 순간으로 내려왔다. 그때부터 비평은 예전보다 천해졌다. ‘어른들’은 달가워하지 않았고, ‘아이들’은 그 천함을 즐겼고 중요시했다. 그러면서 비평은 한편으로는 쉬워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복잡해졌다. 어른들은 신비평의 복잡계를 다룰 줄 몰랐다. 심각한 이론은 알았으나 그것과 대중적인 코드들이 접합하면서 만들어내는 고차방정식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신비평세대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86세대와 대체로 겹친다. 1987년 이후부터 대중문화는 그 세대에게 절박하고도 중요한 화두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들은 대중문화에 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고, 일제히 글을 썼다. 그 대열의 선봉에 선 이들 중에 음악평론가 강헌(姜憲)이 있다. 강헌은 이 계열의 ‘잡글’(기존의 시각에서 보자면)이 심각한 평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논객에 속했다. 어른들이 ‘고전’을 붙들었다면 아이들은 ‘지금’을 붙들었다. 어른들이 과거형의 명화(名畫)를 음미했다면 아이들은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을 기술했다. 맑스가 브뤼메르 18일의 한복판에서 그 순간의 역사를 써내려간 것과 비슷하게, 아이들은 화려한 90년대적 문화지도가 탄생하는 순간을 얼얼한 눈으로 생중계했다. 신비평세대는 80년대의 치열했던 삶의 이론들을 큰 그림으로는 연장시키면서 동시에 반성했다. 단순한 이분법에는 물음표를 달았다. 예컨대 록음악은 80년대 내내, 강헌의 표현처럼 “세대혁명의 진보적인 음악은커녕 ‘미 제국주의 문화’로 남”(123면)아 있었지만, 신비평세대는 록음악의 맥락 안에 있는 여러 결을 세심하고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 대목이 중요하다. ‘잡스러운’ 것 안에 들어 있는 복잡한 ‘결’을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을 진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작업을 통해 ‘잡스러운’ 것과 ‘고급진’ 것의 구분이 무너진다.

 

최근에 출간된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돌베개 2015)은, 잡스러움과 고급진 것 모두를 특유의 박학다식한 장광설로 설파한 음악평론집이다. ‘벙커1’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글로 읽히기보다는 소리꾼의 소리처럼 ‘들린다’. 강헌은 잡스러운 팝음악의 역사에는 섬세한 미학적 맥락을, 고급진 서양 고전음악에는 잡스러운 일상의 맥락을 부여한다.

 

책의 제목에도 ‘순간’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듯이, 강헌은 여전히 ‘순간’을 중요시한다. 1990년대 이후의 대중문화 비평가들은 숙명적으로 ‘순간’을 다뤄왔다. ‘순간’은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어떤 ‘문화적 대상’ 또는 ‘상품’이 출시되는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점을 의미화하는 문화적 발화(enonciation)의 지점이다. 강헌의 문장들은 그 둘의 맥락을 순간적으로, 그러나 동시에 역사적으로 직조해낸다.

 

책에서 강헌은 서양 고전음악, 20세기의 대중음악, 해방 이전과 이후의 한국음악을 골고루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몇개의 순간이 이정표처럼 제시된다. 1917년, 1955년, 1969년, 1750년, 1926년, 1935년 등. 강헌은 자신만의 관점에서 그 순간이 가지는 문화적 전복성을 바라본다. 그의 말대로, “그런 커다란 역사적 흐름 속에서, 어찌 보면 협소하다면 협소하달 수 있는 문화의 역사, 그 (…) 안에서도 더 들어가서 ‘음악 문화의 역사’를 살펴보려고 한다”(279~80면).

 

강헌은 해녀처럼 역사를 물질한다. 통기타 음악과 3선개헌, 반민특위, 흑인노예의 절규와 18세기 유럽의 쌀롱이 거의 한 호흡 안에서 탐험된다. 더 깊은 물로 자맥질하는 대목도 있고 얕은 물에서 관찰하는 경우도 있다. 강헌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여러 ‘순간들’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문화적 전복, 해삼 등을 따온다. 1969년의 어느날에 들어갔다 나와서는 ‘청년문화’를, 1935년으로 잠수해 들어가서는 친일문화의 청산이라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역사적 과업을 건져올린다.

 

복잡한 ‘지금’을 구성하는 어떤 측면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시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록큰롤의 등장은 “10대라는 또 하나의 마이너리티들이 문화의 주인이 된 사건”(85면)이기도 하지만 10대의 소비 잠재력을 시장화시킨 일종의 ‘기업화’이기도 한데, 마이너리티의 맥락을 강조하다보니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된 록큰롤의 맥락은 덜 강조된다. 또 한대수에서 서태지, 청년문화에서 X세대에 이르는 긴 문화사적 과정을 종횡으로 섭렵하는 대목에서는 X세대 이후의 인디음악이라든가, 케이팝(K-pop)에 관한 언급은 빠져 있다. 그 맥락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먼 이정표에서 시작하는 또다른 역사적 추적과 그것을 받쳐줄 실증적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강헌 식으로 글을 쓰려면 이 물질에 필요한 새로운 숨을 폐에 가득 머금어야 한다.

 

강헌의 역사 속으로의 물질은 그러나 고된 노동이라기보다는 즐거운 해수욕에 가깝다. 그것이 그의 미덕이기도 하다. 싸움은 늘 풍류와 겹친다. 하긴, 모든 문화적 싸움은 풍류와 놀이의 방식으로 수행된다. 문화적 전복은 먹는 전복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먹고 노는 것만은 아니다. 그 놀이의 순간, 지금-여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한 성찰이 이루어진다. 그에게 역사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 순간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는 치열한 접전지”(278면)다.

 

이 책을 보면서 그의 글쓰기가 처음 한국의 평단에 자리매김하던 1990년대를 되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90년대에 시인으로 문단에 나왔고, ‘인디 레이블’이라는 걸 만들었고, 밴드 생활을 시작했고, 대중음악과 문화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내가 나왔을 때 강헌은 이미 당시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선배 그룹에 속해 있었다. 강헌과 작가 주인석, 시인 유하, 음악평론가 신현준, 영화평론가 허문영과 임재철, 채규진(중앙일보 기자), 장병욱(한국일보 기자) 등의 선배가 있어서 몇년 후배인 우리는 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다. 강헌 자신이 크게 공헌한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심의 철폐라는 문화사적 사건이 1996년에 있었고 그것은 중요한 계기였다. 표현의 자유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정점에 도달했던 시기였다. 그후 20년이 지났고, 우리는 퇴행의 시대를 살고 있다. 표현의 자유는 그때보다 교묘하게 제한되고 있다. 이른바 ‘대안문화’ ‘인디문화’가 등장하던 20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뚫고 나갈 지향점을 지닌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 시대의 특징이다. 확실히 뭔가를 지향한다는 것 자체가 낡은 일이 되었다. 지향하지 않되 지속 가능한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어려운 시대다. 20년 전의 글들이 필연적으로 ‘론(論)’을 지향했다면 지금의 말들은 자연스럽게 ‘담(談)’을 구성한다. ‘론’으로 규정하려 하지 말고 ‘담’으로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1990년대에 태어난 신비평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최근 들어 많은 지식인들이 팟캐스트에서 활동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론’과 ‘담’과 ‘설(說)’을 넘나드는 강헌 식 글쓰기는 이러한 시기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5년 가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성기완 / 시인, 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

2015.9.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