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범죄의 책임 가리기와 역사 바로쓰기

김동춘

대법원의 울산보도연맹사건 원심판결 파기환송 건을 보면서

 

김동춘 / 성공회대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한국의 뉴라이트와 주류언론, 그리고 이 정부는 몇년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만들기 위해 정말 수고가 많다. 그런데 죄 없는 국민을 많이 죽여야 건국의 영웅이 되는 것일까? 1950년 7,8월 북한 인민군의 침략으로 대한민국이 형편없이 무너져내리던 시점에 이승만의 직접지휘하에 있던 CIC(방첩대), 헌병, 경찰 사찰과에서는 전국 수십만명의 ‘요주의(要注意)’ 인물을 불법으로 체포하여 골짜기로 끌고 가서 학살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이다. 우리 국민이 모두 알고 있는 속어 ‘골로 간다’는 말은 이 사건 이후 생겨났고, 이후 수십년간 “빨갱이는 인간취급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공안당국의 암묵적 실천도 여기서 시작되었고, 수많은 국민의 평생을 옥죄었던 연좌제도 바로 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울산보도연맹사건 판결의 반전과 재반전

 

필자는 진실화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되어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의 조사를 지휘했으며 2009년 11월 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실을 공식적으로 규명했다. 그리고 지난 6월 30일 울산지역 보도연맹사건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내려졌다. 대법원은 고등법원이 2009년 8월 18일 내린 결정, 즉 “울산 보도연맹사건 관련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요구는 시효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국가는 보상책임이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되돌려보냈다.

 

애초 이 사건에 대한 1심 법원의 판결은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즉 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시효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 규명을 결정한 날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므로 국가는 피해자 유족들에게 보상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유족들이 이미 1960년 4·19 직후 유해발굴도 했고 가해자에 대한 소송도 했기 때문에 사건 내용을 알고 있었으며, 설사 군사정권하에서는 권리주장을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민주정권 수립 이후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민사상의 손해배상청구시한인 3년이 경과하여 국가는 이들에 대해 보상을 할 책임이 없다고 1심 결정을 뒤집었다. 

 

그러나 이번에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결정을 또다시 파기하면서, 전시중 국가기관이 저지르는 위법행위는 외부에서 거의 파악하기 어려워 원고들로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으며, “이러한 집단학살사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해서는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에 원고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없었고 (…) 그동안 이 사실을 은폐해왔던 피고(국가)가 이제 와서 뒤늦게 원고들이 집단학살의 전모를 어림잡아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그 채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여 신의상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결정했다.

 

국가범죄에 의한 피해 구제할 보·배상 특별법을



즉 국가가 불법으로 사람들을 죽여놓고, 이후에도 수십년간 연좌제의 멍에로 신음해온 유족들이 이 문제를 발설하는 것조차 겁박을 하고 또 유족회 활동가들을 처벌까지 해왔는데, 이제 와서 왜 사건 직후 손해배상청구를 하지 않았느냐고 적반하장 격으로 따지면서 시효가 지났으니 당신들은 권리주장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의 판결이 상식과 현저히 거리를 둔 것이라면 대법원의 판결은 크게 환영할 만하다. 따라서 고등법원은 이 사건을 다시 심리하여 평생 한을 품고 살아온 유족들에게 비록 적은 액수라도 국가가 뒤늦게 자그마한 위로를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판결을 지켜보는 우리는 제3자로서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든다. 즉 그렇게 많은 피해자들이 일일이 자기 돈을 들여서 소송을 하고, 법원이 건 별로 판단해서 피해자에게 보상조치를 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과, 전쟁중이라고는 하나 그렇게 수십만명의 인명을 마구잡이로 학살한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자에 대한 형사적 단죄가 왜 없는가라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범죄의 피해자에게도 민사상의 채권자-채무자 관계의 규칙을 적용하고 있는데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특히 이처럼 국제법에서 통용되는 반인륜적 범죄에 해당하는 학살사건에 대해 민사상의 채권-채무관계의 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 심히 의심스럽다.

 

국가폭력에 의한 가해 사실과 피해 여부는 국가가 직접 조사해서 인정한 다음 피해자의 신청을 받아서 심사하는 것이 합당하지만, 실제로는 피해자가 법원에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고, 스스로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국가는 중요 범죄의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가 주장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겠다는 극히 오만한 태도를 갖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당시 상부의 명령에 따라 전국적으로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개인별 구제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한 것처럼 이런 중요한 집단학살사건은 법원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기 때문에 모든 피해를 일괄 구제하기 위한 별도의 보·배상 관련 특별법이 필요하다.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 폐지와 역사 바로쓰기

 

마지막으로 이승만정부하의 군 정보국, 헌병, 경찰 치안국 등 주요 권력기관이 모두 관련되어 있는 이 학살사건에 대해 당시 관련자는 거의 사망했고 공소시효도 지났기 때문에 실정법상으로 그들을 단죄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적 면죄부까지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정부 들어서 이러한 국가범죄는 완전히 묵살되어버리고 이승만의 나라세우기를 미화하거나 백선엽 전쟁영웅 만들기 등 ‘현대사 바로잡기’ 분위기가 압도하고 있는데, 이는 보도연맹 학살 피해자를 두번 죽이고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엄청난 반인륜 범죄에 대한 역사적 성찰과 국민 교육 없이 유족 개개인을 민사상으로 보상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국가가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국제인권규범을 적용해 이러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매우 환영할 만하지만, 향후 이 소송의 향방은 국가의 잘못된 공권력 집행에 대한 피해 국민의 명예회복 여부,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지 고등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되며 추가적인 법적 장치 마련, 역사 바로쓰기 작업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2011.7.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