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왜곡과 대화록 불법배포의 주역은

김창수

김창수 / 한반도평화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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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배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불법 배포된 정상회담 대화록이 그간 새누리당이 해온 주장이 허위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 포기 발언을 했고, 또 김정일 위원장에게 보고하는 등 굴욕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주장해왔다.

 

국가 최고의 기밀문서가 인터넷에 게재되어 전세계 정보기관들까지 쉽게 입수할 수 있게 된 것은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다. 국가기밀이 이렇게까지 누출된 것은 국정원의 ‘미필적 고의’라고 할 수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대화록을 공개했다고 말했다.

 

동서고금 전례없는 국정원의 외교망신

 

국가정보원은 음지에서 일하면서 국가가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고 이를 지켜야 할 임무를 부여받았다. 국정원의 존립에는 이러한 임무수행이 전제가 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국가기밀을 불법적으로 공개하여 스스로의 명예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국민으로 하여금 그 존립근거까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정상회담 대화록이 인터넷에 게재된 것은 조선시대에 사초(史草, 공식적 역사편찬의 자료가 되는 기록)를 마을마다 ‘방(榜)’으로 알린 것이나 다름없다. 조선 500년의 역사에서 사초가 ‘방’에 붙여진 적이 없듯이, 정상회담 대화록 전체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은 세계외교사에 없는 일이다. 국정원이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리며 외교망신을 당하는 일에 앞장선 것이다. 전세계 국가정보기관 역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포기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정쟁의 도구로 쓴 것이다. 새누리당은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반대하는 것이 이를 숨기려는 의도인 양 몰아붙였다. 조선시대에 연산군이 사초 열람을 반대하는 사관들에 대해 “반드시 어떤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몰아붙인 것과 똑같다.

 

연산군은 공개를 반대하는 사관들을 고문하고 마침내 불법적으로 사초를 열람하고 말았다. 하지만 연산군도 모든 사초를 ‘방’으로 알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았다.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봤을 뿐이다.

 

NLL 논란의 발단, 제3의 발췌본

 

NLL 논란의 발단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작년 대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이 김위원장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되었다. 정문헌 의원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국정원이 작성한 정상회담 대화록에서 이런 내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문헌 의원의 이런 주장은 정상회담 대화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다. 국정원이 지난 24일 정상회담 대화록과 함께 제출한 대화록 발췌본에도 이런 내용은 없다. 《월간조선》이 입수해서 보도한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에도 없다. 정문헌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제3의 발췌본을 본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원에 의해 만들어진 정상회담 발췌본은 최소한 3부가 있는 셈이다. 국정원이 대화록과 함께 24일에 제출한 발췌본, 《월간조선》이 입수한 발췌본, 그리고 정문헌 의원이 본 발췌본 등이다. 정문헌 의원이 본 발췌본에 ‘땅따먹기’ 발언,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발언이 있었다면, 그것은 국정원이 짜깁기해서 만든 엉터리 보고서가 된다.

 

정문헌 의원이 말한 ‘땅따먹기’ 발언은 노대통령이 2007년 11월 4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한 연설에 포함되어 있다. 대중연설에서 더러 등장하는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은 이미 여러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정상회담에서 이런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정상회담 대화록에는 있을 수 없다.

 

발췌본의 실체와 배포 경위를 엄중히 물어야

 

국정원이 이런 내용을 마치 남북정상회담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북정상회담 발췌록을 만들어서 청와대에 보고했다면 아마도 정문헌 의원이 이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정문헌 의원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사건에 대해서 정문헌 의원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볼 수 없다’며 무혐의 처리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소 두차례에 걸쳐서 국정원에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보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10월에 10·4선언 1주년 연설에서 이명박정부를 비판한 직후이다. 이때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원에 10·4선언에 대한 보고를 지시했다고 한다. 두번째는 2009년 10월에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의 김양건 통전부장을 만나기 직전에 참고용으로 국정원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정문헌 의원은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이런 문서들을 접했을 것이다. 정문헌 의원이 본 것과 같은 엉터리 보고서를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보았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을 것이다. 이미 공개된 《월간조선》이 입수한 발췌본이나 국정원이 제출한 발췌본도 모두 사실을 왜곡하기 위해 가공한 엉터리 문서이라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잘못된 보고서를 가지고 정쟁에 불을 붙인 것이다.

 

정문헌 의원이 보았다는 보고서의 실체, 《월간조선》 입수 발췌본이 작성되어 배포된 경위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례없는 정상회담 대화록 불법배포와 노무현 대통령의 NLL 발언 왜곡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조차도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NLL 문제를 선거이슈로 사용했다. 날조된 노태통령의 NLL 포기발언을 사실로 믿은 것이다. 그 출발도 정문헌 의원의 발언이다. 엉터리 보고서 작성, 대통령선거 댓글 사건, 정상회담 대화록 불법 배포가 모두 과잉 정치화된 국정원의 모습이다.

 

2013.6.26 ⓒ 창비주간논평