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소태산 평전: 솥에서 난 성자』

박소정

종교 밖의 사람이 쓰는 종교 지도자의 이야기
–김형수 『소태산 평전: 솥에서 난 성자』, 문학동네 2016

 

 

hwhehj프롤로그를 읽고 나자 감히 서평을 맡겠다고 덜컥 승낙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처음 원고 의뢰가 왔을 때, 30여년 전 문예부 시절 『창작과비평』을 고이고이 돌려 읽던 오랜 독자로서의 반가움도 발동했고 한편으로 멀리까지 청탁이 온 것은 아마 이쪽에서 들려줄 만한 이야기도 있는가보다 생각하며 이참에 소태산(少太山)의 일대기를 읽어두자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책을 받아보니 관련 지식을 엮어놓은 흔한 평전이 아니었고 원고지 몇매로 요약하여 논평할 수 있는 글은 더더욱 아니었다.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라면서 썼다”(453면)는 저자 김형수(金炯洙)의 말에 의지하여 소설을 읽듯이 한차례 읽고, 소태산의 주변과 시대를 짐작해가며 평전을 대하듯 다시 읽고, 서평을 위해 또 뒤적여 읽고 나서야 비로소 군더더기 말이라도 몇마디 덧붙일 엄두가 났다. 

 

평전의 주인공 소태산은 원불교 창시자다. 1891년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이룬 1916년부터 1943년까지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더구나 “민족 수난의 절정기”(57면)에 가르침을 폈음에도 원불교는 오늘날 한국 4대 종교 안에 손꼽을 만큼 성공한 토착종교가 되었다. 수운(水雲, 최제우)이 동학을 창도한 이래 뿌리가 땅속에서 뻗어나가듯 생겨난 새로운 종교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졌으며 가장 바람직한 성장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전체 인구수가 1600만에 불과했던 일제강점기에 신도 수가 300만을 헤아렸다던 천도교의 오늘날 낮은 인지도와 비교해본다면 1917년 불과 8명의 제자를 불러 조직한 조합(237면)으로 세상에 몸을 드러낸 원불교는 놀라울 만큼 꾸준하고도 견실하게 발전해왔다. 

 

오늘날 원불교가 이처럼 몸을 묵직하게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흔히들 원불교의 성공 원인을 학교설립과 사회사업 등으로 설명하곤 하지만 저자는 원불교의 바깥을 관찰하는 대신 소태산의 이면을 그윽하게 들여다본다. 이는 저자가 구체(具體)를 실천하는 사상가의 일생을 그리기 위해서는 “사유의 족보를 뒤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57면)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료들을 설렁설렁 건너뛴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에게는 “언표(言表)된 사실 뒤에 숨은 비의(秘意)를 쉽게 간과하는 습성”(56면)이 있고 그러다보니 멀찌감치 지켜보아서는 “자세한 내막을 놓친 채 안이한 의역을 하기가 십상”(42면)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 책은 소태산의 이적(異跡)이나 위대함을 부각하는 대신 평범한 성자로서의 삶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간다. 

 

이 책은 소태산의 이름이 박성삼의 아들 박진섭에서 처화로, 당신님으로, 중빈으로, 그리고 또 십산으로, 다시 해중산이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별호에 이르기까지 거듭해서 바뀌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때로는 주어지고 혹은 스스로 택한 이름들을 따라가면서 소태산을 낳은 풍경 및 그의 깨달음과 실천의 고비들이 펼쳐진다. 1919년 3·1만세운동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4월 26일부터 아홉 단원과 함께 백일기도를 올리고 나서 자결을 약속하는 대목(289~94면)은 그래서 절묘하다. 자칫하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신흥종교의 소동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었을 이 사건은 이 책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온 사람에게는 소태산의 첫 9인 제자들이 어떻게 해서 “다시 태어난 이름을 들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는지(294면)를 손에 잡힐 듯 실감하게 만드는 장면으로 되살아난다. 이를 통해 “수운의 동학이 낳은 제자들이”(288면) 일으킨 만세운동에 대한 소태산의 반응에 대해서도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라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대신, 의암(義菴, 손병희)에게는 의암의 일이 있었다면 소태산에게는 소태산의 일이 있었음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평범함이 특징이라는 것은 대단한 설득력이 있다. 저자는 평범한 성자의 이야기를 그보다 더욱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여인네, 하지만 성자를 처음으로 발견한 바랭이네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쯤 되면 이적에 관한 이야기는 깨달음의 초기에나 보여주는 사소한 삽화가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평범한 이들 모두가 신성한 건 아닐 것이다. 소태산의 평범함이 비범함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내적 자아의 신성에 대한 자각이 전부가 아니라 자각 이후의 삶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써 소태산은 “‘사이비 교주’의 활극시대”(241면)에 기복신앙에 안주하는 그렇고 그런 신흥교주로 행세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근대 사업가로 전락”(249면)하지도 않았으며 “후천개벽의 지도자”(251면)로서 평범한 이들이 “개인과 개인의 소통이 열리는 광대한 네트워크”(252면)를 꿈꾸고 실현할 수 있는 길을 내었던 것이다. 

 

신화화된 아우라에 현혹되지 않고 육안으로 살피려 했기 때문일까? 저자는 어떻게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개 촌부에게서 그처럼 온전한 구도의 꿈이 싹틀 수 있었는지를 거듭 질문하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영광 일대의 지정학적 요인”(17면)이라는 추측을 내놓는다. 처음 읽을 때는 엉뚱해 보였던 이러한 발상은 점차 소태산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축으로 발전해갔다. 인간 문화를 “자연과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형성”(73면)되는 것으로 깊숙이 비추어봄으로써, 소태산의 삶에서 감지되는 “사유의 육체성”(209면)이 그가 태어난 지역의 풍토와 무관할 수 없음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평자는 토착사상사 내에서도 가장 토착화된 정체성을 추구했던 이가 어쩌면 소태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소태산이 고집했던 평범함이 다음 성자가 될 수 있는 이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치워버렸고(58~59면), 그러한 의미에서 성자란 우리가 부대끼며 사는 자연과 문화 생태에 뿌리박은 존재일 수밖에 없게 된다. 

 

저자는 소태산과 같은 문화권에 살았던 경험이 소태산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평자가 친근함을 느끼는 문화권이기도 하다. 평자가 주로 자라난 곳은 서울 변두리지만 어머니의 고향이 이리이고 아버지의 고향이 부산이기 때문에 전라도와 경상도에 그리움을 반반 걸쳐놓고 있다. 특히 어릴 적 방학 때마다 이리에 내려가곤 했기 때문에 소태산을 낳은 풍경을 꼭 알 것만 같다. 하지만 저자는 다만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거나 그의 53년 생애만을 추적하는 대신, 소태산의 삶을 수운으로부터 헤아리는 120년쯤으로 잡고 다시 그 세월을 잉태한 1300년에 이르는 시간으로 확대함으로써 그 사유의 계보를 추적했다. 또한 종교의 내부자에게는 기대하기 어려운 관찰을 감행하면서도 그렇다고 종교의 밖에서 넘겨짚는 것도 아닌 놀라운 평형감각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 책은 소태산의 일생을 저자 자신의 삶과 결부시켜 되짚어가는 탐구의 여정으로 보인다. 

 

동학을 비롯한 토착종교 혹은 자생종교는 더없이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학계에서 떨떠름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온 이유는 아마도 합리적인 설명을 가하려고 할 때 생겨나곤 하는 간극 때문일 것이다. 성실한 평전이면서 동시에 풍성한 소설로도 읽히는 『소태산 평전』은 토착사상사가 어떻게 씌어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문학과 철학은 룰이 다른 게임과도 같다. 어릴 적 문학의 언저리를 꿈꾸었던 때가 있지만 그동안 논리와 증명의 칼날을 벼리느라 잊고 살았던 문학적 서사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였고, 철학적 탐구의 힘 못지않은 문학적 이야기의 힘을 실감하였다. 더는 군말이 필요없을 것 같다. 부디 독자들께서 직접 읽고 저자가 건네는 내밀한 언어를 저마다 음미하시길 바란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6년 가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박소정 /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중문과 및 철학과 전임강사

2016.10.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