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조국이 버린 사람들』

권혁태

대한민국의 ‘숨겨진 범죄’와 재일동포라는 주체

-김효순 『조국이 버린 사람들』

 

 

hmghm‘암수범죄’(暗數犯罪, hidden crime)라는 말이 있다. ‘숨겨진 범죄’라고 하는 편이 알기 쉽지만, 사전적으로는 “실제로는 벌어졌지만 사법기관에 인지되지 않아 공식 통계로 집계되지 않는 범죄”라는 뜻이다. 범죄학이나 범죄 통계에 잘 등장하는 개념이다. 암수범죄를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법기관의 범죄 인지범위를 확대하고 피해자의 소리를 ‘밝은 영역’으로 끌어내는 노력을 통해 ‘어둠의 영역’을 줄여나가면 사회의 건강함이 더해진다. 물론 이런 논리는 사법기관, 즉 국가의 ‘건강함’이 전제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 만일 국가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심지어 범인 즉 가해자가 국가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국가가 범죄행위의 주체가 되어 통치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 고문을 가하고 그를 감옥에 처넣고 심지어 사형까지 시켰는데, 그 범죄가 여전히 인지영역의 바깥, 즉 ‘어둠의 영역’에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사실 우리는 이같은 사례를 수없이 알고 있다. 일본제국주의 시대나 반공군사독재정권 시대에 이른바 ‘국가’가 주체가 되어 일으킨 사건 때문에 발생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접할 때면 암수범죄라는 말이 범죄학 용어와는 다른 맥락에서 떠오른다. 이 중에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1970~80년대에 벌어진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이다. 모국어와 모국문화를 배우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온 100명 이상의 재일동포가 국가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보안사, 재판정이 휘두르는 야만적인 ‘국가폭력’ 앞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 것은 ‘절차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다. 국가의 암수범죄를 재단하기 위한 여러 노력이 제도적 형태를 갖추었고, 이를 ‘이행기의 정의’라는 이름하에 ‘과거사 청산’이라고 부른다. 이 무렵 만들어진 여러 ‘과거사위원회’가 법적 진실을 드러내 당시 국가의 ‘악행’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내려 했다. 불충분하나마 그 결실이 신문기사 등을 통해 조금씩 전해지기는 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알리는 작업은 생각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그런데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에 한해서는, 최근 두가지 의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의 ‘진실’을 담은 김효순의 『조국이 버린 사람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기록』(서해문집 2015)이 출판된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책 출간을 계기로 10월 19일에 ‘우리는 왜 간첩이 되었나?: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을 통해 본 한국사회와 재일동포의 삶’이라는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재일동포 정치범 피해자 강종헌, 김원중, 김정사가 당시 상황과 현재의 심경을 담담한 어조로 ‘증언’한 이 자리는 김효순의 책과 함께 국가의 암수범죄를 폭로하고 이를 통해 이들의 억울함을 ‘밝은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시도였다.

 

그렇다면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과거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당한 적이 있고 언론사의 일본 특파원을 지냈던 저자 김효순은 책에서 ‘재일동포의 특수한 처지’, 분단, 한일 공안기관의 유착, 김대중 납치사건 등 여러 요인을 복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점에 매우 충실하다. 구체적인 사실을 면밀한 조사를 통해 재구성하고, 관련해서 거의 ‘무지’에 가까운 한국의 독자들에게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의 진실을 전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두가지 독법으로 읽힌다. 하나는 반공군사독재정권하에서 자행된 가장 극단적인 인권탄압의 사례에 대한 충실한 증언집으로, 또 하나는 재일동포에 대해서 ‘아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한국사회의 무지를 폭로하고 재일동포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입문서로. 이 두가지 독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예사롭지 않다. 특히 후자의 문제는 재일동포라는 존재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사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계가 있다.

 

물론 재일조선인에 대한 관심이 한국사회에 적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한국사회에서 ‘생산’되는 재일동포의 존재는 오직 일본의 민족차별 대상일 뿐, 이를 한국사회와 관련된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재일동포 문제에 대한 일종의 ‘외부화’ 전략이다. ‘우리 안의 재일동포’로 보는, 즉 재일동포 문제를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시점이 매우 약하다. 평자는 과거에 쓴 논문에서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는 재일동포에 대해 한국말을 잘 못하는 ‘반(半) 쪽발이’, 조총련 등에서 연상되는 ‘빨갱이’, 그리고 경제대국 일본 자본주의를 배경으로 한 ‘부자’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으며 이같은 이미지는 각각 ‘민족’ ‘반공’ ‘개발주의’라는 세가지 필터(회로판)가 작동한 결과라는 점을 문제제기한 적이 있다.

 

김효순의 책은 반공이라는 필터가 어떻게 작동해 재일동포를 ‘빨갱이=간첩’으로 만들어내는지를 ‘우리 안의 재일동포’라는 시점에서 분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의 이런 문제의식을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이 한국사회에 주는 함의라는 차원에서 어떻게 확장해가야 하는가. 이는 한마디로 이들을 국가에 ‘희생’된 피동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역사에 개입하고자 하는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사건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반공정권의 폭력성에 무지했다는 순진함을 강조하고 이들의 선택을 몰주체적으로 여기는 순간, 이들이 모국 유학을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길 때, 또 위험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한국 거주를 이어갈 때, 혹은 과거사위원회의 조사에 응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하거나 재심청구를 통해 무죄를 주장할 때 이들이 공포와 고민 속에서도 줄곧 놓치지 않으려 했던 주체성의 회복에 대한 갈망이 가려지거나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결단을 역사, 즉 고국의 민주화와 통일에 개입하려는/개입한 개인 혹은 재일동포사회의 주체적 노력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없을까? 이는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을 좁게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사에, 넓게는 한반도 현대사에, 더 넓게는 사회운동사의 세계적 양태 속에 어떻게 사상적으로 위치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작업은 대한민국의 ‘성공’(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동시 달성)이라는 결과에 맞추어, ‘순수한’ 민주화운동을 선별하는 형태로 ‘과거’를 가공·해석해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의 ‘오점’을 제거하기 위한 ‘자부의 전략’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자부의 전략’에 재일동포 정치범에 대한 복권이 이용되고 있다면 이는 그들의 주체적 결단을 ‘몰주체적’인 것으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간첩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은 지금이라고 해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과거에 재일동포였다면 지금은 새터민 등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즉 그 메커니즘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렇다면 역사에 개입하려는 주체도 살아 있는 것이다. 재일동포 정치범 사건에서 배우는 것은 대한민국의 영토 밖에도 역사에 개입하려는 주체가 살아 있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이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5년 겨울호에 수록되었습니다.

 

권혁태 / 성공회대 일어일본학과 교수

2015.1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