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두번 죽는 사람들

이창훈

이창훈 /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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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일부터 지금까지,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으로 실형을 받은 전창일 등 16인과 직계가족 중 이미 고인이 된 7인을 제외한 가족 80명은 공포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공포를 안긴 곳은 다름 아닌 39년 전 이 사건을 조작한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이다.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인혁당재건위사건 사형수 8인에게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만 해도 과거의 악몽은 가시는 듯했다. 이어 진행된 관련자(실형을 받고 1982년 12월까지 8년간의 옥고를 치룬 분들) 16인에게도 무죄판결이 선고됐다. 먼저 시작한 사형수 8인의 가족들이 낸 국가배상판결도 승소했다. 그리고 관련자 16인의 가족들이 낸 국가배상소송이 이어졌다. 여기까지가 지난 참여정부 시절의 내용이다.

 

40년 만의 명예회복, 그러나……

 

하지만 MB정부에서 진행된 16인의 국가배상소송은 양상이 달랐다. 피고 대한민국이 항소를 시작한 것이다. 2심에서도 법원은 가족들의 손을 들어줬고, 배상금의 65%가 가집행되었다. 이때만 해도 지금의 악몽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관련자와 가족들이 받은 배상금은 우선 수십년 동안 쌓인 빚을 갚는 데 쓰였다. 아울러 그동안 인혁당사건을 위해 노력해준 시민사회단체들과 신세진 이들에게 보은하는 뜻으로 적잖은 후원과 사례를 보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중 일부가 필자가 일하고 있는 4·9통일평화재단에도 들어왔다.

 

이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2011년 1월 27일, 대법원은 배상금의 이자산정 기준일을 불법행위 종료일로 따진 앞선 판결과 달리 민사소송 항소심 변론 종결일로 바꿔버린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이유에서다. 아니 과거사 사건이 무슨 자동차보험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감가상각이라도 됐다는 뜻인가? 게다가 법원은 판례를 바꾸기 위해서는 전원합의체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는 법원조직법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적용한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정치재판이었다. 당시 MB정부는 4대강사업에 22조원이나 쏟아붓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사 사건의 배상에는 인색했다. 과다배상이라는 MB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인 일부 ‘정치재판관’들이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억지 표현을 써가며 ‘이자 없는 배상’이라는 전례 없는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이다. 과거사를 바로세우는 일보다 4대강사업이 더 중요한 정부였던 것이다.

 

되살아나는 ‘정치살인’의 악몽

 

우리는 38년 전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가지고 ‘사법살인’이라 비난했지만, 형식적 재판에 의한 ‘정치살인’이라 표현하는 것이 옳다. 사법부는 장기집권을 꿈꾸던 정권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을 뿐이다. 그 살인을 허가해준 정치재판이 다시 재현된 것이다. 이번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낸 법무부와 국정원도 정치적인 판단을 가지고 진행했다. 2011년 12월 최고장 한장 달랑 보낸 후,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 때까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새 정부가 구성되자 갑자기 환수재판을 걸어온 것이다. 게다가 소송주체인 국정원은 대선개입 의혹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였다.

 

가족들은 가족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우선 국민대통합위원회 한광옥 위원장부터 찾아갔다. 법무부장관 면담신청도 냈다. 국회 법사위 위원들에게도 찾아가 호소했다. 실제 10월 14일에 열린 법원 국정감사에서는 법사위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서영교 의원은 반환금 외에도 이자까지 붙여 소송을 걸어온 것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은 가지급을 받고 1년 6개월이나 지난 뒤이고, 피해자들은 반환할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경제적,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있다. 이는 악덕 사채업자의 행태와 다를 것이 없다”며 질타했다. 이석춘 의원도 “법원이 그동안 유지해온 손해배상 산정원칙을 유독 과거사 재심사건에만 예외를 둔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대법원의 판결이 부당하다는 이유를 들이대자, 재판부는 처음에는 소장 접수 후 첫 재판에서 선고까지 하겠다던 입장을 바꿔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국가도 책임이 있으니 환수금의 이분의 일만을 받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법무부와 국정원이 이의신청을 하면서 판결은 전액 환수로 결정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청산이 필요하다

 

지난 2007년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 무죄판결이 처음으로 나던 날, 그날 사형수의 부인들은 목 놓아 울었다. 기뻐서 울었을까? 아니다. 37년 전 죄 없는 남편을 죽였다고 주장했지만 한마디도 들어주지 않다가 이제 와 미안하다며 배상금을 준다니, “돈으로 죽은 목숨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느냐”며 통곡한 것이다.

 

금전보상으로는 지난 군사독재정권에서 자행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절대 치유할 수 없다. 과거사 청산 운동의 취지는 ‘과거 국가의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폭력에 의해 자행된 일들의 진상을 규명하여 국민통합을 이뤄내고,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민주국가를 수립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만 배불리고 자연까지 파괴한 4대강사업을 주도한 MB정부에서나, 독재자 박정희의 후광으로 당선된 박근혜정부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은 돈보다도 사회적인 명예회복을 원하고 있다.

 

2013.11.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