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 FTA정책의 재조명

김양희

김양희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양희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의 도산으로 촉발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아시아에 가한 충격은 구미 선진국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단적으로, 2009년 1월말 시점에서 세계 금융기관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입은 손실은 총 7,996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 가운데 아시아지역 내 금융기관의 손실은 3.9%(311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즉 아시아의 금융부문의 피해는 그다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다.

 

1998년의 외환위기와 달리 이번 위기의 진원지가 역외국의 금융부문이었음에도, 수출시장의 역외 의존성과 높은 연동성으로 인해 엉뚱하게도 동아시아의 실물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2008년 일본, 한국, 중국의 동아시아 역외 수출비중은 각각 58.1%, 55.9%, 65.5%로 역외수출 의존도가 높다. 그런데 동아시아 10개국의 수출과 세계경기의 밀접성을 말해주는 연동성지표는 0.529로서, 세계 평균(0.476)을 상회한다. 특히 일본(0.572)과 한국(0.567)이 필리핀(0.578) 다음으로 높고 중국(0.491)도 세계 평균을 웃돈다(미즈호종합연구소, 2009.4.6). 그 한복판에 한국과 일본이 있다.

 

세계금융위기와 한국, 일본의 상반된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장이 극심했던 2008년 4/4분기에 한국의 GDP는 수출과 수입이 각기 14.2%, 15.7% 줄어든 탓에 5.1%나 감소했다. 그런데 시장에서 안전자산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원화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2008년 8월 달러당 1,046.1원이던 것이 2009년 5월에는 1,449.6원을 기록, 동 기간에 무려 38.6%나 상승했다. 이러한 환율효과는 역설적으로 한국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금융위기를 빨리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일본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수출급감이라는 양상으로 표출되어 2008년 4/4분기 GDP가 3.2% 감소하였고 극심한 환율변동을 겪었으나, 그 방향은 한국과 달리 가파른 엔고(円高)였다. 2008년 8월 109.4엔이던 엔/달러 환율이 2009년 12월에 89.3엔에까지 이르자 수출은 가파르게 감소했고 그로 인해 일본경제는 100년 만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일본은 GDP대비 수출비중이 15% 전후로 그 비중이 40%를 넘는 우리보다 수출의존도가 훨씬 낮은데도 수출감소의 파장이 컸던 것은 장기불황 이후 일본경제의 구조변화에 기인한다.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일본 기업은 비정규직 채용과 임금억제 전략을 택했고 이는 임노동자의 구매력 저하에 따른 내수시장 정체라는 부메랑으로 기업에 돌아왔다. 열악한 재정과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한 고령층의 소비기피도 내수정체에 한몫했다. 이에 일본 기업은 수출증대로 응수하고자 했고 이는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고용불안과 임금상승 억제를 부추겨, 이것이 또 내수 부진을 야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수출과 내수확대 정책의 한계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본의 이러한 현실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비정규직 비중은 일본보다 높고,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한국이 2000년에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에 달하는 ‘고령화사회’에 들어선 이래, ‘고령사회(고령화율 14%)’에 이르기까지 18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일본이 24년 걸려 다다른 과정을 말이다. 더욱이 일본이 12년 걸려 진입한 ‘초고령사회’에 우리는 불과 8년 만에 도달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혹자는 그래도 수출이 살 길이라고 한다. 그렇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표출된 역외시장에의 의존, 환율의 변동성을 더이상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인데 이를 일국 차원에서 해소하기도 어렵다. 복잡다기한 이해관계에 얽혀 합의 도출이 어려운 WTO 등의 다자체제에 기대기도 녹록치 않다. 일각에서는 내수확대의 중요성을 제기하나 고령화로 그 한계도 분명하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바랄 나위 없겠으나 아직 요원하다.

 

이에 유사한 현안을 안고 있는 동아시아 역내국이 상호 내수시장을 지역차원으로 확대하여 정책공조를 상시화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역거버넌스를 구축한다면, 이는 그 진원지가 어디든 금융위기 방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점차 높아지는 구매력과 풍부한 노동력을 지닌 동아시아의 발전 잠재력을 감안할 때 이를 역내 구성원 모두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내재화하기 위한 역내국간 경제협력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바로 그 길로 향한 여정에서 유럽통합의 시발점이 그랬듯이 FTA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와 유사한 현안에 직면해 있는 일본이 아시아 중시 FTA정책을 구사하고 있으며, 지난 6월에 공표된 ‘신성장전략’이 아시아의 활력 활용을 중시한다. 한때 탈아입구를 표방했던 일본이 아시아에서 미래를 모색하기에 이른 것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FTA정책의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FTA정책은 자유화 효과 극대화를 위해 거대선진 경제권과 포괄적(상품무역뿐 아니라 투자와 써비스시장 개방도 포함하며 무역규범과 다양한 정책조율도 망라)이고 높은 수준(고강도 개방)의 FTA를 추진하는 것을 중핵으로 한다. 그 정점에 위치하는 것이 한미FTA로서, 우리의 FTA정책은 시장개방을 통한 안정적인 수출시장 확보를 중시하는 통상정책적 맥락이 강하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에 비추어 한국의 역내 FTA정책을 재조명해보자. 역내에는 구미 선진국같이 1차산업에서 써비스산업에 이르기까지 고루 발달한 나라가 거의 없어 높은 수준의 FTA는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역외 수출시장의 안정적 확보와 차별화되는 역내국과의 FTA정책으로의 궤도수정이다. 이는 시장개방에서 정책공조로 중심축을 전환한 지역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최근 급부상한 한중FTA 논의와 장기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의 FTA 논의도 이러한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특수성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지역통합의 미래상과 부합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단, 국가·지역간 소득격차가 크며 여전히 냉전과 대립의 근대사에 갇혀 있고 시민사회의 발전이 더딘 이 지역의 현실을 감안한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구상이 절실하다. 즉 지역경제통합이 패자(覇者)의 승자독식 혹은 일국 신자유주의의 외연 확대에 불과하거나 갈등을 키우는 것이 되어선 안된다. 지역경제통합은 역내국 모두의 공동번영과 평화를 위한 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며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의 진전을 위해서는 역내 시민사회와 학계가 다양한 형태로 지역통합 논의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매우 긴요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2010.7.14ⓒ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