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창작과 비평 소개_old
참다운 민족문학의 산실 『창작과비평』
창간 직후 방영웅의 「분례기」로부터 황석영의 「객지」「한씨연대기」, 이문구의「관촌수필」등을 실어 화제를 일으켰고, 복간 이후로도 김영현 방현석 김하기 김한수 공지영 공선옥 등 신예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민족문학의 산실이 되었으며, 최근에는 박범신 신경숙 윤영수 한창훈 등 주목받는 작가들과 함께 문학적 깊이와 폭을 더욱 심화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또한 신경림 고은 민영 조태일 김지하 이성부 강은교 정희성 이시영 김준태 김남주 김용택 백무산 박노해 김정환 최영미 등의 시편들이 우리 시단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창조적인 논의의 산실 『창작과비평』
우리 학계의 쟁점이 될 만한 시의성 있는 주제들을 논문 좌담 대담 등을 통해 진담함으로써 모범적인 토론문화를 이끌어내며 학문의 발전에 기여해 왔습니다. 분단시대 역사학의 현재성을 진단한 강만길 교수의 글들과 리영희 교수의 사회평론, 고 박현채 교수의 경제평론 들은 창비의 민족문학론 전개와도 밀접한 관련을 가졌으며, 복간 이후 ‘한국자본주의 논쟁’ ‘한국사회 계급론의 쟁점’ 분단체제론’ ‘새로운 동아시아 연대의 모색’ ‘식민지시대의 성격 규명을 통한 근대성 고찰’ 등의 참신하고 다양한 기획으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들과의 대화의 장 『창작과비평』
브루스 커밍스, 이매뉴얼 월러스틴, 프레드릭 제임슨, 와다 하루끼, 페리 앤더슨, 에드워드 싸이드, 보리스 까갈리쯔끼, 데이비드 하비 등 쟁쟁한 세계 석학자들과의 대담 혹은 그들의 기고논문 들을 통해, 우리의 문제를 세계적인 시각으로 보는 한편 세계의 문제를 실감하면서 우리의 논의를 심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왔습니다. 특히 1996년에는 창간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여 지구화시대의 새로운 문명적 전망을 모색하는 한편 진보적 국제 학술교류의 전범을 창출하였습니다.
창간 반세기 한반도 지성의 산 역사 『창작과비평』
2006년 창간 40주년을 맞아 ‘운동성의 회복’을 천명하며 한국사회의 개혁과제와 한반도 차원의 분단체제극복,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연대의 발전과 나아가 세계체제 자체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인류문명의 건설이라는 소명을 다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러 분야의 진보개혁적 지식인, 문필가, 시민운동가와 협력해 민간 싱크탱크인 (사)세교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아울러 긴급한 이슈에 대응하는 온라인 자매지 『창비주간논평』을 창간하고, 2010년 통권 150호 발간을 기념해 전자영인본(1-150호)을 제작하는 등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애써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2016년 창간 50주년를 맞아 한층 배가될 것임을 약속합니다.
계간 창작과비평 연혁
1965년
계간 『창작과비평』등록
1966년
『창작과비평』창간호(1966 겨울호) 발행
1973년
만해문학상 제정. 제1회 수상작 신경림 시집 『농무』
1974년
1974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설립
1975년
『창작과비평』여름호 판매금지됨
1980년
비상계엄하 언론통폐합 조치에 의해 여름호(56호)로 『창작과비평』폐간됨
1982년
신동엽창작기금 제정. 제1회 수혜자 소설가 이문구
1985년
부정기간행물 『창작과비평』발행
등록 없이 정기간행물을 발행했다는 이유로 출판사 등록 취소됨
‘창작과비평사’의 등록취소에 관한 범지식인 2,853명의 건의문’ 발표 등 국내외의 항의운동 일어
1986년
‘창작사’로 출판사 신규 등록
1987년
6월항쟁에 힘입어 『창비 1987』간행
1988년
계간 『창작과비평』등록, 복간(통권 59호)
1989년
『창작과비평』겨울호에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게재
이로 인해 이시영 주간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협의로 기소됨
1991년
『창작과비평』창간 25주년을 맞아 광주, 부산, 대구에서 문학강연회
서울에서 자축연. 기념 신작소설집 『우정반세기』 간행
1994년
창비신인평론상 제정(제1회 당선자 방민호)
1996년
계간 『창작과비평』창간 30주년을 맞아 국제학술대회 ‘새로운 전지구적 문명을 향하여’ 개최
1998년
통권 100호(98년 여름호) 발간을 기념하여 학술 토론회 ‘IMF시대 우리의 과제와 세기말의 문명 전환’ 개최
창비신인소설상 제정(제1회 당선자 김윤영)
1999년
백석문학상 제정(제1회 수상자 이상국 황지우)
2001년
창비신인시인상 제정(제1회 당선자 최금진)
2003년
파주출판도시로 출판사 사옥 이전
(주)창작과비평사에서 (주)창비로 회사 이름 변경
2005년
계간 『창작과비평』창간 4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
2006년
창간 40주년 기념호(2006년 봄호) 발행
인터넷 칼럼 『창비주간논평』간행 시작(5.2)
창간 40주년 기념 동아시아 국제 심포지엄 ‘동아시아의 연대와 잡지의 역할: 비판적 잡지 편집인 회의’ (6.9~10) 개최
2007년
세교연구소 공개 심포지엄 ‘한미 FTA 쟁점과 대안적 발전모델 모색’ 개최(3.7)
2008년
세교연구소 공개 심포지엄 ‘기울어진 분단체제, 대안을 만들 때다: 남북연합과 한반도 선진사회 건설’ (9.19) 개최
2009년
창비담론총서 『이중과제론』『87년체제론』『신자유주의 대안론』출간
2010년
통권 150호(2010년 겨울호) 발간, 전자영인본(1-150호) 발간
2011년
세교연구소 공개 심포지엄 ‘2013년체제를 향하여’(11.25) 개최
2012년
제4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 ‘2012년의 동아시아, 대안적 발전모델의 모색’(6.29~30) 개최
세교연구소 공개 심포지엄 ‘상생의 새 구상,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 개최(10.10)
2013년
통권 160호(2013년 여름호) 발간
세교연구소 공개 심포지엄 ‘중국 사회주의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11.15) 개최
창비를 말한다
- 창비의 역사는 한국 민주화의 역사다. 판매금지와 회수, 강제 폐간의 역경에도 창비는 굽히지 않았다. 창비가 주창한 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은 70년대 이후 한국 지식인사회를 움직인 동력이자 정신이었다.
중앙일보 - ‘창비’는 한국사회 민주화의 실천적 담론과 문학을 생산해왔고, 구비구비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전망들을 제시해왔다.
한국일보 - ‘창비’와 함께해온 이름들을 뺀다면 70·80년대 우리의 문학과 지성사는 얼마나 허술하고 참혹했을까. ‘창비’가 없었다면, 그 혹독한 시절을 살아온 이들의 정신의 서재는 또 얼마나 초라했을까. 이 끔찍한 상상만으로도 ‘창비’가 일궈온 성취는 입증된다.
경향신문 - 1966년 창간호가 서점에 깔린 뒤 『창작과비평』의 목차를 훑다가 주저없이 한권을 사들고 나왔다. 편집상의 특징도 상당히 침착·세련되어 보였지만, 문학과 사회와 역사를 하나의 유기적인 그물로 파악해 들어가는 백낙청 교수 등 생소한 필진들의 정연하고 진지한 입론이 내게는 여간 신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진섭 언론인 - 『창작과비평』이 한국 문학과 지성계에 끼친 공로와 영향은 지대하다. 우선 한용운 선생 시의 고격을 한층 드높였으며 김광섭 선생의 만년 시편들의 진가를 알아보게 했을뿐더러, 흙속에 묻혀 있던 신동엽의 시를 캐내었고, 모더니스트로만 간주되던 김수영의 시에서 치열한 동시대성을 찾아내 보여주었다. 창비는 표류하는 암울한 시대의 등대였으며 방향타였다.
황명걸 시인 - 지난 시대 『창작과비평』은 내게 하나의 교과서였다. 고난 속에서도 결코 굴절되지 않는 문학정신을 입력해주었으며 또 무엇보다도 새롭고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세상살이의 참된 이치를 일깨워주었으니 말이다.
손춘익 아동문학가 - 『창작과비평』에 실린 리영희 선생님의 글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밖을 보지 못하도록 쳐놓은 검은 장막을 걷은 느낌이랄까? 베트남전쟁을 보는 시각, 중국대륙에 대한 인식, 한·미·일 안보체제의 파악 등 대학 강의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해찬 국무총리 - 70년대만 해도 문화적으로 암흑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진 않지만 『창작과비평』을 읽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자 문화적 행위였다.
정희섭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기획위원 - 80년대 이후 일련의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나는 ‘창비’의 모든 책들을 통해 그 어려운(?) 역사, 사회, 문화적인 고민들을 해결해나갔다. 창비는 분명히 내 문학과 삶을 갈고 닦게 해준 학교였던 것이다. 입학도 없고 졸업도 없는 영원한 학교 말이다.
김용택 시인 - 이웃 학교에 최루가스가 터질 때, 명동성당에서 노동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일 때, 동료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장론 교재에 데모 안하는 것이라고 자조적인 문구를 새겨가지고 다닐 때, 나는 터벅터벅 내 방으로 돌아와서 ‘창비’ 합본호를 베개삼아 베고 한권은 가슴에 올려놓고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복을 누릴 수 있었다.
신경숙 소설가 - 『창작과비평』이 디뎌온 발자국마다 한국문학사는 우뚝한 산맥으로 행복하게 솟아올랐다. 시대와 불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 문학의 봉우리들이야말로 창비 30년사를 자랑스러운, 그리고 최상급의 경의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당당한 이유다.
김도현 소설가/전주우석대 기계·자동학과 교수 - 『창작과비평』의 계간지로서의 성격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 것인가. 이와나미 쇼뗑(岩波書店)의『세까이(世界)』『시소오(思想)』『분가꾸(文學)』를 하나로 묶은 것이라 말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분량은 적지만 세계사를 크게 파악하는 것은 한층 명료하고, 더구나 사회에 뿌리내린 자세도 더 명확하다.
타끼자와 히데끼(瀧澤秀樹) 일본 코오난대학 교수, 경제학 - 우리가 『창작과비평』만한 잡지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 지성사의 축복이다.
- 연대앞 서점 ‘오늘의 책’이 신입생들에게 주는 글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