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남북관계와 한반도평화 문제, 연속성과 새로움
정현곤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5주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까, 남북의 확성기가 멈췄다. 확성기를 먼저 닫은 우리 측에서 사유를 설명하면서 ‘국민 안전’과 ‘한반도평화’를 같이 언급했는데, 두 단어가 묶이면서 접경지역 주민들이 겪었을 고통이 한층 생생한 실감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진정성에 힘이 실렸으니 대북 전단살포 규제에 대해서도 새 정부의 지혜로운 해법이 나올 법하다.
현재 국민들이 체감하는 한반도평화는 밑바닥 수준이다. 무엇보다 윤석열정권 내내, 특히 내란 전후에 빚은 대북 적대행동들이 문제였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핵보유국)라 말한 것은 또다른 차원에서 스트레스를 준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한 생존 정책을 접은 마당에 핵무기를 포기할 리 없다고 생각하니, 평화의 길이 더욱 멀어진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보내고 군대를 파병했음을 공식 인정한 일 또한 우리가 북을 견인할 중요한 조건 하나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이제 북은 중국에 더해 러시아를 확보하며 생존의 길을 찾을 것이고 우리에게 기댈 일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2023년에 북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명시했던 사실까지 환기하면 평화의 길이 더 요원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이 정체된 감각, 즉 그렇게 노력을 해왔는데도 여전히 처음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남북화해협력 정책을 처음 시작한 노태우정부야 군사정권의 뒤끝에서 새롭게 교류 정책을 내걸었던 것이니 ‘처음’ 같은 상황이 맞다. 그러면 다음 정부, 그다음 정부는 뭔가 쌓여가는 게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대중정부 들어서도 그렇고, 김대중정부를 이은 노무현정부에서조차 쉽지 않았다. 노무현정부 때는 북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이라는 2차 핵위기가 터져나왔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할 당시의 한반도 역시 많은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사적 위험상태에 있었다. 이는 한반도평화 문제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북한과 미국의 적대적 대결이라는 현실과 그에 동의하는 인식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 정부가 잘 만들어놓은 것을 미국이 망쳤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인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2000년 6월 15일로부터 4개월여 후인 10월 12일에 북한과 미국은, 북의 미사일 동결과 북미의 경제협력을 교환하는 ‘북미공동코뮤니케’를 발표한다. 이 최초의 북미간 정상급 문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인 조명록이 클린턴 대통령을 방문하여 만들었고 여기에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평화보장체제를 위한 4자회담까지 언급되어 있다. 변화의 기초를 닦은 미국의 주역은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 대북정책조정관이다. 그는 클린턴 1기 국방장관으로 북한 영변지역에 대한 폭격까지 주장한 강경파였지만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공감하게 된다. 여러차례의 만남을 통해 페리에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방향과 실행전략을 설명한 이는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이다. 그가 입안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 전략’은 한미간 공동방향이 될 수 있었다. 우리 정부가 방향을 잡고 실행계획까지 짜서 미국과 협의하고 동의를 이끌어내는 이 패턴은 노무현정부, 문재인정부 때도 작동했고 어느정도 실현되었다. 북미간의 적대적 대립이라는 구조적 한계가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로 조정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한반도 긴장상태의 반복적 돌출에는 늘 우리 측 보수정부의 무능력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그래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이다. 이제 다시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섰으니 좀더 진화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한미 공동전략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여기까지가 우리 생각이라면 북은 어땠을까?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민간교류가 활발해진 현장에서 가장 선명했던 기억은 ‘우리민족끼리 이념’이라는 표현이다. 우리는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이 어색한 표현을 북은 남북공동문서에 담으려 애썼다. 어려울 것도 없는 이 논쟁은 며칠간 이어졌다. 논의는 늘 공동선언 1항의 표현 그대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정신’으로 마무리된다. 이 논쟁은 매번 반복되었고 결과도 동일했지만 북은 이 표현을 북 내부에 공식화했다. ‘우리민족끼리 이념’은 남북관계에서의 주도성을 의식한 표현으로서 남북교류 시기 북의 통치이념이었던 셈이다.
사실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많이 토론된 부분은 6·15공동선언 2항이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하였다’는 부분. 여기서 체제인정의 의미를 담았기에 교류협력이 시작된 것인데, 정작 북의 관심은 나아가야 할 방향보다 지금 지켜야 할 자신의 체제안정에 맞춰져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이후에도 북이 체제수호를 위해 남겨둔 비장의 카드는 핵무기 개발이었다. 그렇지만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핵개발 중단, 활발한 남북교류하에서도 자신을 지켜낼 체제수호 방법론이 상당한 시간 동안 북의 관심사였다는 점도 같이 지적해두는 것이 좋겠다. 지금은 북에서 통치이념으로서의 ‘우리민족끼리 이념’은 사라졌다.
지금 필요한 일은 9·19군사합의의 복원이다. 대북 확성기 활동이 9·19군사합의 전면 중지를 결정한 윤석열정부의 사실상의 군사조치였던 만큼 그 활동에 대한 상호 중지는 합의 복원의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다. 9·19군사합의는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의 무력충돌 방지 대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러한 조치들의 본질은 상호 위협 의사가 없다는 신뢰 여부이다. 대북 전단은 실질적으로 적대감을 표현하기에 위협의 구성요소가 되는 것이다. 9·19군사합의에는 동·서해안의 철도·도로 협력, 수산협력 등 다양한 협력사업들에 대한 군사보장대책도 포함하고 있다. 협력사업 문제는 바뀐 환경을 고려하여 조정해야 할 것이나 이 틀에서 다룰 주제는 아니다. 지금은 윤석열정권이 망가뜨린 평화상태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좋겠다. 여기서 북에게 주는 메시지는 새로운 정부의 평화 의지다. 북으로서도 ‘국가와 국가의 관계’인 남북관계를 굳이 적대적 상태로 계속 유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다음 단계는 정상회담 없이는 갈 수 없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 규정을 버리고 별도의 국가로서 만나게 되는 첫 자리일 것이다. 그 만남의 전제는 평화가 되겠지만 9·19군사합의에 기초할 수 있다고 본다. 두 국가 사이의 관계이므로 무엇을 협력해서 서로의 경제와 민생에 이익이 될지 확인이 필요하다. 북이 읽은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이고 그것이 러시아와 밀착한 이유임은 분명하고 이익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으로서는 향후 미국과의 접촉 대비 차원에서나 활용 가능한 자원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을 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한반도 신경제 구상 종합계획’을 받아본 바 있다. 에너지와 자원축의 환동해권, 물류와 산업 특화지역인 환서해권, 그리고 접경지역이 주 내용이다. 특히 동해권과 서해권에는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협력 구상이 들어가 있다. 동기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우리로서는 이재명정부가 주력하는 재생에너지가 추가되면 첫 만남에서 다룰 소재는 충분해 보인다. 물론 이산가족상봉은 무조건 포함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국가로 규정한 남북관계에서 북이 느끼는 체제 위협인식은 많이 경감되었을 것이지만 협력의 미래구상이 서로 맞아야 만남은 성사될 것이다. 6·15공동선언의 2항과 같은 관계형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국가연합의 낮은 단계라면 통일을 뺀 협력의 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이 국가연합 방향은 향후 6자회담 같은 데서 다룰 동북아 및 한반도 평화체제와 잘 연동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 통일 외교팀의 건투를 빈다.
정현곤 / 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2025.6.17.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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