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가 거듭나려면

명숙

명숙 /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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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이명박 대통령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을 연임시킨다는 대단한 결단을 발표했다. 평소 스타일대로 사회적으로 ‘증명된’ 어떤 평가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본인이 결정한 배경만을 고수했다. 인권위 설립 이래 처음으로 도입된 위원장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밝혀진 부도덕한 행위와 위원장으로서의 자격 미달, 반인권적 행태를 대통령은 외면했다.

 

현 위원장은 재임기간 3년 동안 국무총리실과 기무사의 민간인사찰 사건 진정 각하, MBC <pd수첩> 제작진 검찰 수사와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의견 표명 부결 등 인권 현안을 외면하고 정부에 면죄부를 주었다. 또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의견 표명에 과반수가 넘는 인권위원이 찬성했지만 이를 늦추기 위해 회의를 독단적으로 중지시키는 비민주적 운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인권위 농성을 하던 장애인의 이동권을 침해하고 단전과 난방 중단으로 건강권과 생명권까지 침해한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인권위원장이다.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여론조사에서도 83%가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겠는가!

 

현병철 연임이 보여주는 암담한 미래

 

논문 표절은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인권위원장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국가권력의 인권침해를 감시해야 하는 인권위의 수장이 청와대 출입을 자주 했다는 여당 의원의 청문회 질의와 증거는 그가 인권위의 독립성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물임을 분명하게 해준다.

 

그런데도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제기된 의혹이라도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현위원장의 임명을 재가한 것”이라고 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인권위의 업무수행이 무엇인지, 그것이 국제인권기준에 명시된 인권기구의 독립성이나 업무 수행과는 천양지차임을 말해준다. 청와대가 인권위를 일개 행정부처로 생각하고 있음을, 아니 그러한 기구로 만들려는 의도를 보여줄 뿐이다. 정부정책과 집행이 한국사회 구성원의 인권을 침해하든 말든, 인권위는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국가기구 정도로 남아 있기를 바랐고, 그 역할을 현병철씨는 잘해주었다. 그게 청와대가 현씨를 연임시킨 주요배경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권위원장 임명이 단지 이명박정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답답하게 한다. 현병철 연임반대 전국 긴급행동 소속 활동가들은 새누리당의 입장을 수차례 물었고, 심지어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캠프에 26시간을 머물며 박근혜 후보의 입장을 물었지만 끝끝내 공식적 답변을 받지 못했다. 다만 박근혜 측근 몇몇이 현병철 연임반대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현병철 연임에 찬성하는 측의 발언도 나오는 등 오락가락했다. 애매한 입장을 취하던 새누리당은 청와대 발표에 대해 “아쉽지만, 현병철 위원장이 인권수호에 매진해 비판적 여론을 불식시키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그동안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던 것에 비해 신속하게 현병철 연임을 기정사실화했다. 이는 새누리당의 태도가 대선 표를 의식한 정치적 쇼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에 대해 수수방관한 새누리당의 태도는 국민들의 정치적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새누리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인권위의 독립성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또한 이런 정도로 인권위와 인권위원장에 대한 태도를 보이는 정당이라면 인권관과 도덕관이 바닥에 있을 건 뻔하지 않으냐는 말이다. 2013년에는 적어도 ‘인권에 의한’ 정치는 아닐지라도 인권기구와 인권에 대한 상식적 기준을 가진 집단과 사람이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이것이 쌍용차 22명의 생떼 같은 목숨을 스스로 저버리게 만든 비정한 사회를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대안은 인권위원장 인선절차 만들기

 

연임 강행 발표 다음날,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필자에게 현병철 말고 대안이 없지 않으냐고 물었다. 필자는 인권위법 5조에 명시된 ‘인권에 관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권력의 의중에 따를 사람을 찾다보니 없는 게 아니겠냐고 답변했다. 대안부재론은 변명일 뿐이다. 인사가 만사는 아니지만 그 자리에 적격한 인물을 임명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한 기본을 무시하고, 청문회를 실시한 국회가 적격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2001년 인권위가 설립된 이래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 인선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끊임없이 문제제기했다. 현행 인권위법에는 ‘국회 4인, 대통령 4인, 대법원장 3인’으로 임명권자만 있고 인선절차가 없다. 국제인권기준인 국가인권기구 지위에 관한 원칙(파리원칙)에서 권고하는 인권위의 다원성과 다양성을 확보하는 투명한 인선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대안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참여로 이루어진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서 후보를 2~3배 추천해 그중에서 인권위원을 임명한다면, 최소한 현병철씨 같은 무자격자가 임명되지는 않을 것이며 그동안 끊임없이 문제제기 되었던 법조인 중심의 인권위 구성에도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제도의 공백을 악용하는 인사권자와 권력자를 최소한 제어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한 때이다.

 

2012.8.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